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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entMeditator Nov 16. 2024

영화 <아노라> 리뷰

차가운 현실을 껴안는 따뜻한 순간



영화 <아노라>는 션 베이커 감독이 그려낸 또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그의 전작들인 <플로리다 프로젝트>나 <레드 로켓>과 마찬가지로 사회의 가장자리에 놓인 인물들의 복잡한 내면을 아름답고도 현실감 있게 담아냈습니다. 

이번 작품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인물은 주인공 아노라를 연기한 마이키 매디슨입니다. 

그녀는 스크린 속에서 아노라 혹은 애니라는 이름의 두 개의 얼굴을 가진 여성을 통해 관객을 깊은 감정의 소용돌이로 이끕니다. 

<아노라>는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이라는 무게 있는 타이틀로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지만 그 수상 경력을 넘어 성노동자라는 독특한 설정과 예고편 속 주인공의 표정이 이 영화를 더욱 특별하게 만들었습니다.





영화의 시작은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네온 불빛과 함께합니다. 

유니버설 로고가 화면에 비칠 때 이 영화가 흔히 디지털 플랫폼이나 블루레이에서 볼 수 있는 작품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칩니다. 

그리하여 시작된 이야기는 스트립 클럽이라는 화려하면서도 음습한 세계로 우리를 안내합니다. 

그곳에서 아노라는 감각적인 춤과 매혹적인 몸짓으로 자신의 생계를 이어가며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신만의 생존방식을 구축해 나갑니다. 

클럽은 찬란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차갑고 그 안에서 아노라는 어쩔 수 없이 그 차가움의 일부가 됩니다. 

이런 그녀의 이중적인 삶은 보는 이로 하여금 세상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수많은 직업과 인간사가 존재한다는 깨달음을 주기에 충분합니다.





영화 속 아노라는 화려한 무대에서 강렬한 조명 아래 살아가지만 현실의 그녀는 조용하고도 초라한 공간에 머물러 있습니다. 

이 이중적인 삶은 <더 레슬러>의 미키 루크가 보여준 무대 위의 빛과 무대 밖의 어둠을 떠올리게 합니다. 

션 베이커 감독은 아노라의 이야기를 통해 삶의 다양한 얼굴들을 세심하게 조명합니다. 

그녀가 이반이라는 러시아 재벌가의 아들을 만나며 시작되는 관계는 단순한 로맨스가 아닙니다. 

이반과의 만남은 그녀에게 물질적 풍요와 격정적인 순간을 선사하지만 그 속에서 아노라는 사랑보다는 부에 대한 갈망을 더 진솔하게 드러냅니다. 

다코타 존슨이 연기한 <50가지 그림자>의 아나스타샤와 비교해보면 아노라의 욕망은 더욱 노골적이고 현실적입니다. 

그녀는 사랑을 통해 자기 자신을 구원하려 하기보다는 그 욕망 속에서 일시적인 안정과 안락함을 찾으려 합니다.





하지만 이야기는 결코 단순한 행복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이반의 가족과 그들의 수하들이 등장하면서 영화는 전환점을 맞이합니다. 

그때부터 아노라의 이야기는 로드무비로 변모하며 새로운 갈등과 도전이 그녀를 기다립니다. 

이고르 토로스 그리고 가닉과 함께 하는 여정은 단순한 추적기가 아니라 아노라의 진정한 자아를 찾기 위한 여정으로 변해갑니다. 

이고르와의 동행은 단순히 조력자로서의 역할이 아니라 그녀의 내면의 갈등을 비추는 거울과도 같습니다. 

그녀는 그들과 함께하며 자신이 기대했던 왕자 이반의 진정한 모습을 마주하게 됩니다. 

그가 보여주는 무책임함과 미성숙함은 아노라에게 실망과 회의감을 안깁니다. 

결혼 무효 서명을 하는 순간 아노라는 그저 한 사람과의 관계를 끝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꿈꿔왔던 부와 안정의 신기루가 깨지는 장면을 연출합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특히 많은 이야깃거리를 남깁니다. 

빌라에서 이고르와 나눈 마지막 대화 속에서 아노라가 던진 "넌 날 왜 강간하지 않는 거야?"라는 질문은 단순한 말이 아니라 그녀의 내면에 얽힌 수많은 감정을 드러냅니다. 

그것은 그녀가 단순히 섹스를 통해 위로받으려는 시도였을 수도 있고 아니면 그보다 더 복잡한 위선적인 관심과 동정의 시선을 거부하고자 하는 외침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아노라는 그동안 자신의 삶을 단순하고 익숙한 '일'로 정의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이고르와의 만남에서 그녀는 직업적인 틀을 벗어나고 싶지 않으면서도 어쩔 수 없이 진정한 인간적인 관계에 대한 갈망을 엿보입니다.





반지를 건네받은 후 그녀의 행동은 단순한 화대의 대가일 수도 있지만 이고르의 진심 어린 배려에 대한 응답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두 사람이 나누는 섹스는 키스 없이 이루어지며 그 자체로 사랑을 거부하는 상징처럼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고르는 아노라를 강제로 소유하지 않고 진정한 포옹으로 그녀를 안습니다. 

그 순간 아노라는 눈물을 흘립니다. 

이는 단순한 자포자기의 눈물이 아닙니다. 

그것은 현실의 벽을 깨닫고 자신의 내면에 쌓인 감정이 폭발하는 울음입니다. 

이 장면은 인간적 위로와 좌절이 교차하며 현대 사회에서의 소통의 부재와 진정한 관계의 어려움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이 마지막 장면은 많은 관객들에게 <색 계>의 섹스신을 떠올리게 합니다. 

양조위와 탕웨이의 관계가 단순한 성적 행위 그 이상을 담아냈듯 아노라의 마지막은 인간의 복잡한 감정의 총체적 결말로 다가옵니다. 

그것은 관객에게 충격을 주기 위한 장면이 아니라 그간 쌓여온 관계와 감정의 집합체로 다가오는 깊은 여운입니다.

마이키 매디슨의 연기는 단연 빛납니다. 

그녀는 아노라라는 인물의 모든 이중성과 복잡한 감정을 생생하게 그려냅니다. 

그녀는 캐릭터에 완전히 몰입해 관객으로 하여금 아노라의 삶과 감정을 함께 느끼도록 합니다. 

매디슨은 실제로 이 역할을 위해 스트립 댄서로서의 경험을 체득하며 많은 연구와 연습을 거쳤다고 합니다. 

이반 역을 맡은 마르크 에이델스타인은 재벌가의 자녀가 가진 무책임함과 이기심을 사실적으로 그려내며 영화의 긴장감을 한층 높였습니다.





결국 <아노라>는 단순히 성적 장면에 국한되지 않고 복합적인 사회적 메시지를 품고 있습니다. 

영화는 19금 장면과 화려한 설정을 넘어 우리에게 깊은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며 인간관계의 본질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게 만듭니다. 

션 베이커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현실적이고 독특한 캐릭터를 세심하게 그려내며 관객에게 오랫동안 잊히지 않을 감정의 울림을 선사합니다. 

<아노라>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그만큼 이야기할 가치가 있는 작품으로 남을 것입니다. 

이 영화는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없는 감정과 인간관계의 복잡함을 탐구하며 한 번 보면 쉽게 잊히지 않는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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