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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entMeditator Nov 20. 2024

드라마 <백설공주에게 죽음을> 리뷰

침묵 속에 숨겨진 진실과 인간의 본성


2024년 8월 16일부터 10월 4일까지 방영된 MBC 금토 드라마 <백설공주에게 죽음을-Black Out>은 독일 작가 넬레 노이하우스의 동명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한 14부작의 범죄/추리 드라마입니다. 

방영 전부터 기대를 모으며 제7회 칸 국제 시리즈 페스티벌 비경쟁 부문에 초청될 만큼 높은 완성도를 자랑했고 실제로 시청자들에게 깊은 여운을 남기며 막을 내렸습니다. 

영화 <화차>로 미스터리 장르에서 탁월한 연출력을 입증했던 변영주 감독이 이번 작품을 통해 다시 한번 자신의 역량을 발휘합니다. 

이 드라마는 한국적 정서와 독특한 로컬라이징을 통해 새롭게 태어나 시청자들을 매료시켰습니다.





원작 소설은 넬레 노이하우스의 '타우누스 시리즈' 중 네 번째 작품으로 독일적 냉철함과 세심한 심리묘사가 돋보입니다. 

보덴슈타인 반장과 직감이 뛰어난 형사 피아의 콤비는 복잡한 사건의 실체를 추적하며 인간의 어두운 욕망과 사회의 부패를 탐구합니다. 

드라마는 이러한 원작의 핵심을 유지하면서도 한국적 상황에 맞게 각색되어 또 다른 매력을 선보였습니다.





드라마의 중심에는 10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돌아온 고정우(변요한)가 있습니다. 

그는 마치 잃어버린 기억의 파편을 붙잡으려 애쓰는 듯한 순간들이 이어졌고 그와 마을의 관계는 오랜 상처와 원한으로 얼룩져 있습니다. 

출소 후에도 마을은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맞이합니다. 

하지만 정우는 침묵을 깨고 진실을 찾기 위해 고통을 감내하며 다시 걸음을 내디뎠습니다. 

그 여정에는 방황하던 의대생 하설(김보라)과 서울에서 좌천된 후 무천시로 발령받은 형사 노상철(고준)이 함께합니다. 

이들은 서서히 다가오는 어둠 속에서 서로의 존재를 의지하며 진실을 찾아가는 여정을 그려갑니다.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에서 무천시는 단순한 배경이 아닌 하나의 거대한 인물로 존재합니다. 

마을은 법과 공권력을 초월한 은밀한 관습에 묶여 있었고 마을 사람들은 서로의 비밀을 암묵적으로 지키며 유지해 온 무언의 연대를 깨뜨릴 위험 요소를 경계했습니다. 

정우와 그의 가족은 이 폐쇄적 사회의 희생양이 되었고 드라마는 이러한 집단의 부조리를 통해 인간의 이기심과 탐욕을 보여주었습니다. 

원작의 타우누스 지역이 독일 사회의 부패와 인간 심리를 탐구했다면 드라마는 무천시를 통해 한국 사회의 현실적이고 고유한 문제를 더욱 생생히 그려냅니다. 

현구탁(권해효)은 공권력을 남용해 사건을 조작하는 경찰서장으로 그가 보여준 서늘한 존재감은 부패한 권력의 상징이자 무천시의 어두운 내면을 드러내는 장치였습니다.





드라마는 고정우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며 그의 상처와 절망을 부각합니다. 

원작이 사건 수사 과정에 집중한 반면 드라마는 정우의 심리적 여정을 강조했습니다. 

그가 겪은 상실과 배신감은 변요한의 섬세한 연기로 스크린에 생생하게 드러났습니다. 

시청자들은 그의 표정과 눈빛에서 억눌린 분노와 슬픔을 읽을 수 있었고 그가 진실을 찾기 위해 치열하게 싸우는 과정을 함께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정우는 사랑하고 믿었던 이들에게서조차 배신당하며 그의 고통은 한층 더 깊어졌습니다.





드라마와 원작의 또 다른 차이점은 사건을 해결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원작은 수사와 추궁을 통해 논리적으로 사건의 실체가 드러나는 반면 드라마는 인물들의 회상과 증거 조각들이 맞물리며 진실이 서서히 밝혀지는 방식을 채택했습니다. 

사건의 가담자들이 서로 물고 뜯으며 서서히 몰락하는 모습은 드라마 특유의 긴장감을 극대화했습니다. 

이러한 전개는 시청자들로 하여금 한 순간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들며 사건의 실체를 파헤치려는 고정우의 노력에 더욱 몰입하게 했습니다.





정우가 진실을 추적하는 과정은 단순한 복수극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그를 억누르고 있었던 무거운 억울함을 벗어내고 부조리한 사회의 관습과 연결을 끊기 위한 몸부림이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의 탐욕과 위선은 개인의 악행을 넘어선 집단의 죄악을 상징했고 정우는 이와 싸우며 비로소 진정한 해방을 얻고자 했습니다. 

진실을 알게 된 후에도 남아 있는 그의 공허함은 그가 겪은 고통의 흔적과 상실을 말없이 대변했습니다. 

노상철 형사가 그에게 건넨 "보통의 삶을 살아가라"는 말은 비록 단순해 보였지만 그에게는 앞으로 나아가야 할 힘이자 방향을 제시하는 소중한 조언이었습니다.





드라마의 결말에서 고정우는 마침내 무죄를 증명해 냈습니다. 

그러나 진실이 밝혀진 후에야 비로소 찾아온 자유는 쓰디쓴 여운을 남겼습니다. 

그의 어머니 정금희(김미경)가 깨어나 가족이 함께 새로운 삶을 준비하는 장면은 시청자들의 가슴에 따뜻함을 남겼습니다. 

정우가 대학에 진학해 새로운 길을 준비하는 모습은 상처받은 자가 끝내는 희망을 품고 다시 일어서는 모습을 상징했습니다. 

'보통의 삶'을 살아가려는 그의 모습은 시청자들에게 아픔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해주었습니다. 

이 마무리는 진실을 추구하는 과정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무겁더라도 결국에는 회복과 치유로 이어질 수 있음을 이야기했습니다.





배우들의 연기력은 드라마의 몰입도를 크게 높였습니다. 

변요한은 정우의 복잡한 내면과 고통을 섬세하게 표현하며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그의 연기에는 억울함과 분노 진실을 향한 열망이 묻어났고 그 감정들은 시청자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고준은 노상철의 인간적인 면모와 정의감 사이의 갈등을 능숙하게 그려냈고 김보라는 하설을 통해 의외의 따뜻함과 동료애를 보여주며 이야기를 더욱 풍부하게 만들었습니다. 

권해효의 현구탁은 마을의 부패를 상징하며 긴장감을 극대화했습니다.





변영주 감독은 드라마의 한국적 각색을 통해 작품에 깊이를 더했습니다. 

그는 인터뷰에서 “사이다 같은 해결책이 아닌 고구마 같은 답답함과 인내가 세상을 바꾼다”고 이야기하며 현실의 복잡성과 진실의 무게를 담고자 했습니다. 

그의 연출은 인물 간의 미묘한 심리적 갈등과 그들이 짊어진 진실의 무게를 효과적으로 담아냈습니다. 

이 드라마는 시청자들에게 단순한 오락을 넘어 인간의 본성과 정의에 대해 깊이 있는 성찰을 제공했습니다.





<백설공주에게 죽음을-Black Out>은 단순한 추리극을 넘어선 인간의 내면과 사회적 부조리를 심도 있게 탐구한 작품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시청자들은 정우의 여정을 통해 진실의 무게와 정의의 가치를 다시 한번 되새길 수 있었습니다. 

드라마는 원작 소설의 깊이를 유지하며 한국적 특성과 독창적인 서사로 각색되어 시청자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진실을 밝혀내는 과정에서 드러난 인간의 다양한 얼굴은 시청자들의 마음에 깊은 여운을 남겼고 인간의 복합적인 내면과 사회적 부조리를 다시 돌아보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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