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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entMeditator Dec 04. 2024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 리뷰

진실을 좇다가 만난 마음의 균열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의 시청을 마친 것은 며칠 전이지만 이제야 리뷰를 써 보네요.

사실 새벽까지 TV를 보면서 혼란스럽고 당혹스럽고 아픈 마음을 좀 추슬러 보려고 일부러 쓰는 리뷰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놓치는 부분도 있을 수 있지만 이 글을 쓰면서 이 분노가 조금 녹기를 소망해 봅니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처음 가졌던 것은 연쇄살인이라는 흔한 소재와 부모와 자식 간의 미묘한 갈등이라는 주제를 어떻게 엮었을지 하는 호기심이었습니다.
그리고 첫 화를 보자마자 저는 단숨에 이 이야기에 빨려 들어갔습니다.
아버지와 딸 사이에 깃든 의심과 그 긴장감이 화면 밖까지 퍼져 나오는 듯했거든요.
한석규 배우는 말할 것도 없었고 상대적으로 신인인 채원빈 배우도 놀라울 만큼 몰입감 있는 연기를 보여주었어요.
드라마의 전반적인 연출은 마치 영화를 보는 듯한 감각적인 디테일을 자랑했고 음악은 그 긴장감을 배가시키는 역할을 톡톡히 해냈습니다.





초반부의 전개는 완벽에 가까웠습니다.
산에서 발견된 유골과 처리되지 않은 사체들은 사건의 시작을 알리기에 충분히 충격적이었고 프로파일러인 아버지가 사건을 추적하며 점차 딸을 의심하게 되는 흐름은 긴장감을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어요.
특히 딸이 비밀을 숨기려는 듯한 이중적인 행동과 아버지의 점점 깊어지는 의심은 단순한 수사극 이상의 심리전을 보여주었지요.
그런 면에서 초반부는 정말 '갓 드라마'라는 평가가 아깝지 않았습니다.
첫 화부터 네 번째 화까지는 화면 하나하나가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졌다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조명, 카메라 워크, 음악, 배우들의 디테일한 감정 연기까지 모든 요소들이 조화를 이루며 완벽한 시너지를 냈거든요.
이런 경험은 드라마를 보는 사람들에게 흔하지 않은 기쁨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드라마는 5화 이후부터 약간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이야기의 템포가 점점 느려지면서 사건이 진행되는 느낌보다는 한 자리에 머물러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요.
범인으로 의심되는 인물들이 계속 등장하고 그 인물들이 배제되는 패턴이 반복되었죠.
물론 이런 전개 방식은 시청자들에게 혼란을 주고 반전을 예고하기 위한 장치였겠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과하게 끌려가는 느낌도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새로운 단서가 나올 때마다 흥미로웠지만 나중에는 '아, 이제는 그만 좀 밝혀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또한 한석규 배우가 연기한 아버지 캐릭터는 점점 더 독단적인 방향으로 흘러갔고 그것이 현실적이지 않게 느껴지는 순간들도 있었습니다.
경찰 조직 내에서 그는 지나치게 개인적인 방식으로 사건을 해결하려 했고 동료들의 반응이나 수사 방식도 다소 허술해 보였지요.
물론 딸을 보호하려는 아버지로서의 감정은 이해가 갔지만 이런 행동이 이야기의 설득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이 되었습니다.





중반부의 이런 문제점은 시청자들에게 피로감을 안겼습니다.
사건이 나아가지 못한 채 반복적인 구조를 보였기 때문입니다.
딸의 행동 역시 의문이 들게 했는데 그녀의 동기가 충분히 설득력 있게 느껴지지 않을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드라마가 완전히 실망스러웠던 것은 아니에요.
중반부가 늘어진 만큼 후반부에서 다시 긴장감을 끌어올리며 복선을 회수하기 시작했거든요.
특히 9화와 10화는 그동안의 퍼즐 조각들이 맞춰지면서 시청자들에게 '아, 이런 이야기였구나'라는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딸의 과거가 밝혀지고 그와 연결된 현재의 사건들이 드러나면서 이야기는 비로소 완성되었습니다.
특히 마지막 화에서 아버지와 딸이 진실을 마주하며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감정적으로 가장 강렬한 순간이었습니다.
그들은 단순히 사건의 진실을 넘어 관계 속에서 얽힌 갈등과 상처를 마주하게 되었고 이것이 드라마의 진정한 메시지로 느껴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이 드라마가 10부작이라는 분량 안에서 서사를 완벽히 소화하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원작이 4부작이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를 10부작으로 늘리는 과정에서 늘어짐과 허술함이 생긴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특히 사건의 전개가 반복적인 구조에 머물렀다는 점은 조금 아쉬웠어요.
개인적으로는 6부작 정도로 압축되었다면 훨씬 더 탄탄하고 긴장감 있는 이야기가 되었을 것 같아요.
그래도 초반부의 몰입감과 후반부의 복선 회수는 이 드라마가 웰메이드라는 평가를 받을 만한 이유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초중반의 약점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까지 봤을 때 드라마가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분명했고 그것이 시청자들에게 남긴 여운도 깊었습니다.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를 보며 느꼈던 감정은 단순히 재미와 아쉬움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이 드라마는 인간관계의 복잡함과 불신, 그리고 그 속에서 발견되는 화해와 이해의 가능성을 탐구한 작품이었으니까요.
초반의 압도적인 몰입감, 중반의 실망, 그리고 마지막 화에서의 감동까지 이 모든 경험이 제 마음에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이 드라마는 결코 쉽게 잊히지 않을 것 같습니다.
마치 누군가와 친밀한 관계를 맺고 그 관계에서 예상치 못한 배신을 경험하지만 결국 그 사람을 이해하게 되는 과정처럼 말입니다.
그런 면에서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는 제목 그대로 저에게도 친밀하고도 묘한 배신감을 남긴 작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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