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이 되었다.
달력이 넘겨지고 앞 숫자가 바뀐다고 달라지는 게
없다는 걸
이미 알 나이가 지나고도 남음이 있다.
지난밤에 소파에 누워 책을 보다 잠이 들었다.
오랜만에 일찍 자게 된 거다.
남편의 깨우는 소리에 일어나 잠자리에
새로 들게 된다.
새벽에는 두통의 부재중 전화가 울렸겠지만
전화해 준 사람의 성의도 무시한 채 잤다.
사실 듣지 못했다.
처음부터 아침잠이 많았다. 어디서부터가
처음인지 모르겠지만
내 어릴 때도 그러하였고 어른 된 지금도 그렇다.
엄마를 보면서 자랐고 엄마가 새벽 기도를
다니시고 새벽 기도에 가시지 못할 때는
소리를 내어 기도하셨다.
아침잠을 방해하는 그 소리가 너무 싫었다.
귀를 막고 잠을 놓지 않으려 노력해야 했다.
아니 잠이 나를 놓아주지도 않았다.
자면서 들려오는 그 운율은 한참을 성장해서야
적응하게 된다.
나를 위한 부분이 들려올 때면 잠시 귀를
기울이기도 했었다.
기억에 남는 내용은 없지만
딸의 현재와 미래를 위한 기도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11월의 첫날이 평소대로 일어나서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한 채로 이부자리를 개키고
엄마 간식을 식탁에 올리고 집을 나서는 거부터다.
2층 계단에서 후다닥 내려간다
넘어지지 않을 정도의 의식만 챙기고
세상과 나의 눈이 적당히 익숙해질 무렵
차에 오르게 된다. 의식은 아직이다.
자책까지는 아니지만 나의 아침시간이
늘 이러하니
변화가 필요한가 생각해 보게 된다
사실 쓰다 보니 실망이 서려 있다.
엄마처럼 때가 되면 저절로 일찍 일어날 줄
알았다.
나이가 차면 몸이 반응하고 새벽쯤이야
얼마든지 제압할 수
있을 줄 알았다
몇 번 새벽에 일어나긴 했지만
혼자만의 긴밀한 시간을
누리기도 애매한 환경이었고
그 맛을 느끼지 못했다.
내 속사람은 새벽을 갈망하는 거 같다
그러나
새벽은 나를 반기지 않는 거 같다.
(핑계도 그럴싸하다)
몽롱하고 떠지지 않는 눈을 하고 있고
뭘 해도 어설픈 내가 탐탁지 않아 보이리라.
(누가? 새벽이?)
그럼에도 11월은 감사의 달이다.
올해 내게 주어진 많은 변화들과
나의 마음의 풍부와
좋아하는 글쓰기로 인도하심에 감사한다.
이왕
매일매일 감사일기도 적고 싶다.
오늘은 집에 가는 길에 노트를 몇 권
구입해야겠다
11월 이면 추수감사절 바구니를 만들어야 한다
바구니를 직접 만드는 건 아니고
과일과 소품과 꽃들로 꾸미기를 한다
해년마다 내가 주축이 되야햐 하는 공간이 있다.
엄마가 오시고 (나는 언제나 엄마를 조건부로 단다.)
할 일이 많은 내게 맡기는데 마뜩지 않았다.
감사를 입으로 고백하고 긍정을 알게 되고
글 쓰는 마을로 이끌어 주심에 감격하여
올래 감사 바구니는 마음으로부터 미리
순종하기로 한다.
글쓰기를 배우고 싶다
늘 의식의 흐름대로 글을 쓸 수는 없을 거 같다.
11월을 시작하며 나의 새벽시간을
아쉬워했고 주워질 나의 일 감사바구니를
염려하면서 수락하는 마음을 표현했다
기쁨으로 적극적으로 하기 위한
초석을 깔아 놓은 거다
엄마는 매일 그렇게 소리 지르고
얘기도 많이 하는 꿈을 꾸는데
다른 세상을 살고 계신 걸까?
옛 세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걸까?
추억 놀이를 하고 계시는 걸까?
아버지와 1인 2역의 꿈을 꾸실 때는 살갑다.
저렇게 아버지랑 가까우셨나?
딸입장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잠시 당황하지만
도란도란 그 세계를 상상만 해본다.
식사하실 때면 식사기도를 잊지 않으신다.
주무시는 엄마에게
내가 다가가 기저귀를 만지고 바치춤을 올릴 때
놀래다가도 부드러운 동작과 목소리로 대꾸하신다.
"오줌 안 쌌어!"
며칠 전 글을 통해서 본 착한 치매와 못된 치매는
그분의 살아온 삶이 결정한다고 한다
삶의 결이 아름 다웠으면 착한 치매가 오고
늘 부정적인 모습의 삶은 못된 치매가 온다 한다.
외할머니도 치매셨다
내게도 치매가 온다면 착한 치매이기를 바라본다.
오늘 십일월을 시작하는 첫날에 해야 할 일을
한 가지 더 앞두고 있다
존경하는 목사님께 전화하는 일이다
댓글을 주고받는 중에 약속을 했다.
뭘 표현하는 일에 나처럼 서툰 사람이 있을까?
마음은 절절 끓으면서 나를 보여주지 못한다.
목사님은 나의 전화를 기다릴 거야
반가워하실 거야
이번엔 메일주소도 받아내야지
주기적으로 편지라도 쓰게 말이다.
말로 힘들면 글이 나를 도와줄 수 있도록 해야겠다
나는 목사님을 잊은 적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