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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앙마이 예술가 마을에서 느낀 것

by 지향점은 SlowLife

태국의 치앙마이에는 시내에서 좀 떨어진 곳에 '반캉왓'이라는 예술가 마을이 있다. 말 그대로 예술가들이 모여서 사는 마을이다. 반캉왓에 거주하는 예술가들은 그곳에서 작품활동을 하고 있고 그 작품들 중 일부를 마을에 찾아온 손님들에게 판매하기도 하는 곳이다. 직물이나 주방용품 그리고 여러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판매되고 있었고 마을 자체의 모습도 아름다웠다. 이 마을을 방문해서 시간을 보내며 글을 써봐야겠다는 생각을 처음 하게 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나의 지나온 삶과 앞으로의 삶을 돌아보고 계획하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다.

나는 어쩌면 지극하게 평범한 삶을 살아오고 있다. 주변의 친구들처럼 나의 초, 중, 고 12년은 서울의 4년제 대학을 목표로 가득했고, 대학에 가서는 좋은 직장에 취업하는 것을 최대의 목표로 시간을 보냈었다.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혹은 정말 내가 원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그 시절의 나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남들이 하는 대로, 남들보다 뒤처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렇게 첫 회사에 취업을 성공하게 되면서 나의 길고 긴 26여 년의 여정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맹목적인 목표로 가득한 나의 최대 임무를 성공하고 나서야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무엇을 원하고 어떻게 살고 싶은지에 대해 시선을 돌릴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그로부터 한 동안은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발견하기 위해 다양한 경험들을 시도하고 도전하고 즐기고 투자하게 되었다. 그러는 동안 나는 나만의 취향과 기호가 생기게 되었고 나의 삶은 이전보다 훨씬 다양한 목표를 가지고 풍부하게 채워졌다. 하지만 그런 시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일단 나의 취향과 기호가 무엇인지 알게 된 후 더 다양한 경험과 도전을 해야겠다는 마음은 자연스럽게 줄어들게 되었고 다시 현실적인 삶의 무엇인가가 온통 크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업무적으로 인정받고 더 여유로운 경제력을 가지고 싶다는 마음, 새로운 도전보다는 안정적이고 남들과 같은 평온한 삶을 살고 싶다는 마음, 차근차근 준비해서 더 나은 노년을 마주하고 싶다는 생각들, 이런 현실적인 생각들과 계획들이 이전과 다르게 맹목적이지는 않았지만 더 의미 있게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도 '내게 생각지도 못 한 큰돈이 생기게 된다면?' 나는 그래도 지금의 회사생활을 계속해서 유지할 것인가?라는 유치한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지곤 했고 그때마다 나의 대답은 항상 '아니요'로 이어졌다.

생각하지 못 한 큰돈이 생긴다면 나는 여러 곳들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고 싶었고 글을 써 보고 싶었으며 그림을 그리고 가구를 만들고 디자인을 해보고 싶었다. 어쩌면 그것이 내가 지금 진정으로 원하는 나의 삶이었다. 하지만 그 삶은 현재의 내가 원하는 것이긴 했지만 현재의 내가 남들보다 잘할 자신이 있다거나 이런 삶을 통해 지금과 같은 경제력을 갖출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그렇기에 현재 내가 무엇을 원하고 어떻게 살고 싶은지를 정의할 수 있게 되었더라도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었다. 이런 생각들을 하며 살고있어서인지 현재 예술가의 삶을 살아가는 모든 국적의 모든 사람들에게 존경스러운 마음이 들게 되었다. 남들보다 더 실력이 있어서 그 실력을 인정받고 뽐내며 경제적인 안정을 찾는 것이 가장 큰 가치라기보다는 정말 그들이 좋아하고 원하는 삶을 살고 있다는 마음이 들어서였다.


그래서인지 이 '반캉왓'이라는 장소에 대한 인상이 깊었다. 사람들이 오고 싶도록 아름다운 장소를 만들고 그 아름다운 장소에 실력 있는 예술가들의 콘텐츠를 채워냄으로써 계속해서 많은 사람들이 찾게 하는 구조를 갖추고 있었다. 그리고 각자의 경쟁력 있는 콘텐츠를 통해 자연스럽게 경제적인 안정도 찾을 수 있는 상태가 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치앙마이 행정 조직인지 아니면 또 다른 누군가의 의지나 선행인지는 모르겠지만 행동으로 옮기기 어려운 것들을 구조적이고 조직적인 지원을 통해 도움을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런 지원을 하겠다는 의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원을 잘 해내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이런 류의 구조적이고 조직적인 시도는 '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라기보다는 '잘하느냐 못 하느냐'의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최근에 즐겨보는 한 TV 프로그램에서도 한국의 젊은 예술가들이 모여사는 장소에 대한 장면들이 나왔던 적이 있다. 그때 그들의 낭만적인 삶을 보면서 그들의 현재의 선택이 앞으로도 계속해서 그들의 삶에 행복감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응원의 마음을 갖게 된 적이 있다. 꼭 엘리트 예술가가 아니더라도 그리고 답이 없는 기준의 잣대로 잘하고 못 하고 가 아니더라도 각자의 생각과 가치를 다양하게 전달할 수 있는 그런 낭만적인 예술가들이 더 많아지고 풍부한 시대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들과 다른 행동이나 선택을 했을 때도 응원받을 수 있는 세상, 그리고 그들의 행동과 선택이 세상을 더 풍성하고 다양하게 만들 수 있는 가치라면 그것이 꼭 경제적인 이득이 아니더라도 중요하게 여겨지는 세상,

예전보다 현실적이긴 하지만 낭만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고 느끼는 요즘 조금은 더 낭만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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