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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포로의 스프카레
본질, 독창성, Originality

by 지향점은 SlowLife
삿포로의 스프카레

삿포로에는 일본 내에서도 유독 유명한 음식들이 몇 가지 있다. 스프카레, 우유로 만든 유제품, 털게를 포함한 해산물 요리, 칭기즈칸 양고기, 미소라멘 등이 그것이다. 이런 음식들은 삿포로라는 도시가 가진 지리적, 문화적 특성을 고스란히 품고 있다. 그중에서도 스프카레는 삿포로라는 추운 지역의 정체성이 가장 잘 담긴 음식이라고 생각한다.


인도의 카레가 일본으로 넘어와 ‘일본식 카레’라는 독특한 카테고리로 만들어졌고, 그중에서도 삿포로는 스프카레라는 또 다른 변화를 탄생시켰다. 삿포로의 스프카레는 단순히 따뜻한 음식을 제공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 지역의 삶을 하나의 그릇에 담아내고 있다. 추운 날씨 속에서 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맵고 묽은 스프, 그리고 그 위에 얹어진 채소와 육류는 단순한 조리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각각의 재료는 튀기거나 구워내며 최대한의 맛을 끌어낸다. 모든 것은 정성스럽고도 의도적으로 조화를 이루며 한 그릇 속에 담긴다.

삿포로의 채소는 그곳의 자연과 기후가 만들어낸 선물이다. 낮과 밤의 큰 일교차, 적절한 강수량, 그리고 화산 토양은 맛과 영양이 뛰어난 채소를 탄생시킨다. 스프카레의 본질은 이러한 채소를 단순히 끓이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맛을 존중하며 조리하는 과정에 있다. 나는 이 점이 스프카레를 단순히 음식 이상의 무언가로 만드는 요소라고 생각한다.

스프카레는 단순히 ‘스프처럼 묽은 카레’가 아니다. 그것은 삿포로의 자연, 기후, 그리고 사람들의 삶이 녹아든 결과물이다. 그래서 그것을 제대로 맛보기 위해서는 삿포로의 채소, 삿포로의 공기, 삿포로의 추운 겨울이 필요하다. 마치 찰기가 없는 동남아의 안남미로는 제대로 된 비빔밥을 만들 수 없는 것처럼, 스프카레 역시 그 지역의 본질을 빼놓고는 그 매력을 온전히 느낄 수 없다.


최근 한국에서도 삿포로 스프카레 체인점이 생겨났다. 하지만 그곳에서 느낀 스프카레는 삿포로에서의 그것과는 분명히 다른 것이었다. 맛이나 향은 어느 정도 비슷할지 모르지만, 그 안에 담긴 이야기가 사라져 있었다. 아마도 그것은 본질의 부재 때문이었을 것이다. 음식이란 결국 맛만이 아니라, 그것을 둘러싼 환경과 기억, 그리고 맥락이 함께 어우러질 때 완성된다.

일본이 카레의 원조는 아니다. 하지만 일본은 카레를 자기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하며 새로운 카테고리를 만들어냈다. 삿포로의 스프카레도 그런 맥락에서 탄생했다. 중요한 것은 어디서 시작했느냐가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이해하고 새로운 무언가로 확장했느냐일 것이다. 본질을 이해하려는 노력, 그리고 그 위에 쌓아 올린 독창성. 아마도 이것이 스프카레를, 그리고 일본의 카레 문화를 특별하게 만드는 이유일 것이다.


이제 우리는 완전히 새로운 것을 발견하기 힘든 시대에 살고 있다. 이미 존재하는 것들 속에서 길을 잃기 쉽다. 하지만 그럴수록 중요한 것은 본질을 찾아내려는 고민이다. 그리고 그 본질을 바탕으로 우리만의 이야기를 더해 독창적으로 살아가는 것. 스프카레가 그렇듯, 우리의 삶도 그렇게 조화롭고 특별하게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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