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처음으로 일본에서 운전을 하게 되었다. 사실상 일본뿐 아니라 한국을 벗어나서 하는 첫 해외운전이었다. 그동안 나름 이곳저곳 많은 곳들을 여행하고 다녔지만 현지에서 운전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여행을 다녔던 장소가 대부분 도시였기 때문에 대중교통으로 충분히 불편하지 않게 여행을 할 수 있었고 휴양지의 경우 숙소까지만 이동을 하면 그 주변을 걷거나 큰 이동 없이 여행을 했다 보니 운전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것이 주요했다. 간혹 렌터카를 빌리면 더 재미있는 여행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변의 추천을 받는 여행지도 있었지만 익숙하지 않은 환경과 언어적인 문제등으로 부담감을 느껴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그러던 올해 오키나와로의 여름휴가를 준비하면서 렌터카가 거의 필수나 다름이 없는 여행지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다시 한번 고민에 잠기게 되었다. 특히 운전석 방향이 한국과 정 반대인 것이 아주 크게 부담스러운 상황이었다. 하지만 워낙 더위를 많이 타는 나의 체질과 7박 8일 동안 3곳의 숙소로 이동을 해야하는 상황 등을 고려했을 때 결국 렌터카를 빌리고 생애 첫 해외 운전을 도전해보기로 결심하게 되었다.
오키나와 여행 첫날 긴장된 마음을 진정시키며 렌터카를 인계받았고 유튜브로 미리 공부했던 일본 운전의 주의사항과 요령들을 되뇌며 한 참 동안이나 출발하지 못하고 차 안에 멈춰있었다. 와이프에게 긴장한 모습을 티 내지 않기 위해 속으로 심호흡을 하고 천천히 차량을 출발시켰고 출발하자마자 주차장에서 메인 도로로 진입이라는 첫 시련을 마주하게 되었다. 좌우로 통행하는 차량들을 보며 긴장 속에 방향지시등을 켜고 도로로 진입한 순간 멀리서 다가오던 차들이 속도를 줄이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고 서두름 없이 도로에 진입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약 15분 정도를 운전하며 급속도로 마음의 안정을 찾았고 곧 일본에서의 운전이 크게 어렵지 않을 것이라는 직감을 할 수 있었다. 서로가 배려하며 운전하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도로 표지판의 규정주행 속도를 지키고 있었고 도심이었지만 차들의 간격은 적어도 10m 이상 유지 되고 있었다. 방향 지시등을 켜면 주변의 차들은 양보를 했으며, 양보를 받은 차량의 운전자는 그 배려에 감사함을 표했다. 한국과 달리 차량의 유리창들이 모두 거의 투명한 상태였기 때문에 차 안의 운전자들을 서로의 모습과 표현들을 잘 알아볼 수 있었다. 이렇게 배려를 받으며 1시간 2시간 운전을 하다 보니 이런 배려는 특정 지역이나 구간의 특성이 아닌 오키나와 운전자 전체의 모습임을 짐작하게 했다. 점점 자신감을 얻고 주변의 풍경을 즐기며 음악을 듣고 와이프와 대화를 하며 운전을 할 수 있는 상태가 되었고 오키나와에 있었던 8일 내내 부담 없이 운전을 즐기며 여행의 마무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여행 기간 중간중간에 그리고 여행이 모두 끝나고 한국에 돌아온 후에도 오키나와에서의 운전 경험을 떠올리며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한국에서 운전할 때 나의 모습은 누군가를 배려하며 운전한다라고 표현하기에는 거리가 멀었다. 방향 지시등을 정석대로 켜고 주행하는 차량들에게는 대부분 양보를 하고 배려를 하려고 노력하지만 그 외의 상황에서는 배려하는 마음 없이 경쟁을 하며 전투와 같은 운전을 하곤 했다. 방향 지시등 없이 끼어드는 운전자를 방어하기 위해 최대한 앞 차의 꽁무니를 뒤 쫓아 틈을 만들지 않으려 하고 그 차이가 멀어질 까 규정속도를 넘어선 속도로 운전하는 경우도 자주 발생했다. 먼저 배려하지 못하고 다른 운전자를 신뢰하지도 않았다. 마음의 여유는 없으며 다른 운전자 탓을 먼저 하게 됐다. 아침 일찍 출근길에 이렇게 힘겨운 운전을 하고 사무실에 도착하게 되는 날에는 마음속의 평화를 잃고 화가 가득 찬 상태로 하루를 시작하게 되는 경우도 자주 있었다. 사실 배려하고 양보하며 운전한다고 20~30분 더 늦게 도착하는 것도 아니다. 기껏해야 5~10분 정도일 것이다. 난 지금까지 항상 그 5~10분이라는 시간에 나의 안전을 걸고 운전을 하고 있었다는 생각을 했고, 반성하게 되었다.
물론 오키나와는 한국의 제주도와 같이 휴양과 관광을 위한 조금은 특별한 지역이고 그렇기에 다른 장소보다 더 여유로운 운전을 하는 지역일 가능성도 있다. 그렇기에 짧은 여행 기간에 더 강한 인상을 받게 되었고 그로 인해 일상의 습관이 된 운전에 대해 깊게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된 것일 수도 있다. 더욱이 많은 걱정과 긴장 속에 준비한 첫 해외 운전이었기 때문에 그 경험이 더 특별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일상의 습관이 된 것들, 습관이 될 정도로 반복적이고 익숙해진 그래서 비교적 쉽게 느껴졌던 행위들, 반복되는 습관이기에 일상에서 잠시 멈추고 다시 돌아보며 현재의 내가 잘하고 있는지를 점검하고 알아차리기 어려운 것들, 운전도 이러한 성격을 가진 일상의 습관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나는 새로운 경험을 하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휴식을 취하는 것 그리고 가끔 일상에서 재충전의 시간을 위해 필요한 것이 여행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이번 경험을 통해 여행의 의미를 하나 더 추가하게 되었다. 일상의 습관이 되어 나에게 너무 익숙하고 쉬운 것들, 그렇기에 어느덧 확신하고 있었고 스스로를 의심하지 않던 것들을 다시 돌아보는 시간으로의 여행도 내 남은 인생과 현재에 있어 매우 중요한 시간이 되리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익숙한 것, 하지만 새로운 규칙과 다른 환경에서 그 익숙한 것을 확인하기 위한 되돌아봄, 이 또한 여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