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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동네 카페가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by 지향점은 SlowLife




나는 커피를 꽤나 좋아한다. 모든 원두별 특성을 기억하며 전문가 수준의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꽤 다양한 방식으로 커피를 즐기고 있다. 핸드드립, 모카포트, 에스프레소 모두를 즐길 수 있는 장비들을 가지고 있고 심지어 매일 아침 사무실에서는 귀찮더라도 핸드드립으로 커피를 즐기고 있다. 내가 이렇게 커피를 즐기는 것은 맛, 향 자체를 좋아하는 것도 있지만 커피를 즐기는 그 시간 자체가 온전하게 좋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마치 다도를 하며 차를 마시는 것처럼, 나는 커피를 마시며 마음을 정돈하고 여유로운 척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 좋다. 아무리 치열한 출근길을 맞이했다 하더라도, 사무실 자리에 도착해 전기포트로 뜨거운 물을 끓이고, 저울을 이용해 원하는 원두의 무게를 맞추고, 핸드밀로 연필깎이 돌아가는듯한 소리를 내며 원두를' 드르륵드르륵' 갈아주면 원두가 가지고 있는 고소하고 달콤하고 푸릇한 향이 코끝을 스친다. 그리고 간혹 그 향이 사무실 전체에 퍼지며 전체적인 분위기를 환기시키기도 한다. 이렇게 유별난 아침 시간을 지나고 나면 다시 평온한 마음으로 하루를 여유 있게 시작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커피를 즐기고 좋아하다 보니 해외여행을 가게 되는 경우 그 동네에서 유명한 혹은 전통 있는 카페들을 꼭 방문하는 경험을 하곤 한다. 특히 일본 여행을 하면서는 어떤 동네를 가더라도 50년 이상 된 카페들이 많아서 동네 곳곳의 오래된 카페들을 방문하는 것이 여간 재밌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방문하고 나면 항상 커피라는 서양문화권의 음료를 판매하는 카페가 이렇게 오래된 곳이 있다니?라는 마음이 생기며 놀랍기도 하고 부럽기도 한 마음이 들곤 한다. 한국에서도 그 형태가 조금 다르긴 하지만 아주 오래전부터 커피를 마시고 있다. 아메리카노로 대표되는 지금의 카페 형태가 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에 정착하고 활성화되긴 했지만 그전부터 분명 한국에도 카페라는 것들이 존재했고 커피라는 음료를 즐겨 마시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거주하는 동네에서 주변을 검색해 봤을 때 대부분의 카페는 프랜차이즈의 형태를 띠고 있으며 개인이 하는 카페들도 채 10년을 못 채운 곳들이 대부분이다. 아니 솔직히 10년 이상된 개인 카페를 찾는 것은 전국적으로도 쉽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왜 우리나라에는 동네마다 이런 오래된 카페가 없는 것일까? 내가 이 질문의 정답을 찾기는 어렵겠지만 소비지로서 나의 주관적인 생각을 정리해보자면, 카페와 그 카페를 이용하는 고객으로 크게 구분 지어 생각하게 된다. 첫째로 카페 측면에서 생각해 봤을 때 카페가 전하고자 하는 철학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갑자기 '철학?'이라는 거창한 단어를 사용하려니 부담스럽긴 하지만 이만큼 나의 생각을 잘 전달할 단어가 마땅히 떠오르지 않았다. 커피를 내리는 기술에 집중하는 것이 아닌 여러 취향을 가진 고객들을 대상으로 내가 커피로 전달하고자 하는 나의 취향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하는 것,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취향을 나의 고객들도 좋아하게끔 하려는 여러 장치들이나 시도 그리고 노력 같은 것들이 더 본질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본질적인 노력들이 공간에 반영되고 나에게 전달되는 순간 말로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나는 그 공간을 좋아하게 되는 매력을 느낀다고 믿고 있다.


두 번째는 카페를 이용하는 우리나라 소비자의 특성에 있다고 생각한다. 어느 순간 카페는 트렌드라는 단어와 떼려야 뗼 수 없는 연관성을 갖게 된 것 같다. 트렌디한 인테리어, 트렌디한 메뉴 같은 단어를 이야기했을 때 가장 연상하기 쉬운 것이 아마도 카페이지 않을까 싶다. 그 시기에 유행하는 '메뉴' 들이 카페의 중심이 되고 그 메뉴들은 사진으로 찍혀 SNS에 공유된다. 즉 인기 있는 카페에서 인기 있는 '메뉴'를 소비하는 것이 우리나라 소비자들에게 꽤나 중요한 소비의 요소가 되어 버렸다고 생각한다. 이런 트렌드에 따라 소비를 하는 영향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본인의 취향을 이야기할 때 주변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고, 최신의 트렌드와 다른 개인의 취향을 드러내는 것에 불편함을 느끼고 어려움을 느낀다고 생각한다. 그렇다 보니 나만의 취향을 찾기보다는 요즘 인기 있는 것을 나의 취향으로 받아들이고 이용하는 행태가 우리나라 소비의 특성이 되었고, 이는 자연스럽게 어떤 취향을 오랜 기간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게 만드는 결과로 이어졌다고 생각한다.

(저가의 프랜차이즈 카페들도 많지만 이런 카페들은 공간으로서의 역할보다는 저렴한 커피를 파는 것이라는 행위에 더 집중이 되었다고 생각하기에 위의 생각에서 제외하고 생각하기로 했다.)


갑자기 카페가 아닌 빵집 이야기지만 작년부터 올해까지 대전의 빵집인 '성심당'이 지속적으로 관심을 받고 화재가 되고 있다. 성심당은 1956년 가톨릭정신을 바탕으로 '지역사회에 봉사' 하겠다는 철학을 가지고 처음 시작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전국적인 확장보다는 '대전의 문화' '대전에서만 사 먹을 수 있는 빵집' '지역사회에 봉사'라는 성심당의 철학을 통해질 좋은 재료를 합리적인 가격으로 지역 주민에게 제공하겠다는 방식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철학이 전해지면서 전국적인 대형 프랜차이즈 대신 지역 빵집인 '성심당'을 선택하고 이용하는 지역 주민들의 취향이 되었고 그 오랜 시간이 쌓이면서 현재의 전국적인 인기를 얻었다고 생각한다. 갑자기 빵집, 그것도 전국적으로 너무나 유명해진 '성심당'을 이야기 하긴 했지만 오래 유지되는 동네 카페들도 결국 비슷한 원리로 작동이 되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카페뿐 아니라 모든 식당이나 공간들도 동일한 원리로 작동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커피 전문가도 아닌 애호가로서, 자영업은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직장인으로서 주제넘은 이야기와 나의 주관을 두서없이 이야기해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각자의 철학을 가지고 운영되는 동네 카페나 식당들이 많아졌으면 하는 마음과 주변의 눈치를 보지 않으면서 나의 취향을 이야기하고 소비할 수 있는 문화가 활성화된다면 좋겠다는 욕심을 분명하게 이야기하고 전하고 싶었다. 본인의 철학을 담아 운영되는 특색 있는 가게들 그리고 남의 시선 상관없이 각자의 취향이 맞는 공간에서의 소비활동, 이를 통해 안정적으로 오랜 기간 돌아가는 지역사회. 어쩌면 오래된 카페에 대한 나의 갈증은 어쩌면 카페 그 자체보다는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1947년부터 영업하고 있는 나고야의 오래된 카페 (킷사텐) '콘파루 KONPARU'
콘파루의 인기메뉴인 에비프라이 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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