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이라는 단어에는 왠지 모를 따뜻한 감성이 있다. 바쁜 일상을 마무리하며 퇴근하는 시간에도, 주말의 여유로운 오후 산책 시간 속에도, 낯선 외국의 땅에서 맞이하는 시간에도 언제나 해가 지평선 너머로 넘어가는 동안 너무나도 포근하고 매력적인 풍경을 자아낸다.
노랗게 혹은 붉게 물드는 그 노을을 보다 보면 형형색색 변해가는 시간의 색을 오래 기억하고 싶은 듯 연신 카메라로 사진을 찍게 되기도 하고 또 어떨 때는 잠시 멈춰 그 색상의 변화를 넋을 놓고 눈으로만 관찰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런 행위들이 아직까지 나에게는 고민, 슬픔, 외로움의 아련함에 가까운 감정보다는 여유, 따뜻하고 포근한, 아름다움 같이 하루를 잘 마무리했다는 감정에 더 가까운 감상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 같다.
이렇게 따뜻하고 포근한 감정을 느끼게 하면서도 아름답기까지 한 노을이지만 일상 속에서는 일부러 시간을 따로 내어 찾고 지켜보려고는 하지 않는다. 하지만 캠핑이나 여행 같이 일상의 여유를 찾고 싶은 특별한 순간에는 되도록이면 노을이 지는 시간의 색을 관찰하기 위해 따로 시간 배분을 하거나 노을이 더 잘 보이는 장소로 일정을 잡기도 한다.
물론 이런 취향은 나만의 기호는 아니고 아내와 나의 잘 맞는 취향이기도 하다. 그래서 둘이 함께 노을의 아름다운 시간을 함께 하는 경우들이 대부분이다. 한 번은 아내에게 왜 노을 지는 시간에 하늘을 보는 것이 좋은지를 물어본 적이 있다. 이때 아내는 이렇게 대답했던 것 같다.
“그냥 아무 생각하지 않고 하늘의 색의 변화에 몰입할 수 있어서? 일종의 멍 때림이랄까?”
그리고 그 대답에 나는 이렇게 나의 의견을 답변했었다
“나는 하늘의 색이 불안정해서 좋아, 내가 예상할 수 없게 시시각각 계속해서 다른 색으로 변화하니
더 좋은 것 같아”
둘의 세세한 이유는 달랐지만 노을을 통해 느끼는 여유로움과 따뜻함 아름다움 같은 비슷한 형태의 감정을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글과 함께 담은 사진들은 24년 여름휴가에서 찍은 사진인데 사진을 찍을 때의 그 장소를 다시 떠올려 봐도 그 시간, 그 장소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미소를 짓고 있었고 여유로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약 40~50분의 시간의 색이 변화하는 과정을 모두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으며 불어오는 바람에 머리를 정리하거나 가끔씩 사진을 찍기 위해 핸드폰을 꺼내는 것 이외에는 모두 수평선 위로 변해가는 하늘에 집중하고 있었다. 아마 나와 아내가 그러했든 각자의 이유는 달랐겠지만 그 장소에 있었던 모든 사람들이 노을이 지는 시간을 좋아하고 즐기고 있다는 에너지가 전달되고 있었다.
노을은 시시각각 변화한다. 불안정한 존재이며 매일 그 시간에 찾아오지만 단 한 번도 완전히 동일한 색을 표현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반복되는 노을이 익숙하고 친숙하여 낯설지는 않지만 매일 새롭기 때문에 질릴 것을 걱정할 필요도 없는 존재이다. 더군다나 계절과 기온에 상관없이 노을은 따뜻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특히 추운 겨울이라도 노을을 보며 포근하고 따뜻한 감정을 느끼는 이유는 노을의 형태와 색을 만드는 주체가 태양이라는 따스함의 원천으로부터 만들어지기 때문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유난히 덥고 길었던 2024년의 여름, 이제는 산책하거나 야외에서 시간을 보내기 좋은 계절이 돌아왔다. 매년 그러하듯 가을은 매우 짧게 지나고 또 추운 겨울이 다가오겠지만 소중한 오늘과 지금을 위해 그리고 여름과 태양이 넘어가는 이 계절과 시간을 위해 매일의 노을을 기다리고 즐겨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