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여행 하다가 만취한 날
미리 예고하자면, 만취 상태에서 살짝 깬 지금 쓰는 글이라 살짝 두서없는 글이 될까 봐 걱정이다. 오늘은 그라나다로 향하는 날이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준비를 마치고 말라가에서 그라나다로 넘어왔다. 그라나다에 도착해 짐을 호텔에 보관하고 렌터카를 반납했다. 그러고는 근처에 브런치 카페로 향했다.
브런치 카페이지만 현지인들이 주로 먹는 간단한 메뉴가 많았다. 우리는 1/2 토스트 2개(아보카도+훈제연어, 깨+후무스), 크로와상 그리고 시금치 스크램블 에그+빵 메뉴를 주문했다. 훈제 연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여기는 비리지도 않고 간도 적당해서 아보카도와 잘 어울렸다. 후무스는 신기하게도 색이 노란색이고 새콤한 맛이 강했는데, 빵이랑 그럭저럭 잘 어울렸다. 크로와상도 고소하고 바삭하면서 부드러워서 맛있었고, 스크램블도 따끈하게 맛있었다.
그렇게 브런치를 든든하게 먹고 누에바 광장으로 향했다. 이곳의 메인 광장이자 그라나다 내의 다양한 지구를 연결하는 광장인데, 작지만 뒤에 멋진 건물도 있고 분수도 있고 알찼다. 잠깐 구경하고 근처 뚜론 집에서 달달한 견과류도 조금 사서 길을 나섰다. 다음으로 향한 곳은 알바이신 지구이다. 성 니콜라스 전망대에 가려고 했지만, 내가 산 미겔 알토 전망대로 잘못 찍는 바람에 험난한 길을 걸어가야 했고, 30분이나 걸어야 했다. 길을 잘못 찍어서 울퉁불퉁한 길과 계단을 30분이나 걸었는데 잘못된 전망대로 와서 굉장히 미안했다. 그래도 다행히 그라나다 시내와 산맥까지 전부 보이는 멋진 전망이 있어 잠시 쉬면서 풍경을 감상했다.
30분을 오르막을 걷는 게 힘들어서 잠깐 쉬었다가 카페로 향했다. 커피와 착즙 주스를 주문했는데 그저 그랬다. 그라나다는 전체적으로 중동 느낌이 강했다. 모로코와 아랍 분위기의 가게들이 즐비했고, 디저트도 카다이프처럼 중동 디저트를 많이 팔고 있었다. 거리에 중동풍의 노래도 많이 나오고, 기념품도 이슬람 분위기가 많이 느껴졌다. 이전 도시들과 다르게 조금은 치안이 좋지 않았고, 집들도 빈 집이나 보수가 필요해 보이는 집들도 많이 보였다. 전에 워낙 좋고 예쁜 도시들을 많이 방문해서 그런지, 다들 조금은 실망한 분위기였다. 그래도 전과는 다른 이색적인 풍경이라서 신기했다.
다음으로는 이슬람과 아랍 문화가 강하게 느껴지는 거리인 칼데레리아 거리로 향했다. 확실히 중동 분위기의 기념품도 많고, 카다이프와 같은 중동 디저트도 많이 팔고 있었다. 나는 살짝 반대했지만, 엄마는 여기서 전등도 하나 구매하셨다.
그렇게 거리를 구경하고 잠시 호텔에 들러 체크인을 마저 하고 츄러스를 먹으러 갔다. 그라나다에서 가장 유명한 츄러스 집이었는데, 역시 한국인 관광객이 많았다. 우리는 츄러스 1개와 초콜릿 1개를 주문했다가 부족한 것 같아서 1개를 추가로 주문했다. 나온 츄러스는 바삭함은 조금 덜하지만 부드러웠고, 먹어본 츄러스 집 중에서 가장 초콜릿이 꾸덕해서 맛있었다. 아빠와 언니의 원픽 츄러스 집이었다.
그러고는 알카이세리아라는 시장으로 향했다. 여기는 원래 실크를 팔던 시장이었는데, 지금은 다양한 기념품을 판매하고 있었다. 우리도 기념품을 조금 구경하다가 나왔다. 다음으로는 근처에 있던 그라나다 대성당을 구경했는데, 그동안 성당을 너무 많이 가고, 화려한 성당을 많이 봐서인지 들어가고 싶은 생각이 크게 나지 않아 패스했다. 그러고 나니 더 이상 갈만한 곳이 없었다. 그라나다는 알함브라를 보기 위해 간다는 말이 있는데, 알함브라는 내일로 예약해서 이제 유명한 곳은 다 간 것 같았다. 그렇게 고민을 하다가 주변에 있던 까르투하 수도원으로 향했다. 까르투하 수도원은 버스를 타고 갔는데, 앞에서 봤을 때는 크게 특색이 없어서 조금 실망했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티켓을 끊고 들어갔는데, 티켓과 함께 나오는 오디오 가이드가 훌륭했다. 수도원에 들어가자마자 멋진 정원이 있었고, 다음으로는 방들이 있었다. 방에는 특이하게 그림으로 가득했는데, 하나의 스토리를 가지고 3-4개의 연작이 있는 게 신기했다. 이 성당의 하이라이트는 예배당이었다. 들어가자마자 화려한 장식에 압도되었다. 매 순간이 감탄의 연속이었다. 입장료가 있는데 아까울까 봐 걱정이 많았는데, 정말 입장료가 하나도 아깝지 않은 구경이었다. 조각도 많고 그림도 많은데 조각상의 표정이 리얼하고 곳곳에 숨어있는 디테일이 예술적이었다. 오디오 가이드도 재밌고 자세해서 열심히 듣고 나왔다.
그렇게 수도원 구경을 마치고는 시내로 돌아와 타파스 바로 향했다. 그라나다는 특이하게 주류를 주문하면 타파스를 무료로 주는 곳이 많았다. 우리가 향한 곳도 무료 타파스가 있는 곳이었는데, 그중에서도 타파스를 선택할 수 있는 집으로 향했다. 처음에는 와인 3잔과 맥주를 주문하고 문어 구이, 어니언링 그리고 생선 튀김을 주문했다. 타파스도 맛있고 술도 술술 들어갔다. 타파스가 같이 나오니 술을 쭉 마시게 되어서 3잔이나 더 주문했다. 다들 술을 그렇게 잘 마시지 못하는데 역대급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다음 안주로는 쵸리조도 주문하고 페퍼 샐러드도 주문하고 다양하게 주문해 봤다. 주류 하나에 작은 접시 하나씩 나오니 곁들여 먹기도 좋고 고르는 것도 재밌었다.
그렇게 왕창 마시고는 귀가하다 근처에 유명한 치즈케이크 집에 들러 치즈케이크도 사고, 마트에서 요거트와 과일 그리고 와인도 사서 귀가했다. 집에서 2차전이 펼쳐졌다. 와인과 각종 과자류도 끓이고, 라면도 하나 꺼내서 먹었다. 와인과 맥주를 홀짝홀짝 마시다 보니 뜨끈한 국물이 당겨 블록국으로 우거지 국도 끓여 먹고, 과일도 치즈케이크도 먹었다. 너무 많이 마셨는지 나도 꽤나 만취하고 언니도 아빠도 만취에 가까워졌다. 결국 10시쯤 다들 술에 취해 하나 둘 잠에 들었고, 나도 11시 전에 잠에 들었다. 시작은 미약했지만 끝은 창대했던 그라나다에서의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