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그냥 엄마면 된다.
정여사와 둘째 딸 이야기는 10회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9회까지 쓰고 갑자기 몸이 너무 아파버렸습니다.
1회만 더쓰면 되는데, 마무리를 하지 못하고 이리 늦게 마지막 글을 쓰게 되어서 송구합니다.
엄마가 가장 강해지는 순간은 자식에게 큰일이 생겼을 때가 아닐까 싶다. 무엇보다 자식이 아플 때 엄마는 초인적인 힘과 낙관주의를 발휘한다. 어렸을 때는 아프면 엄마에게만 말하면 되었다.
엄마가 병원도 알아봐 주고, 데려가 주고, 약도 챙겨주고, 다 나을 때까지 나는 그저 엄마가 시키는 대로 하기만 하면 됐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나는 그냥 아픈걸 조금 참고 기다리면 엄마가 다 낫게 해주는 거였는데, 그때는 그게 그렇게 힘들었다.
어느덧, 노년의 나이이신 엄마와 중년의 나이가 된 나는 이제 모든 상황이 바뀌었다.
일단 아파도 엄마에게 말하지 않는다. 그리고 엄마는 내가 아픈 걸 알아도 당신 젊었을 때처럼 나에게 모든 것을 해줄 수가 없다. 엄마도 걱정되는 마음은 있지만, 과거보다는 나의 문제에서 한 발치 떨어져서 바라보는 느낌이다. 자식 걱정하는 마음이야 변했겠냐만, 걱정하는 표현의 세기가 현저히 낮아졌다.
'여기 아프냐~ 저기 아프냐~'물어보며 손가락을 지압해 주는 엄마의 손길도 더 이상 아프지 않다.
이런 순간에... 아.. 이제는 내가 스스로 알아서 살아야 하는구나... 를 더 피부로 느끼게 된다.
이제는 엄마가 아프면 자식이 강렬한 에너지로 호들갑을 떨 차례이다.
정여사가 발에 금이 생겨서 깁스를 하게 되었다.
밤에 화장실 가려고 일어나시다가 힘이 빠져 옆으로 넘어지신 것이다. 정여사는 절대 넘어졌다, 아프다는 말을 하시지 않는다. 어쩐지 그 좋아하는 아쿠아도 안 가시고, 소파에 계속 앉아만 계시더라니...
다음날 밤이 되어서야 둘째 딸은 정여사 다리에 상처를 발견하고 꼬치꼬치 캐묻는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넘어진 것 같기도 하다...'등 대답을 얼버무리고 잠을 청하신 다음날, 발을 보니 퉁퉁 부어있다.
당장 병원에 가자고 둘째 딸은 이야기하지만, 정여사는 어제보다 덜 아프다며 병원을 가지 않겠다고 하신다.
울화가 치민 둘째 딸은 정여사에게 온갖 잔소리를 하지만 절대 듣지 않고, 미국에 있는 장녀와의 통화 후에 병원에 가기로 마음먹으셨다. 비상식적인 고집에 너무 화가 난 둘째 딸은 그대로 집을 나갔다.
병원에 가니, 발에 금이 갔다면, 발에 깁스를 하고 집으로 오셨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온 둘째 딸에게 머쓱했는지 화해를 시도하신다.
정여사 : 둘째 따님~ 제 발좀 보세요~ 금이 가서 깁스했어요~
둘째 딸 : 봐봐 거봐. 내가 병원 가야 한다고 했지? 뭐 하러 그렇게 고집을 부려
정여사 : (정여사의 필살기, 말 돌리기) 느그 아빠는 이 추운데 운동 갔다.
둘째 딸 : 아빠한테 병원 좀 같이 가달라고 했더니, 그새 나가셨어?
어느 순간, 고집부리는 정여사에서 아픈 엄마를 병원에 혼자 보낸 아빠한테로 주의가 집중되었다.
ㅎㅎ 정여사가 그렇지 뭐.
정여사가 자식 아플 때 쏟았던 그 모든 관심과 에너지를, 이제 자식이 정여사에게 똑같이 쏟고 있다.
힘들 때만큼은 엄마한테 가장 기대고 싶은 게 자식이지만, 엄마에게는 이제 마음만 기댈 수 있다.
그리고 마음을 기댈 수 있는 엄마가 계셔서 너무 행복하다.
엄마는 엄마다. 그냥 아무 말, 아무것도 필요 없이 그냥 엄마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