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여사의 필살기

알고 있지만 져드리는 겁니다.

by 리썬이

누구나 자신이 궁지에 몰리거나 몹시 당황했을 때, 그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사용하는 필살기가 있다.

아마도 스스로는 의식하지 못하지만, 그 상황을 여러 번 목격한 가까운 사람은 알 수 있는, 그 사람만의 상황 모면 필살기.

나의 필살기는 주위 환기 시키기다. 어렸을 때 엄마에게 정말 혼이 많이 났는데, (사실 중학교 들어가기 전까지의 모든 기억이 혼난 기억밖에 없을 정도로..) 그때마다 나는 나의 필살기를 강화시킬 수 있었다.


정여사 : 집도 안 치워놓고, 숙제도 안 하고, 엄마가 화를 안내면 아무것도 안 해! 몹시 화난 목소리로 잔소리 잔소리 잔소리 계속 잔소리
둘째 딸 : (마침 할머니가 나오셨다) 어! 할머니?? 엄마 오셨어요~
정여사 :??????
둘째 딸 : 엄마 아까 할머니가 김치 가지고 뭐라고 뭐라고 하시던데. 할머니가 뭐라고 안 하셔?
정여사 : ........................ ......................................방치워!!!! 나중에 봐 아주!!!!

(상황 일단락)


이런 나를 언니는 아주 기가 막히다면서 칭찬했었다. 잘 빠져나간다고.

그런데 나의 이런 필살기는 유전이었다. 정여사의 필살기가 본인의 어필 포인트(나이 듦)를 이용한 말 돌리기였던 것이다.

사실, 우리가 어렸을 때는 정여사가 궁지에 몰리거나 당황할만한 상황 자체가 없어서 몰랐다.

어린 자식이 어찌 부모를 당황하게 만들 것인가..

하지만, 이제는 나도 나이가 들어서 할 말은 하기 때문에, 정여사에게 당황스러운 순간들이 생기고 있다.


정여사 : 그만 먹어! 배퉁아리 튀어나와!
둘째 딸 : 나는 표준 체중이야 괜찮아. 다른 사람 다 괜찮다고 하는데 정여사만 그렇게 잔소리야~
정여사 : 아냐. 옛날에는 그래도 좀 볼만했는데, 지금은 별로인 보통이야.
둘째 딸 : 정여사가 볼만하다고 했을 때, 내가 맘고생하느라 소화도 안돼서 깡말랐을 때야. 얼굴이 너무 퀭해서 내가 불쌍해서 거울을 못 보겠더라. 회사 사람들이 어디 아프냐고 걱정스럽다고 할 때, 정여사는 예뻐 보였어? 어떻게 어디 아프냐고 한마디 물어보지를 않어!!
....................
정여사 : .............오늘 퇴계원 병원에 선생님 나오는 날이야? 요새 허리가 아파서 잠을 못 자부러. 나이가 드니까 안 아픈 데가 없어.
둘째 딸 : 갑자기?............... 퇴계원 선생님 화요일에 쉬시니까, 오늘 나와. 내가 데려다줄게. 같이 가.


정여사 아프시다는데, 어찌 불평을 이어가겠는가... 병원에 모셔다 드리고 극진히 의전 해야지.

옛날 같으면 밑도 끝도 없이 웬 병원이냐, 말 돌리지 말아라 할 텐데, 요새는 정여사의 필살기 패턴이 파악되어서 그런지 그냥 귀엽고 웃음만 난다. ㅎㅎㅎㅎ

참 귀여운 정여사 ㅎㅎㅎ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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