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정여사

가장 괴로운 사람이 가장 행복해질 권리가 있다.

by 리썬이

나의 기억에 부모님은 참 많이 싸우셨다.

지금은 부부가 싸우는 것이 숨 쉬는 것과 같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걸 알고 있지만, 그것을 알지 못했던 어린 시절에는 부모님의 싸움이 나의 인생의 전반적인 행복감과 매일의 기분을 좌지우지하는 중요한 요인이었다. 특히 감수성이 예민하고, 눈치를 많이 보는 둘째 딸인 나에게 부모님의 싸움은 정말 성가신 일이었다.


부모님 싸움의 원인이야 정말 셀 수도 없이 많고, 그 심리야 이해할 수도 없이 복잡하겠지만, 남의 편인 남편과 그의 어머니인 시어머니와 시댁에 섭섭한 마음, 억울함, 나만 혼자인 것 같은 외로움, 자식 때문에, 경제력 때문에 갈라서지도 못하는 괴로움등이 엄마의 젊은 시절을 지배했다는 건 안다. 그리고 사는 것이 그 정도로 힘겨워지면, 엄마의 감정과 사고, 행동을 지배하는 건 더 이상 엄마 자신이 아닌, 삶의 괴로움이다.

그래서 그 당시 엄마의 말과 행동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많았고, 이런 감정과 모습을 그나마 표출할 수 있었던 대상은 공부 잘해서 건드리면 안 되는 첫째도, 귀하디 귀한 막내아들도 아닌, 둘째 딸이었다.

둘째 딸이 기억하는 엄마는 항상 화를 내거나, 혼내거나.........


엄마에 대해서 잊히지 않는 순간이 있다.

내가 초등학생 때였다.

언니와 남동생과 함께 저녁을 먹고 있었는데, 밥을 먹다가 엄마에게 호되게 큰소리로 혼이 났다.

혼이 난 이유는 김을 두 장 집어서 먹었다는 것이다. 소금 바른 김이었던 것 같은데, 한 번에 김을 두 장 집어 먹었다는 이유로 너무 무섭게 혼이 났다. 더 잊히지 않는 건, 김을 두 장 집은 나를 쳐다보는 엄마의 표정이다.

내가 얼마나 밉고 싫었으면, 저런 표정으로 이렇게 혼을 내지?


또 생각나는 순간은... 지금은 제사음식을 많이 차리지 않지만, 엄마가 할머니와 함께 살며, 한참 시집살이를 하던 시절에는 큰제사상을 제사 음식으로 가득 채워야 했다. 물론, 그 제사 음식은 엄마 혼자 준비한다.

당시 살던 집에는 부엌에 문이 있었는데, 늦은 저녁 부엌문을 열자, 엄마가 혼자서 음식을 준비하고 계셨다.

당시에는 힘들겠다, 도와야겠다... 생각하지 못했지만, 나이가 들수록 차가운 부엌바닥에 혼자 쪼그려 앉아 제사음식을 준비하던 엄마의 뒷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난 아마도 그 차갑고 외로워 보이는 부엌바닥에 혼자 쪼그려 앉아있는 엄마 뒷모습 때문에, 나에게 모질게 군 많은 순간들이 다 이해가 되나 보다.

어느 순간, 엄마가 살아온 인생을 생각하면, 엄마의 그 어떤 말과 행동도 이해하지 못하거나, 용서하지 못할 것이 없게 되었다. 그리고 둘째 딸을 밀어내던 엄마의 손에 힘이 빠지기 시작하면서, 둘째 딸은 서서히 엄마인 정여사의 껌딱지가 되어갔다.


둘째 딸이 40대 중반이 된 지금은, 더 이상 엄마는 화를 내거나 혼을 내지 않는다. 세월이 흐를수록 젊은 시절의 엄마의 인고와 노력이 빛을 발하게 되어, 온 가족의 사랑과 케어를 받는 정여사로 승급되었기 때문이다.

엄마가 어떤 말과 행동을 해도 아빠를 포함한 가족이 반기를 들지 않기 때문에, 싸움도 또한 성립되지 않는다.

이제는 부모님이 싸우시는 일이 많지도 않지만, 싸우신다 하더라도 나에게도 더 이상의 타격감은 없다.

엄마의 모든 행동이 이해가 되기도 하고, 오히려 '저렇게 화내고 싸울 기력도 있으시고, 건강하시구먼!'이라고 생각되어, 오히려 무기력한 것보다 기쁘다.


모든 사람은 성장한다. 엄마도 성장했고, 아빠도 성장했다.

죽도록 싸웠지만, 긴 시간 참고 노력하면서 버텨온 결과, 80세를 바라보는 지금은 서로가 있어, 계단 내려올 때 잡아주고, 건강으로 잔소리 배틀하는 두 분이 되었다.

부모님의 힘든 모습을 가장 많이 보고, 겪어야 했던 둘째 딸이기 때문에, 이런 두 분의 모습에 가장 행복감을 느끼는 것도 둘째 딸이다. 그래서 둘째 딸은....두분의 모습이 감사하다.


뭔가 복잡하고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어쨌든 결론은 둘째 딸도 잘 성장했다는 해피엔딩이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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