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장탐구가 Oct 06. 2021

거기서 느낄 줄이야

생각하는 게 염세적이라는 말을 종종 들었다.

세상을 아름답게 보지 못하고,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관념이 박혀있나 보다.

내게 놓인 경제적 환경을 탓하며 자랐다.

한없이 부족한 사람이라서, 지금 달리지 않으면 나락으로 떨어질 운명이라고 믿고 살았다.

쟁쟁한 남들 만큼 되진 못해도, 그 무리 어느 중간쯤에서 태연한 척 소속되어 있으려면,

뒤에서 이 악물고 부족한 부분들을 채워야만 따라갈 수 있다고 믿었다.


나는 행복이.. 늘 내가 걷는 길 저 멀리에 있는 것 같았다.

내가 지금 달려야만, 언젠가는 도달할 수도 있는 곳이라고 믿었다.

조금만 더 벌고, 조금만 더 아껴서 집을 사고, 남부럽지 않은 차를 사고 나면..

언젠가는 나도 여유롭게 누리면서 살게 될 거고, 그때 진정 행복하리라 생각했다.


임신한 와이프가 일주일간 친정에 가 있겠다고 했다.

잘 다녀오라고 말하고 출근을 했다.

나름 하루 종일 치이고, 집에 왔다.

물을 먹으려고 냉장고로 향했다.


문 앞에 종이가 붙어 있다.

'냉장고에 있는 음식들'

냉장실에 케이크, 소시지, 우유 빨리 먹고 치우세요.

냉동실에 돈가스, 갈비탕, 대패삼겹살 있음. 홈쇼핑 음식들 얼른 먹고 치우세요.


나는 갑자기 미소가 지어졌다.

사소하지만, 결코 사소하지 않은 챙김이

이렇게 따뜻하게 다가올지 몰랐다.

마음이 따뜻해지고, 또 한편으론 마음이 아렸다.

나는 혼자가 아니다.

행복은 저 멀리 있지 않았다.

냉장고 앞에도 있었다. 







작가의 이전글 관심은 변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