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소설에 대한 소소한 생각
1. <채식주의자>와 청소년 금서
노벨문학상은 특정 작품이 아닌 한 작가의 작품세계 전반에 주어지는 큰 상이지만, 맨부커상을 먼저 수상하며 유명세를 탄 <채식주의자>는 여러모로 이슈가 되었던 책이다.
특히 학모들과 만나게 되면 이 책을 아이들이 읽어도 되는 것인지 아닌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곤 한다
서스펜스, 스릴러, 호러, 판타지... 여러 요소를 복합적으로 혼합한 듯한 다소 기괴하고 충격적이기까지 한 <채식주의자>는 교육청에서 청소년 금서로 지정된 도서라는 것을 두고 의견이 분분했었다.
한강의 소설이 훌륭하다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지만, 나 역시도 이 책은 아이들에게 선뜻 권하지 못했다.
아직 성인이 되지 않은 청소년들은 이 거대하고 복합적인 소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을까. 문학적 수준의 갑작스러운 도약은 혼란스러울 것이고 자칫 다른 방향으로 이해하려 들 수도 있을 것이다.
채식주의자는 어둡고 음울한 분위기가 주는 무게감으로 성인들도 읽기를 꺼려하는 사람들이 있다. 많은 소설이 경험을 토대로 하거나 상상 가능한 범위 내에 있을 법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지만, 채식주의자는 일반적인 소설과는 느낌이 조금 다르다. 파격적이고 충격적인 내용인데다 치밀한 서사구조 속에 강한 흡입력은 현실에서 고통받는 주인공으로 인해 읽는 사람도 내내 마음이 힘들고 고통스럽다. 윤리적이고 병리학적 기준으로 소설의 위험성을 따지기도 하지만, 그러한 관점에서 보는 것이 큰 의미가 없어 보인다. 채식주의자는 현실적인 잣대로 보기 어색한 부분이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뿌리에는 신화적 요소가 자리하고 있다. 인간 태초의 원형적 신화 -인간과 동물의 경계가 없던-에서 한걸음 더 나아간 식물로의 회귀, 고통과 고난을 겪은 뒤 새롭게 태어나는 영웅의 이야기... 아폴론의 손이 닿는 순간 월계수로 변해가는 베르니니의 조각상 '아폴론과 다프네'의 다프네의 모습도 보인다.
신화적 환상성은 한강소설의 차별화된 특징이다. 이러한 요소들을 알 때, <채식주의자>를 좀 더 편안하게 읽을 수 있다.
그러나 노벨상과 청소년 금서와는 다른 차원의 문제인 것 같다. 한강의 소설들이 훌륭한 것은 틀림없지만, 현실적인 이유로 <채식주의자>가 청소년들에게 금서로 지정될 만한 데에는 일리가 있다.
한강 작가는 소설을 쓰다 고통받는 소설 속 인물로 인해 때론 앓아눕기도 한다고 한다. 문학이 삶이고 삶이 문학인 한강작가는 예술가나 다름없어 보인다. 예술은 어떤 면에서는 불편하고 낯설다. 그러기에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작가의 심연 속으로 다가가는 것이 때론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청소년들에게 <채식주의자>소설은 아직 이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