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뉴저지
보스턴에서 아침부터 미니 SUV를 타고 달리다가 마침내 뉴저지 표지판을 보니 힘이 났어요.
도로도 널찍하고 특별한 웰컴사인도 없이 입성했지만 목적지에 다 다른 기분에 흥분하기 시작했지요.
그리고 계획한 대로 날이 어두워지기 직전에 뉴저지에 도착해서 점심을 먹을 수 있었어요.
꼬불꼬불한 길을 따라가니 나를 잘 기억하고 있는 이모네 가족이 나와서 우리를 맞이해 줬어요.
엄마가 말씀하셨던 미국이란 큰 나라에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러 갈 수 있는 일이 얼마나 귀중한 행복인지 저도 알 것 같아요.
도착하는 순간부터 엄마는 이모와 수다를 하느라 바빠지셨고, 아빠는 삼촌과 이야기를 나눴어요. 저는 동생과 놀았어요. 집 밖에 까지 나와 우리를 제일 처음으로 맞이해 준 동생이 장난감을 보여줬는데 제가 좋아하는 장난감과 똑같은 것이었어요.
점심을 먹고 있으니 고등학생 형, 중학생 누나가 차례로 하교해서 다 함께 게임도 했어요. 미국이지만 한국 같았고, 한국 같지만 분명히 미국이었어요.
5살이었던 동생은 나와 헤어질 때 아쉬워했어요. 우리가 함께한 시간은 겨우 몇 시간 정도였지만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는 동생의 마음을 알 것 같아요.
아니, 그 마음이 무엇인지 곧바로 기억이 났어요.
미국에 처음 왔을 때 누군가 만나고 헤어질 때면 느꼈던 그 기분.
동생에게 그 기분을 가르쳐 주는 형이 되었다는 것은 내가 미국에서 사는 방법을 조금 터득한 것이겠죠?
우리가 더 오랜 시간 함께하지 못하는 이유를 묻는 동생에게 대답해 주는 대신 제가 좋아하는 미니카 3대를 줬어요. 미니카를 손에 쥐고 있으면 섭섭할 때 위로가 되거든요.
결국 아쉬운 이별을 하고 다음 목적지인 뉴욕으로 향했어요. 많은 사람들이 뉴저지에서 뉴욕으로 출퇴근을 하기 때문에 서둘러야 한다고 알려주셔서 최대한 일찍 움직였지만 정말 한국의 도로가 꽉 막혔던 모습이 기억나는 경험을 했어요.
오늘은 내가 서울과 미국을 왔다 갔다 하는 것 같아요.
10) 뉴욕
뉴욕은 우리 가족이 자주 여행 하는 도시예요.
엄마는 뉴욕에 항상 겨울에만 온다고 또 투덜거리기 시작했지만 누구보다 반짝이는 뉴욕을 사랑합니다.
우리가 뉴욕에 올 때마다 내가 세상에 나오기 전에 뉴욕에서 있었던 추억을 이야기해 주시는데 그때마다 엄마의 눈빛은 뉴욕을 닮아 있어요.
이번 뉴욕여행에서는 자유의 여신상 크라운에 올라가기로 했어요. 하지만 높이에 대한 두려움 앞에 나는 포기하고 말았어요. 그동안 자유의 여신상을 만나고 가는 길은 항상 즐거웠는데 이번에는 반대였어요.
평소에 제 부탁을 잘 들어주시는 아빠는 이번에는 저의 선택에 반대를 했어요.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올라갈 수 있다고 용기를 주셨지만 저는 눈물만 나왔지요.
이번에는 엄마가 제 편이 되어주셔서 너무 무섭다면 포기하고 다음에 도전해도 된다고 말씀하셨어요.
저는 안도하며 자유의 여신상에서 탈출했어요. 하지만 그 순간 후련함 대신 후회가 밀려왔어요. 포기를 해보니 다음 여행에서는 도전에 대한 의지가 오히려 더 강해졌어요.
다음 뉴욕여행에서는 꼭 크라운 위에 올라가 있는 내 모습을 상상하고 다시 무섭다는 공포감 앞에 포기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어요.
우리 가족이 뉴욕에서 꼭 하는 것이 몇 가지 있는데 그중 하나는 타임스퀘어 광장에 있는 식당에 가서 밥을 먹는 것이에요.
창가에 자리 잡고 앉아 밥을 먹으면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음식이 늦게 나오는 미국식당이 하나도 지루하지 않아요. 하지만 이번에는 좀 다른 메뉴에 도전하게 됐어요.
뉴욕에 올 때마다 엄마가 입이 닳도록 이야기했던 피자를 드디어 먹었거든요. 미국 관광의 필수코스인 ‘스트리트의 블록을 세어가며 하염없이 걷기’를 하고 있었는데 엄마가 갑자기 흥분하며 소리쳤어요.
바로 저기야!
어느 뒷골목에 있는 피자가게였어요. 간판보다 가격과 피자 사진이 크게 쓰여있는 가게였어요.
두 조각에 $2 하는 작은 피자 가게.
뒷골목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데 그동안 너무 어린 저를 데리고 뒷골목을 다니는 일이 어려워 항상 포기했던 메뉴였대요. 한 조각이 내 얼굴만 한 피자. 여기에 고춧가루와 치즈가루를 뿌린 후, 길거리에서 적당히 자리 잡고 서서 먹으면 뉴욕에서 가장 맛있는 식사를 한 것이라고 해요.
물론 우리 엄마 기준이에요. (아빠와 저는 동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