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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윤호 Oct 24. 2024

두 번째 여행: 남쪽 끝까지


2023/2/18-2/23, 6일간



11) 플로리다

이번 여행의 목적지에 깃발을 꽂은 것은 바로 저입니다!  NSCAR DAYTONA 500 경기를 보기 위해 플로리다로 떠나자고 제안했거든요. 데이토나가 어디쯤 있는지 아빠와 함께 지도를 보면서 경로를 짜다 보니 키웨스트까지도 갈 수 있는지 궁금해졌어요.  지리 시간에 배운 미대륙의 최남단. 키웨스트. 바로 그곳도 플로리다에 있기 때문이에요.  아빠는 가능할 것 같다며 두 번째 깃발까지 꽂아 주셨지요.


이번 여행의 목적지는 이렇게 두 곳을 기점으로 시작이 됐어요.


역시나 아빠의 일정변경으로 많은 수정이 있었지만 내가 좋아하는 NASCAR 경기를 본다는 설렘으로 변경되는 일정도 참을 수 있었지요.


우리 학교는 2월 방학이 있는데 모두가 이때를 ‘스키  브레이크’라고 불러요. 근교로 스키여행을 다녀오면 안성맞춤이거든요. 서로 계획을 이야기하며 방학 때 제가 플로리다로 떠난다는 이야기를 하면 주변의 대부분 사람들은 올랜도의 디즈니월드 이야기를 했어요. 그때마다 데이토나500 경기를 보러 간다고 이야기하면 호응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요.


그래도 괜찮아요. 내가 어릴 적부터 책에서만 보던 경기를 직접 보러 가다니…… 너무 멋지지 않나요?


데이토나 500은 500마일을 레이싱하는 경기로, 경주 트랙을 200바퀴 정도 도는 경기예요. 이벤트를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아서 아침 일찍 경기장으로 향했어요.  게임 시작은 저녁이지만 전시된 차 구경도 하고 점심도 먹었지요.  트랙 워킹이벤트 신청을 해서 직접 트랙 안으로 들어가 볼 수도 있었어요.  수없이 많은 타이어 자국들이 얼마나 스릴 넘치는 레이싱인지 이야기해 주고 있었어요.  사인펜을 들고 와서 아스팔트 바닥에 메모를 남기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저는 아무 준비 없이 갔었기 때문에 구경만 했어요. 그러다가 마주친 할아버지께 펜을 빌려 저도 메모 한 줄을 남길 수 있었어요.

“Day tona”


너무 오랜 시간 행사 구경을 해서 힘이 들었지만 경기관람은 정말 재밌었어요. 고막이 찢어질 것 같은 모터소리와 경주의 마지막 순간까지 이어지는 사고들, 자동차 경주에서 느낄 수 있는 모든 짜릿함을 경험했어요. 라디오 주파수를 맞춰서 듣는 레이서들의 통신은 마치 영화를 보는 것 같았어요. 사고로 경기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피트에서 레이서에게


“여기까지 하는게 좋겠어. 다음 기회에 도전하자”


라고 마무리 멘트를 하던 순간은 잊을 수가 없어요.  영화 ‘카’에서 허드슨박사와 맥퀸이 무전하면서 하던 대화처럼 아쉬워도 멋진 순간이었지요. 그리고 메이터 아저씨가 라디오 크루가 됐을 때 들었다면 얼마나 재밌었을까 상상도 해봐요.


수년간 저와 함께 미니카 놀이를 해 오던 엄마도 감동하셨어요.


도대체 규칙이 뭔지는 모르지만 우리가 늘 하던 놀이가 모두 저기에 있다면서 이 경기를 직접 본 것은 감동적이라고 하셨지요.  엄마의 육아생활을 응원받았다고 하셨어요. 그 뒤로 잠자리에 들 때까지, 이제는 기억이 가물가물한 미니카 놀이 이야기를 끝도 없이 들려주셨어요.


호텔 체크아웃을 하는데 직원이 아빠의 데이토나 기념 모자를 보고 인사 했어요. 그 아줌마도 아들의 생일 선물로 데이토나 경기를 보고 왔다고 반가워했지요. 드디어 죽이 맞는 사람을 만나서 어제 경기가 재밌었다는 이야기도 하고, 우리아빠도 아들을 위해 경기를 보러 왔다고 흐뭇해하며 자랑하셨어요.  좋아하는 게 같은 사람을 만나면 그 일이 더 좋아지게 되는 것 같아요.

두 번째로는 아빠가 좋아하는 존에프 케네디 스페이스 센터에 갔어요.  그동안 몇 군데 우주 박물관을 가 봤지만 이번에는 버스를 타고 투어 해서 그런지 내용이 쏙쏙 잘 들어왔어요. 스페이스 X가 곧 발사예정이라고 했는데 시간을 맞춰 가서 봤더라면 좋았을 것 같아요.  인류가 도전한 우주 프로젝트의 역사와 달 착륙, 아폴로 우주선 이야기를 거대한 규모의 실제 우주선 전시와 함께 볼 수 있었어요.


하지만 저는 우주로 가는 체험을 포기했어요. 이번에도 공포감 때문에 시뮬레이션 기구에 탑승 후 뒷문으로 도망쳐 나왔어요. 훌륭한 우주인들이 계속 기술을 발전시키고 있으니 저는 우주보다는 지구를 사랑하며 살기로 했어요.  지난 뉴욕 여행에 이어 또 포기하는 모습을 보고 안타까워하던 엄마는 기념품 가게에서 쿨한 말들이 새겨진 컵을 사 주셨지요.



드디어 미국의 남쪽 끝, 키 웨스트로 향해갑니다.  

내가 아는 정보는 최남단, 그것이 전부였어요.


어딘가의 끝을 가본다는 것은 문제집을 한 권 다 끝내고 뒷마당에서 불태울 때의 기분이에요. 내가 그 문제집을 다시 풀어도 100점을 맞을 수는 없지만, 정복했다는 기분. 그 기분과 꼭 닮아있어요. 그래서 저는 남쪽의 “끝”이라는 것만으로도 꼭 밟아 보고 싶었어요.  


땅따먹기에서 돌을 튕긴다면 어떻게 해서든 이곳까지는 보내고 싶은 지점이 바로 키웨스트였어요.  

나의 호기심을 해결해 주기 위해 아빠는 키웨스트까지 운전하기로 결심했어요.  지도에서 길게 육로로 이어진 길을 확인하면서 아빠와 저는 됐다고 외쳤지요.


미국의 남쪽 끝에 가면 무엇이 있을까?


아빠는 늘 해변도로를 찾아서 달리는데 이번에도 키웨스트까지 이어진 해변 도로를 달리는 것에 흥분해 있었어요.  그런데 이럴 때면 매번 지도에서 찾았던 해변도로는 벽이나 숲이 바다풍경을 막고 있어서 제가 실망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에요. 그리고 이번에도 그랬습니다.   바다 위를 달리는 기분을 잔뜩 기대했지만 어쩔 수 없었어요.  하지만 그 대신 너무 멋진 노을을 향해 끝까지 질주했지요.


길게 이어진 해안도로 위에서 엄마, 아빠의 다툼도 있었고 바다가 보이지 않는 해안도로에 실망하는 나도 있었어요.  그래도 그렇게 남쪽 끝까지 달려간 곳은 우리 가족이 다 함께 놀기에 최고였어요.  


아직 읽어 본 적은 없지만 노인과 바다라는 작품이 탄생한 곳이기도 해서인지 노인들도 많았어요. 작고 평화로운, 흥이 넘치는 섬. 끝을 밟는 경험은 무엇보다 멋진 일이었어요.

차 안에서 이유 없이 불쑥 나온 생각이 있었는데.. 창밖을 보며 내가 저녁으로 에스까르고를 먹을 확률은 어느 정도일까? 였어요.


이 엉뚱한 생각을 꺼내서 이야기하니 엄마, 아빠는 그 요리 맛이 특별하진 않다고 가볍게 넘기면서 여기까지 와서 갑자기 프랑스요리를 찾는 이유를 물으셨지요.   


그냥 끝없는 길 위에서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었기 때문에 대답을 할 수는 없었어요.  그런데 도착하자마자 기가 막히게 아빠가 프렌치 식당을 찾았고 그곳에서 저는 에스까르고를 처음으로 먹었어요.


내가 궁금했던 것은 ‘불쑥 튀어나온 생각이 실현될 확률은 얼마일까?’였는데 그 답은 정확하게 100프로가 됐어요. 여행은 이럴 때 정말 짜릿해요.


탈출하고 싶던 엄마와 아빠가 싸우던 차 안 있다가, 이루어질 확률이 0 같은 엉뚱한 일이 갑자기 일어나는 것.

키웨스트에서 노인과 바다의 작가 헤밍웨이의 집도 직접 볼 수도 있었고, 바닷가에서 놀았던 시간은 가장 행복했어요. 차갑지도 않고, 깊지도 않은 바닷가. 거센 파도 없는 잔잔함. 계속 보게 되는 예쁜 빛깔의 바닷물. 엄마, 아빠가 불평 없이 들어와서 함께 즐길 수 있는 바닷가였어요. 아쉬운 마음을 대신해 컵에 바닷물과 돌을 담아 왔는데 돌멩이가 소라개로 변하던 순간도 잊을 수 없을 것 같아요.  


다음에 키웨스트에 또 놀러 온다면 이번에는 렌터카 대신 버기카를 빌려서 섬 곳곳을 다니고 싶었어요. 과연 이 바람이 이루어질 확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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