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윤호 Nov 07. 2024

다섯 번째 여행: 엄마가 여행지를 정하는 방법

23) 유타

2023.11.23-28, 6일간

엄마가 어느 날 사진 한 장을 들고 오시더니 아빠와 나에게 이곳에 가자고 했어요. 이게 바로 우리 엄마의 여행 방식이에요. 아빠와 내가 그곳이 어디인지 묻자, 엄마는 모른다고 해요. 이것도 늘 같은 대답이에요. 그럼에도 아빠는 언제나 이런 엄마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여주세요. 그리고 지도박사가 되어서 어디든 찾아가지요. 그리고 그곳을 찾기 시작하면서 생기는 정보들을 저에게 들려주면 저도 흥미가 생기기 시작해요. 이번에 엄마가 들고 온 사진은 바로 유타주, 솔트레이크 시티에 있는 소금사막이었어요.  솔트레이크 시티라는 이름은 바로 이 소금호수로 인해 붙여진 명칭이었어요.  저는 짠 음식을 좋아해요. 그래서 소금 세상이 펼쳐지는 곳에 간다고 하니 기대가 됐어요. 그곳에 도착하면 직접 손으로 소금을 한 꼬집해서 먹고, 초밥을 챙겨가서 찍어 먹고 싶기도 하고, 고기를 구워 올렸다 먹으면 맛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이디어가 끊임없이 떠올랐어요.  그리고 유타주 하면 우리에게 떠오르는 곳이 한 군데 더 있어요. 미국으로 이사 오면서 동네사람들과 처음으로 교류했던 독립기념일 퍼레이드를 위해 만들었던 아치스가 있는 곳. 그래서 우리는 이번에 그곳에도 가기로 했어요. 한 번쯤은 우리가 꼭 그곳에 가서 직접 보면 좋겠다는 것이 아빠의 생각이었지요.




23) 유타


산호세에서 유타의 솔트레이크 공항까지 사우스웨스트의 $49 할인 항공권을 이용해서 2시간 만에 날아갔어요. 저렴한 티켓가격에 아빠는 매우 즐거워하셨어요.  솔트레이크 시티에 도착하자 엄마는 동계올림픽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고, 아빠는 이곳이 몰몬교와 관련 있는 곳이라는 이야기를 들려주셨어요. 하지만 무엇보다 궁금했던 소금사막을 먼저 찾아갔어요. 목적지를 찍고 차로 달려가니 이게 맞나? 싶은 곳이 나왔어요.  통제구역이나, 특별한 입구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차를 타고 소금사막 위로 진입하면 되는 것이었어요. 저는 이럴 때 미국의 방식이 너무 좋아요. 하지 말라는 표지판이 없다면 해도 괜찮다는 뜻. 허락하는 곳이 있다면 마음껏 즐길 수 있게 허락해 주는 스타일.



우리는 차에서 내릴 필요도 없이 소금사막 위로 직진했어요. 소금 위에 차를 세우고 내려서 서 있는 느낌은 새로운 세상에 우리가 진입했다는 느낌을 줬어요. 아빠는 빗물에 살짝 녹아 반사되는 모습을 남기고 싶어 했고, 엄마는 차 위에 올라타고 싶어 했어요.

그리고 사막의 한가운데서 제가 가장 기다렸던 일! 바닥의 단단한 소금을 한 꼬집 해서 얼른 먹었지요. 정말 짠 소금이었어요.  그런 사막 위를 달리다 보니 다른 차들도 3-4대 보였고 사람이 다가오듯이 차 한 대가 우리에게 운전해서 다가왔어요.  어디로 나가는지 물어보기 위해서 있지요.  이 상황은 마치 우리가 화성이나 달에 와 있는 것처럼 느껴지게 했어요. 평평한 소금사막이 우주 같았지요. 차가 다니지만 도로의 중앙선도 신호등도 없는, 익숙한 것 같은 풍경이면서도 틀린 그림 찾기를 하듯이 다른 점들이 숨어있어서 새로운 세상으로 만들었지요.

원 없이, 한참을 짭짤한 소금을 즐기고 나와 조금 더 운전해서 가보니 도넛존이 나왔어요. 그 순간의 짜릿함을 잊을 수 없어요.  이번에도 특별한 진입로가 따로 없이 적당한 곳으로 운전해서 들어가 드리프트와 도넛을 제한 없이 할 수 있는 곳. 차를 견인해야 하는 상황에 대한 안내가 있었어요. 그래서인지 아빠는 차가 망가질 것 같다며 매우 소극적으로 도넛을 만들었어요. 나라면 부앙~ 하고 속도를 냈을 텐데, 그리고 엄마였다면 차가 뒤집어지는 것도 모르고 돌았을 텐데.. 약간의 아쉬움이 있었지만 언제나 우리 가족을 지키는 아빠가 없다면 어떤 사고가 났을지 모를 일이에요. 그리고 아빠의 소극적인 드리프트마저도 재미있었어요.

솔트레이크 시티의 모습도 굉장히 익숙한 풍경이었지만 소금사막에서 처럼 어딘가 모르게 달라도 살짝 다른 느낌이었어요. 차분하고 사람들이 모두 친절했지요. 그리고 대가족이 많이 보여서 부러웠어요.  몰몬교라는 종교는 다자녀 가족을 구성하는 교리가 있다고 해요. 시애틀에서 7살 때 만난 친구네 가족이 몰몬교인인데 그래서인지 연락할 때마다 동생이 한 명씩 늘어서 지금은 5남매가 되어있어요. 이해할 수 없는 교리도 많았지만 대가족이 되는 것은 좋은 것 같아요.  엄마와 아빠는 도시 전체가 종교의 힘 때문인지 굉장히 신성하고 성스러운 느낌이 든다고 하셨어요. 제가 봐도 그곳의 눈은 더 세상을 밝게 하는 것 같았지요. 하지만 우리 가족은 무교예요. 학교에서 친한 친구가 이 사실에 굉장히 슬퍼하고 저를 일 년 내내 선교하려고 애썼지만 저는 무교인 우리 가족이 좋았어요. 그리고 우리에게는 다른 종교인이 생각하는 종교와 무교는 같은 의미라고 엄마가 알려주셨지요.


솔트레이크 시티를 둘러보고 우리는 몇 개 주를 더 돌아본 뒤 다시 유타주로 돌아와서 아치스 국립공원으로 향했어요.


앞서 이야기했듯이 우리 동네는 매년 여름, 독립기념일 퍼레이드를 위해 이웃들이 모여 준비를 해요.  우리가 처음으로 참여했던 퍼레이드는 주제가 국립공원이었고, 마을사람들과 함께 거대한 아치스의 모형을 만들어 참가했어요. 퍼레이드를 준비하기 위해 여름방학이 시작되면 동네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이기 시작해요. 어린이, 어른 아무 제한 없이 누구나 모여서 참여하고 싶은 만큼 참여하면 되는 모임이에요.  모임의 리더 할아버지가 바로 땅따먹기를 같이 해 주시고, 관심 갖아 주셨던 버나드 할아버지예요. 마사 할머니와 함께 오랫동안 이 모임을 이끌고 있다고 해요. 이 모임을 통해서 미국의 방식을 많이 배웠어요.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참여하면서 저는 재밌는 시간을 보냈지요. 페인트 칠을 하고 드릴작업을 배우면서 과연 어떤 모습이 될까 기대하던 저녁시간들이 기억에 많이 남아요.  동네 아이들과 어울려 놀 수 있는 좋은 시간이기도 했지만 우리 동네에는 여자아이들만 있어서 아쉬웠어요. 그리고 그 뒤로 이 모임은 저에게 점점 재미없어졌어요. 바로 이 여자 아이들 때문이었지요. 제멋대로인 미국동네의 여자아이들은 아무리 잘 지내보려고 해도 늘 저를 화가 나게 해요. 아마 앞으로도 친구가 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그리고 더 이상 친구가 되고 싶지도 않아요.  그래도 이사 왔을 때 나를 환영하고 찾아 줬던 일을 고맙고, 퍼레이드 작업 시간은 정말 재밌던 추억으로 남아 있어요. 무엇보다 우리가 만든 결과물이 만족스러웠어요.


이 퍼레이드를 준비하면서 아치스 국립공원을 알게 됐는데 모임 때마다 마사할머니가 어떤 곳인지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어요.  여기는 캘리포니아인데 왜 유타주에 있는 국립공원을 선택했는지 이해가 안 됐었지만 다 완성된 모습을 보니 미국의 거대함을 느낄 수 있었지요.  

그리고 마침내 그 실물을 보기 위해 유타주에서 시작한 하이킹! 처음에는 조금만 걸어가면 나오겠지?라는 생각이었어요. 하지만 도무지 아치를 연상할 수 없는 오르막을 또 오르고 올라야 해서 힘들었어요. 아무리 걸어가도 아치스의 느낌조차 없던 곳. 낭떠러지 모퉁이를 돌아 마지막 목적지에 도착하기 직전 먼저 보고 나오던 아줌마가 거의 다 왔으니 꼭 끝까지 가보라고, 너무 멋진 모습이 펼쳐진다고 저를 응원해 주고 가셨지요. 그리고 마침내 도착한 순간 거대한 자연에 압도되었어요.  굉장히 무서웠다는 뜻이에요.  나를 달래 준다고 대범하게 행동한 아빠는 낭떠러지에서 미끄러져서 주변을 모두 놀라게 했고, 엄마는 못살겠다며 다시 앞장서서 저와 아빠를 이끌어주셨지요.  분명히 내가 만들었던 조형물과 똑같이 생긴 익숙한 모습이 앞에 있었는데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없었어요.  나를 막고 있는 벽이 느껴졌어요.  마치 미국에서 친구들을 사귈 때 가끔 느꼈던 기분이었어요.  친근하게 다가오지만 더 이상 오지 말라고 밀어내는 그 느낌.  그리고 또다시 느껴지는 고소공포증에 기념사진만 겨우 찍을 수 있었어요.  라스베이거스에서 이뤄냈던 고소공포증 극복기는 잊은 지 오래였어요.


서둘러 내려가자고 재촉해서 엄마를 다시 앞세워 하산하기 시작했어요. 엄마는 역시나 말도 안 되는 잔소리를 끊임없이 하셨지요. 예를 들면 발바닥을 끝까지 땅에 꾹꾹 찍으며 걸어야 하고, 대충 걷는 아빠와 저는 위험해 보인다는 이야기였어요. 아마 엄마도 아빠가 낭떠러지에서 미끄러질뻔한 모습에 크게 놀라신 것 같아요.  

나에게 아치스는 모형으로 보는 것이 훨씬 재밌는 추억이 됐어요.


국립공원에서 내려와 도착한 마을은 모아브라는 곳이었어요. 아치스를 방문한 대부분의 관광객이 머물다 가는 곳처럼 보였어요.  그래서 식당마다 손님들이 꽉 차있었고, 이번에도 뜨끈한 것을 찾던 아빠는 기다림 끝에 어렵게 쌀국수를 드셨어요. 맥도널드 햄버거면 충분한데…….. 그래서 식당을 3-4군데 들러 어렵게 도착한 쌀국수 식당이 싫었어요. 결국 저는 음식을 먹지 않고 엄마, 아빠가 다 드실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햄버거 집으로 가서 따끈한 피시 버거를 먹었어요. 따끈, 뜨끈 비슷한 말인데 메뉴는 항상 달라요. 모형과 실제 모습이 비슷한데 정말 다른 것처럼요.


미국의 독립기념일은 과연 나와 어떤 관계가 있을까?라는 질문을 아빠가 하셨었는데, 내가 아치스 조형물 아래에서 사탕주인이 되어 나눠 줄 수 있고, 동네 수영장에 가면 콜라를 혼자의 힘(잠수)으로 쟁취해서 마실 수 있는 날 정도가 답인 것 같아요.






이전 16화 21) 네바다 22) 애리조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