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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윤호 Nov 05. 2024

21) 네바다   22) 애리조나


21) 네바다


네바다 주는 우리 가족이 자주 여행 하는 곳이에요.  집에서 자동차여행으로 타호에 눈썰매를 타러 종종 가거든요.  이번에는 타호와 분위기가 다른 라스베이거스 여행을 하게 되었어요.


우리 A팀은 LA에서 아쉬운 이별을 뒤로하고 네바다주를 향해 출발했어요. 멀리서 세븐매직마운틴스라는 BTS와 함께 유명해진 곳을 지났어요. 하지만 저는 더 이상 BTS의 팬이 아니에요. 미국으로 떠나기 전 팝업 매장을 찾아다니며 굿즈상품들을 살 만큼 좋아하는 가수였지만 미국에 온 이후로 점점 다른 노래를 듣기 시작했어요.  미국 빌보드 차트에서도 인기가 좋다고 해서 BTS노래를 함께 듣자고 용기 내서 이야기하면 동네 친구들은 시큰둥하게 반응했고, 학교에서도 친구들은 다른 노래들을 더 재밌게 들었어요. 저도 어느새 다른 장르의 노래들을 접하면서 멀어지게 됐어요.  그래서 우리는 그냥 그곳을 지나치기로 했고 지루해질 즈음에 엄마가 90년대 댄스 가요를 볼륨을 높여 틀어주셨어요.  빌보드 광고가 펼쳐지고 있는 사막 고속도로의 라스베이거스와 가장 잘 어울리는 노래였어요.  


드디어 호텔에 도착해서 내리는 순간 말로만 듣던 이곳의 더위를 실감했고 마침내 체크인 한 방에 들어갔을 때는 창문 한가득 빛을 뿜고 있는 스피어를 발견했어요. 밤이 되니 더욱 다양한 모습으로 보이는 스피어는 호텔방 창문에서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재밌는 건축물이었어요.


B팀인 아빠와 C팀 이모부와 형은 비행시간이 비슷해서 공항에서 만나 함께 우버를 타고 호텔로 오기로 했어요. 하지만 우버기사가 길을 잘 못 찾아서 한참을 밖에서 기다리며 20여분 동안 깜짝 놀랄만한 더위를 경험했대요.  


기록적인 더위가 힘들게 했지만, 우리는 계획한 관광을 많이 했어요. 멋진 공연도 보고 세계의 모든 코카콜라(무려 24가지 다른 맛!!, 오이맛도 있었다)도 마셔보고, 대관람차 하이롤러의 막차시간을 놓치지 않으려고 뛰어가서 탔어요.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식사, 뷔페마니아인 우리 가족은 뷔페라면 시큰둥해지는 이모네 가족들과 함께 라스베이거스의 3대 뷔페 중 한 곳인 Wynn에 갔어요.  늘 소식하는 형의 모습이 안타깝긴 했지만 제가 대신 양껏 맛있게 먹었어요.

그리고 라스 베가스에서 저에게 터닝포인트가 되는 잊지 못할 경험이 있었어요.


집라인을 탄 일이에요. 타워의 꼭대기까지 올라가서 슈퍼맨처럼 엎드려, 쇼핑 몰을 날아가는 것이었어요.  


사실 집라인을 탈 생각은 없었는데 엄마가 타고 싶어 하셨어요. 옆에서 이것을 본 누나가 적극적으로 동참했고 어릴 적부터 누나와 함께 노는 것을 좋아했던 저는 따라나섰어요.  누나는 모든 것을 저보다 용감하게 잘 해내는 편인데 그 옆에 있으면 저도 용기가 나거든요.  


출발 전 매트리스에 누워 문이 열리길 기다리는 순간에는 후회를 조금 하긴 했지만 시작된 후에는 신나게 즐길 수 있었어요.  그리고 이제 저는 어디를 가도 높은 곳에 올라가서 하는 활동을 즐길 수 있게 됐어요.

아빠와 이모부는 갬블의 도시 라스베이거스에 온 기념으로 잭팟을 꿈꾸며 카지노로 향했어요. 다른 가족들은 행운을 빌며 쇼핑을 했고 저는 마음에 쏙 드는 불빛이 들어오는 모자를 발견했어요. 너무 사고 싶었는데 생각보다 비싼 가격에 엄마는 허락하지 않으셨지요.  

그런데 바로 그때, 아빠가 카지노에서 152달러를  땄다는 연락이 왔어요. 나는 바로 모자를 살 수 있었어요. 그리고 핼러윈데이에 해커분장으로 제격인 그 모자를 쓰고 학교에 갔지요.


그 후 또다시 다녀온 라스베이거스 여행에서 결국 아빠는 지난번에 딴 152달러를 포함해도 돈을 잃게 되었어요.  갬블은 좋은 취미가 아닌 것 같아요.


그리고 해커분장을 위한 모자는 등교할 때 늘 입는 재킷에 달린 후드면 충분해요.



22) 애리조나

이번 여행의 멤버 중에서 가장 바쁜 이모부는 그랜드 캐니언을 보기 위해서 한국에서 어렵게 시간을 내어오셨어요.  그랜드 캐니언은 이모부의 버킷 리스트였대요. 누군가의 버킷리스트를 함께 하는 것은 참 멋진 일이에요.  마침내 약속했던 가족들이 모여 애리조나주에 있는 그랜드 캐니언에 도착했고, 그 모습을 마주하는 순간 다 함께 감동했지요.


라스베이거스에서 출발해서 그랜드 캐니언까지 자동차로 이동하는 시간은 엄마의 걱정보다는 지루 하지 않았어요. 모두 각자 자신들의 방법으로 운전시간을 즐기다가 다 함께 내려서 햄버거를 먹고, 기지개를 켜고, 주유도 하면서 이동하니 어느새 도착해 있었지요. 식구가 많아지니 메뉴선정에 불만을 표하다가 엄마한테 혼이 좀 났지만 언제나 제 편이 되어주는 이모부가 있어서 괜찮았어요.

우리는 국립공원 내에 있는 롯지에서 지내기로 했어요. 엄마가 체크인을 하는 동안 화장실을 다녀왔는데 갑자기 건물뒤로 나타난 그랜드캐니언의 광경이 잊히지 않아요. 왜 ‘그랜드’라는 이름을 붙여줬는지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어요.

사실 저는 국립공원을 좋아하지 않아요. 인터넷도 잘 되지 않고…. 동물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거든요. 게다가 서울에서 지금 집으로 이사 온 느낌은 마치 내가 국립공원에 살고 있는 기분을 갖게 해 줬어요. 동네에서 가장 큰 나무가 우리 집 뒷마당에 있어서 모든 새들이 우리 집으로 모이거든요. 그 정도면 충분해요.


하지만 그랜드캐니언에서 해 질 녘부터 아침까지 산책을 하면서 만나는 동물들과 어느 곳을 걸어가도 웅장하게 펼쳐지는 협곡의 모습은 생각보다 감동이었어요. 칠흑 같은 밤, 담요를 뒤집어쓰고 누나와 걸어가면서 노래를 부르던 순간은 자연이 나를 자유롭게 만들었는지 흥에 취해 우리 모두 웃음을 멈출 수 없었지요.


어른들은 그랜드 캐니언의 모습에 훨씬 더 많이 감동하셨는지 자꾸만 차에서 내려 비슷한 곳에서 사진을 찍고 또 찍으며 즐거워하셨어요.  저 혼자였다면 매번 함께 내렸어야 했는데 형과 누나가 있으니 귀찮을 때 우리는 차 안에서 기다릴 수 있었어요.  그렇게 더디지만 다음 행선지인 앤텔롭 캐니언을 향했고 마침내 도착한 곳에서 오랜만에 한식을 먹기로 했어요.


하지만 여기서부터 예상치 못한 혼란이 시작되었지요.

앤텔롭캐니언은 애리조나주에 위치해 있는데 딱 그 주변만 나바호라는 원주민들의 자치관할 구역이었어요. 그래서 Daylight Saving time을 적용하지 않아 1시간의 시차가 있었는데 우리는 그것을 착각하고 식사시간을 계획했어요.  알아차린 순간 엄청난 속도로 밥을 먹어치우고 투어장소에 갔어요. 다행히 시간을 반대로 이해해서 잘 맞춰 투어를 했지만 왜 시간을 똑같이 쓰지 않는지 모르겠어요. 불편한데……. 게다가 그곳은 수도 시설도 좋지 않아 화장실이 너무 열악했어요. 손을 씻을 수도 없었거든요. 나바호 구역에만 기본적인 시설을 잘 지원해 주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왜 미국사람들은 원주민들에게만 친절하지 않은 걸까요? 투어 가이드를 해주신 원주민 아저씨는 마음씨도 착하시고, 멋진 사진도 많이 찍어 주셨는데…….


앤텔롭 캐니언은 여러 가지 이유로 그랜드 캐니언보다 더 진한 인상을 갖게 되었어요. 땅속에 펼쳐져 있는 또 다른 캐니언의 모습이 무엇보다 강렬했거든요. 더위 때문에 우리들이 짜증 낼 것이라고 염려했던 엄마의 걱정은 신비로움에 모두 날아가 버렸어요.


마지막 코스로 홀스슈밴드를 보러 갔는데 큰 차를 타고 가서 주차비를 비싸게 내야 했어요.  그리고 도착해서 경치를 감상하려는 순간 갑자기 비가 쏟아지고 번개가 치기 시작했어요.  함께 걸어가면서 구경하던 사람들이 일제히 주차장을 향해 도망쳐 나왔어요.  마치 전쟁영화 속의 피난길 같았어요.  그 길을 형이 먼저 앞서 갔는데 멀리서 이모, 누나와 함께 주저앉아 있는 모습이 보여서 엄마와 저는 놀라서 달려갔지요. 상황은 비 때문에 미끄러워진 슬리퍼가 발 깊숙이 들어가 슬리퍼를 빼주기 위해 이모가 애를 쓰고 있었고, 모두 제자리를 찾아 마침내 무사히 차로 돌아올 수 있었어요. 정말 엄마 말대로 환장할 일이 많은 애리조나 주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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