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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윤호 Oct 31. 2024

17) 미주리  18) 인디애나  19) 켄터키

17) 미주리


미주리주의 세인트 루이스에 도착했어요. 이곳에는 아주 큰 아치모양의 건물 ‘게이트웨이 아치’가  있다고 해서 구경을 가기로 했어요. 엄마는 이 건물에 올라갈지에 대해 나에게 결정권을 주셨지요.  그래서 저는 올라가지 않겠다고 결정을 내리고 출발했어요. 건물의 외관을 감상하는 것도 의미가 있으니까요……. 가는 길에 갑자기 비가 오기 시작했어요.  쏟아지는 폭우에 고속도로가 점점 물에 잠기기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물속으로 차가 들어가는 상황은 공포스러웠고 평소에 좋아하던 빗소리도 무섭게 들렸어요.


여행을 하기 전에 지역에 대해 조사하면 알게 되는 내용은 거의 비슷해요. 하지만 직접 여행을 하면서 간직하게 되는 이야기는 모두 다르지요. 그래서 나와 같은 경험을 한 사람을 만났을 때 반갑고 신기해요.

갑자기 쏟아지는 폭우로 인해 아치 조형물을 보는 방법도 변경하게 되었어요.  강 건너편 일리노이 주의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차 안에서 구경하게 됐고, 우리 같이 주차장에서 머물던 사람들이 딱 한 팀 더 있었어요. 아마 그 차에 있던 사람들과 저는 세인트 루이스의 ‘게이트웨이 아치’에 대해 비슷한 경험을 간직하게 되겠지요?  제대로 구경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기억에 남는 순간이 됐어요.


그리고 다음날 드디어 톰 소여의 작가 마크 트웨인의 집이 있는 한니발이라는 마을에 갔어요. 변하지 않은 채로 오래된 모습이 그대로 있어서 활기를 잃은 느낌이었어요. 하지만 오히려 시간이 멈춘 모습의 마을은 마치 제가 이야기 속의 시간에 놀러 온 것처럼 느끼게 해 줬어요.  모든 것이 낡아서 이야기 속의 오래전 사건을 마주하는 것 같았지요.

톰 소여와 허클베리 핀이 뛰어놀던 미시시피강이 그 시절처럼 똑같이 흐르고 있었고, 그 강을 따라 걷다 보니 나도 마음껏 모험을 즐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 옆에서 함께 걷던 아빠도 같은 마음이었는지 평소보다 강가를 오래 거닐며 산책했어요.  

제 또래의 아이들이 구경을 많이 왔어요. 저처럼 책을 재미있게 읽은 친구들일 것 같아서 반갑기도 하고, 지루해하는 얼굴을 마주칠 때는 부모님께 끌려 왔구나 싶어 그 모습을 이해했지요.

우리는 벽에 페인트 칠 하는 흉내도 내보고, 등장인물인 베키, 허클베리, 짐, 톰의 그림과 키도 재 봤어요. 학교 시간표가 3학년 우리 반 시간표와 거의 일치하는 것도 확인하고, 밤에 잠 안 자고 놀아보려는 톰의 모습에 엄마, 아빠는 재밌어하셨어요. 시대불문, 만국공통 아이들이 생각하는 것이 비슷하다는 것에 저도 반가웠어요.

엄마가 짐에 대해 물어보는데 저는 학교를 다닐 수 없던 짐이 부럽다고 이야기했어요.  물론 차별을 받고 힘든 일을 해야 했겠지만 학교보다는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이었어요.  등장인물들의 모습을 보다 보니 우리 교실 안에 있는 친구들이 떠올랐어요.  기가 막히게 이미지가 맞는 친구들을 찾아낼 수 있었지요.  

기념품가게에서 허클베리 핀 책을 한 권 샀어요.


한글로 된 책만 읽어서 영문판을 읽어 보라는 엄마의 권유였지만 이번에는 흔쾌히 책을 손에 들었어요.  책 속에 끊임없이 나오는 ‘니가’라는 표현이 계속 신경 쓰였지만 한편으로는 어색함 없이 재밌게 느껴지기도 했어요.  엄마도 요즘 가끔씩 저에게 놀랄만한 표현을 쓸 때가 있어요. (저는 나쁜 말이라고 생각했지만 엄마는 그렇지 않다면서 국어사전에 등재되어 있는 표현이라고 찾아 주셨어요) 그리고 사실 저도 학교에서 종종 욕을 하긴 해요.  잘못이라는 것을 알고 있고,  실제로 교장실에 가서 Oops slip을 받기도 했지만 욕을 하는 것이 크게 이상하지 않을 때가 있거든요.


아마 그런 느낌의 표현들인 걸까요?

과거에 살고 있는 또래친구들을 만나고 온 것 같아서 기대했던 것만큼 즐거운 톰 소여의 여행이었어요.



18) 인디애나

차를 타고 달리고 달리다가 배고픔이 느껴졌고, 마침 인디애나 주 가까이 이르렀기에, 이번 활동은 에번즈빌에서 밥을 먹는 것으로 정했어요. 인디애나주는 우리 뒷집에 사는 브라이언 아저씨의 고향이에요. 처음 이사 왔을 때 이 동네에는 아무도 살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할 때쯤, 뒷마당에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울타리로 달려가 인사를 하고 알게 된 아저씨예요. 아저씨네 집에는 캠핑카도 있었어요. 세명의 아이들과 함께 그 캠핑카를 타고 인디애나주까지 로드 트립했던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우리가 지금 그곳에서 밥을 먹으려고 한다는 것이 신기했어요. 브라이언 아저씨는 어떻게 이렇게 멀리서 이사 왔을까요? 캠핑카를 타고 이사 왔다면 한국에서 이사 온 나보다 더 오랜 시간 걸려서 이사를 했다는 것인데 이 사실이 믿기지 않았어요.  미국 사람들이 이사하는 것은 내가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사 온 것 같이 매우 큰 일일까요?  


반가운 마음에 아빠가 브라이언 아저씨한테 사진을 찍어 보내주려고 했는데 그때부터 인디애나주 사인이 보이지 않았어요.


길에서 마주치는 고등학생 형들이 마치 아저씨의 젊은 시절처럼 보였어요.   모두 착하고 성실할 것이라는 착각을 하게 했지요. 지난여름에는 아저씨네 가족이 모두 이곳 인디애나주에서 여름 방학을 보내고 왔어요. 여름캠프 비용이 10배는 차이가 난다고 이곳이 훨씬 좋다고 하셨지요. 뒷집 아이들이 수영캠프를 한 곳이 여기 어디쯤 일까?라는 상상을 하니 재밌었어요. 다음에는 저도 다른 지역의 캠프를 보내달라고 해야겠어요.


우리가 처음 이사 왔을 때 라이트 에이드약국의 맛있고 양이 많은 아이스크림을 알려줘서 그때 기억을 떠올려 아이스크림 디저트를 먹기로 했어요.

그래서 나에게 인디애나주는 아이스크림이 맛있는 브라이언 아저씨 고향이 됐어요.




19) 켄터키

“켄터키 후랑크 쫀쫀해요 빠밤!”

이라는 노래를 들어 본 적이 있나요? 엄마는 켄터키로 향하기 전부터 이 노래를 불렀고 아빠는 너무 즐거워하며 함께 따라 불렀어요.  어리둥절하는 나에게 오더니 노래를 부르면서 내 볼을 손으로 칼질하다가 빠밤 부분에서는 이마를 톡! 치며 끝냈어요.  무방비 상태로 당했지만, 어쩐지 마음에 드는 멜로디로 켄터키에 있는 내내 나도 흥얼거렸어요. 켄터키주에서는 무얼 할까 고민하다가 엄마가 후랑크 소시지를 먹자면서 부른 노래였어요.  하지만 아빠는 켄터키 후라이드 치킨을 먹어야 한다고 했고, 나는 KFC는 코리안 후라이드 치킨의 약자라고 우겨봤어요.


켄터키주는 사실 땅따먹기 놀이 규칙에 맞게 인증하지 못한 주에요. 켄터키 주의 어디엔가 내려서 저녁을 먹으려고 했지만 우리 가족은 하염없이 달리는 일에 중독되어 있던 것 같아요.  저는 코카콜라 담요를 덮고 BTS의 노래를 오랜만 들었고, 아빠는 운전을 멈추고 싶지 않아 했지요.  엄마만 유일하게 끝까지 KFC에 가야 한다고 했지만 그러면 우리는 꽤 먼 길을 돌아가야 했어요.  하지만 엄마가 참았던 걸까요? 끝까지 의견을 주장하지 않으셨어요.  오하이오 강을 지난다는 이야기만 하며 쉬지 않고 운전하던 아빠에게 오하이오 주도 아닌데 그만 이야기 하라며 핀잔을 주고, 그런 아빠는 괜히 저에게 담요로 풍경을 가리지 말고 오하이오 강을 보라고 지적하면서 우리 모두 계속 직진하는데 동의했어요.


결국 KFC를 못 먹고 지나치긴 했지만 켄터키의 음식들은 분명히 맛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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