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테네시
: 멤피스
테네시주에 있는 멤피스에 도착했을 때 길 위의 광고판을 보며 아빠는 위스키가 유명한 곳이라고 들뜨기 시작하셨어요. 제가 느끼기에 멤피스는 위스키와 컨츄리 뮤직이 유명 한 곳이라는 말에 딱 어울리는 마치 아빠들 같은 느낌이랄까? Daddy Ciity?
이곳에 엘비스프레슬리 박물관과 동상이 있다고 해서 찾아가 보기로 했어요.
학교에서 3학년이 되면 가장 큰 프로젝트로 Famous Americans이라는 미국의 유명한 사람을 조사하고 발표하는 시간이 있어요. 친한 친구가 엘비스 분장을 하고 발표를 했었어요. 그리고 탤런트 쇼에서 멋지게 공연까지 했지요. 그렇게 알게 된 사람에 관한 곳이 있다고 하니 신기했어요.
엄마가 엘비스 프레슬리의 유명한 노래를 틀어주셨지만 제 취향은 아니었어요. 게다가 박물관은 입장료가 너무 비쌌어요. 우리는 엘비스를 특별히 좋아하지 않으니 박물관 방문은 취소하고 동상만 구경했어요. 그리고 맛있는 밥을 먹기로 했지요.
바비큐 요리가 유명하다고 해서 찾아 간 식당은 ‘콜키’라는 식당이었어요.
구운 고기, 튀긴 요리를 푸짐하게 먹을 수 있어서 좋았어요. 적당하게 캐주얼한 식당분위기에 기분 좋게 ‘스몰토크’를 하는 서버 아줌마까지, 오랜만에 한국에서 우리가 자주 가던 고깃집에서 밥을 먹는 기분이 들었어요. 아빠는 우리가 사는 산호세와 음식가격을 비교하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저렴하게 외식할 수 있는 이곳의 물가에 기뻐하며 과식을 했지요. 음식도 맛있고 식당을 둘러보니 내 또래의 남자아이들이 많아서 신기했어요. 이런 곳에서 살았다면 어땠을까요? 학교에서 친구를 더 많이 사귈 수 있었을까요? 내가 있는 반은 항상 여자가 많은데…… 지구상의 인구는 왜 늘 남자가 많다고 하는 걸까요? 모두 멤피스에 있나 봐요.
: 네슈빌
테네시 주는 두 번에 나눠 여행했어요. 첫 번째가 버밍햄에서 이동해 멤피스를 들렀고 이번 여행의 종착지로 네슈빌에 머물렀어요.
컨트리 뮤직으로 유명한 곳이라고 하더니 우리가 지나는 골목의 가게에서는 모두 밴드공연을 하고 있었어요. 마치 축제기간 같은 분위기였어요. 엄마, 아빠는 노래 듣기를 좋아하는 내가 분명히 좋아하게 될 곳이라고 확신했지만 기대와는 달리 저는 너무 힘들었어요. 스피커를 통해 크게 울리는 노래는 제 취향이 아니었어요. 이어폰이 좋아요. 사는 곳도 서울 같은 도시가 좋고요. 이곳의 음악이 컨트리 뮤직이라고 하니 더욱 내 취향이 아닌 것이 확실했지요.
하지만 엄마, 아빠는 아는 노래들이 많이 나온다며 위스키 한잔과 함께 밴드공연을 즐기고 싶어 하셨어요. 적당히 즐기기에 괜찮은 곳을 찾아다니는데 다행히 비가 쏟아져 급하게 치킨집으로 피했고, 유명하다는 네슈빌 스파이시 치킨을 먹게 됐어요. 컨트리 뮤직과 위스키보다는 훨씬 좋았어요. 비는 왔지만 저에겐 운수 좋은 날이었어요.
16) 아칸소
2년 전 내가 미국으로 이사오던 길은 12시간이 넘게 걸렸어요. 마지막 날까지 등교하고 싶었지만 못했어요. 아침부터 일어나 짐을 정리하고, 머리를 자르고 마지막으로 우리 가족이 정말 사랑하는 분식집에 가서 점심을 먹었지요. 그리고 공항 가는 택시를 부르는데 어느새 친구가 하교를 해서 나에게 인사하러 왔어요.
늘 친구와 함께 놀았던 우리 집에는 여행가방만 서너 개가 덩그러니 서있었어요. 우리는 특별한 대화 없이 그 바퀴가 달리 가방만 굴리다가 저는 택시에 탔고 창문 너머로 친구가 인사해 줬어요.
공항에서는 저를 배웅 나온 친구들을 만났어요. 팬데믹으로 텅 빈 공항에서 인사를 했어요. 큰 공항에 우리밖에 없는 것 같았어요. 간식을 사려고 편의점을 오르락내리락하는데 공항에서 이런 기분은 처음 느껴봤어요.
늘 들뜨게 하고, 수다스럽고, 힘이 넘치게 하는 곳이 공항이었는데……. 어느새 탑승시간이 되어 다 함께 사진을 찍고 어색한 포옹으로 인사 후, 헤어져 검색대로 들어갔어요. 아쉬운 순간이었지만 늘 이곳을 지날 때처럼, 비행기를 타고 도착하면 새롭지만 재밌을 거라고 계속 생각했어요.
비행기 안에서는 사라지지 않는 아쉬움을 달래 보려고 기내식을 평소보다 더 맛있게 먹었어요. 어딘지 모르는 텅 빈 마음을 채우기 위해 엄마에게 동시에 영화를 보자고 했어요. 한참 영화를 고르다가 할머니와 함께 봤던 ‘미나리’를 한번 더 보기로 결정했어요.
그리고 어느새 저는 바로 그때 봤던 그 영화의 배경인 아칸소주 위를 달리고 있었어요. 차를 타고 달리는 끝없는 논과 밭. 엄마는 영화를 떠올리며 아칸소의 풍경에 감동했어요. 이사오던 날, 비행기 안의 기분이 생생하고 강렬하게 떠올랐어요. 엄마도 그랬던 것 같아요.
나는 그 넓은 농장에서 이어폰을 귀에 꽂고 일하는 농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병아리 감별사는 털 알레르기 때문에 어려울 것 같고, 이 멋진 논을 내가 혼자 일궈 내는 농부가 되는 것. 환상적인 일이 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