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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윤호 Nov 02. 2024

네 번째 여행: 내가 살고 있는 곳

20) 캘리포니아


여름방학을 맞이해서 한국에서 사촌누나네가 놀러 오기로 했어요. 한국에서 오는 식구들과 함께 LA에서 잠시동안 살고 있는 사촌동생도 만나러 가기로 했지요. 그 뒤에는 한국가족들과 함께 라스베이거스와 캐년 관광을 하는 것이 목표였어요. 이 여행의 스케줄을 맞추는데 거의 8개월이 걸렸어요. 엄마는 생각나는 대로 이모와 연락을 계속 주고받으셨고, 엑셀표까지 작성해서 아빠와 저에게 브리핑하기도 했지요.  그래서 출발할 때 과연 우리가 이 여행을 계획대로 마무리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과 함께 더욱 설레었어요.


이번 여행은 다른 여행과는 달리 엄마가 열심히 준비하셨어요. 보통은 엄마가 아빠의 계획을 결재하는 구조인데, 이번에는 반대로 엄마가 아빠에게 결재를 받는 방법으로 여행을 계획했어요.  또 하나 새로운 것은 여행을 통해서 우리 가족 여행사가 탄생했는데 ‘환미 여행사’에요. ‘환장하는 미국여행’이라고 엄마가 즉흥으로 만들어낸 여행사인데 요즘 엄마가 사용하는 단어가 점점 의심스러워져요.


다 함께 타고 다니던 15인승 밴의 맨 뒷줄에 앉은 엄마가 아빠에게 전화를 걸면 자동차의 스피커에 연결되어 공지 방송처럼 들리게 돼요.  공지사항은 여행이 지루해질 때마다 나왔고 내용은 사소한 것들이었어요. “운전하는 기사님(아빠)께 박수”,“차를 오래 타느라 지쳤을 연장자에게 박수”,“경치 감상한 10대들에게 박수” 이런 유치한 내용이었지만 엄마의 안내방송에 따르니 재밌기도 했어요.  


엄마가 열심히 여행을 준비했다고는 하지만 사실상 아빠하고 한국에서 여행 오신 이모가 함께 스케줄을 대부분 만들고 진행했어요. 그래서 여행사의 이름도 이모와 아빠의 이름을 하나씩 따서 만든 것에서부터 시작했지요. 다양한 연령대의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이번 여행팀은 참여하는 모든 가족을 4개의 팀으로 나누어서 스케줄을 잡았어요.


A팀: 산호세에 살고 있는 우리 가족 중 엄마와 나, 한국에서 여행 오는 첫째 이모네 가족 중 이모와 사촌누나

B팀: 산호세에 살고 있는 우리 아빠

C팀: 한국에서 오는 첫째 이모네 가족 중 이모부와 사촌형

D팀: LA에 최근에 이사 온 둘째 이모네 가족


A팀은 내가 포함되어 있는 그룹으로 이 여행의 선발대, 메인그룹이라고 할 수 있어요. 리더는 이모이고, 수행역할은 엄마예요. 대원은 누나와 나. 한국에서도 어릴 때부터 자주 함께 활동했던 구성원이라 팀워크가 좋아요.  A팀은 우리 집에서 출발해서 LA를 들러서 라스베이거스까지 자동차를 타고 로드트립을 하기로 했어요.


B팀은 이번 여행에서 가장 많은 정보와 실행력을 갖고 있는 멤버로 우리 아빠예요. 회사일이 바빠서 일을 하시다가 비행기를 타고 라스베이거스로 퇴근하기로 했어요.


C팀은 일이 바쁘신 이모부가 아빠처럼 일을 하다가 서울에서 라스베이거스로 퇴근하기로 했어요.  그리고 동네 사교목적 축구팀의 에이스 골키퍼인 사촌형은 게임을 마무리하고 이모부와 함께 라스베이거스로 오기로 했지요.


D팀은 미국에 이사 온 지 얼마 안 된 둘째 이모네 가족으로 이동 없이 LA집에서 A팀을 맞이해 주고 주변을 함께 관광하기로 했어요.


최종적으로 A, B, C 팀이 라스베이거스에서 모두 만나면 우리는 15인승 미니밴으로 차를 바꿔 그랜드 캐년 투어를 하기로 했어요.  그리고 8월의 라스베이거스 온도가 117F를 찍던 날, 우리는 이 계획을 성공했어요.


각자 긴 여정을 통해 라스베이거스 호텔 로비에서 만났어요. 모두 다른 이야기를 갖고 마침내 한자리에 모여 같은 목적지를 향해 가기 시작하니 모두 평소보다 들뜬 기분이었지요. 신나게 달리고, 걷고, 먹는 여행이었어요. 무엇보다 미국땅에서 우리 가족이 커지니까 든든함이 느껴지면서 기분이 최고였어요. 그리고 지금 생각해 보니 엄마가 만들어낸 여행사 이름이 어울렸던 여행이에요.




20) 캘리포니아


내가 살고 있는 곳 캘리포니아는 미국에서 세 번째로 큰 주에요.

실리콘밸리라고 불리는 우리 동네는 유명한 회사들이 많이 있어요. 하지만 이런 회사를 관광하는 것은 크게 재밌는 일은 아니에요.  그래도 유명한 빅테크 회사들을 구경하기 위해 갔어요. 누나는 방문객에게 통제된 구역을 드나드는 직원들을 한참을 바라보면서 이모부랑(우리 아빠) 다 똑같이 하고 다닌다며 신기해했어요. 듣고 보니 제가 봐도 그랬어요. 백팩을 메고 바지와 티셔츠를 입은 모습이 매일아침 아빠가 출근할 때 모습과 정말 비슷했어요. 헤어스타일과 안경을 쓴 모습. 그리고 걸음걸이도 비슷하게 느껴졌어요.  말로만 듣던 실리콘밸리의 너드들의 모습이냐고 누나가 물었는데 아빠를 보면 Nerd는 아닌 것 같고, 하지만 그렇다고 누나에게 아니라고 대답하기도 애매한 상황이었지요.  이모와 엄마는 옆에서 듣고 있다가 한바탕 크게 웃었어요. 누나말이 딱 맞다고요.   우리 아빠 같은 사람들이 모여 세상을 바꿨다고 하니 괜히 제가 으쓱해졌어요. 아빠가 더욱 자랑스러워졌어요. 그리고 내가 그런 지역에 살고 있다는 것이 실감이 났어요.

내가 사는 곳에서 5시간 차로 이동하면 LA 이모네 집이 나와요. 그곳에 도착해 보니 또 다른 캘리포니아가 있었어요. 밤이 되면 불빛이 화려해지는 쇼핑몰이 있고 길 위의 사람들은 음악 없이도 리듬감 있고 흥이 넘치는 발걸음이었어요.  말로만 듣던 할리우드 사인이 크게 보이고 유명한 영화들이 모두 이곳에서 제작되고 있다고 했지요.  이렇게 오랫동안 이동해도 여전히 캘리포니아라는 것도 신기했지만 분위기가 확 달라지는 것도 얼마나 캘리포니아가 큰 곳인지 실감 나게 했어요.  


A팀과 D팀이 드디어 만나서 우리 가족은 좀 커지고 시끄러워졌어요.  수영장에 가서 놀아도 시끌시끌, 새로운 친구를 만들지 않아도 나의 ‘갱’이 있었지요.  


사촌동생이 그리피스 천문대에 모두같이 가고 싶다고 해서 저녁을 준비해서 천문대에 올라갔어요. 한참을 구경하고 놀다가 노을이 지는 풍경을 보고 잔디에 누워 별도 봤어요.  미국에서 제 고향은 캘리포니아라서 그럴까요? 외할머니댁 옥상에서 놀 때 같은 기분을  즐길 수 있었지요. 이렇게 친척들을 만나서 북적거리는 가족이 되면 행복해요.


캘리포니아는 매우 넓고 내가 가 본 곳도 많아서 할 말이 많지만 그냥 친척들과 뒹굴며 놀았던, 잔디가 포근한, 우리 집 같은 곳이라고 이야기할래요. 할머니가 항상 해주시는 간장게장도 사 먹을 수 있고 친척들이 모두 모일 수 있었던 한국의 “시골”같은 곳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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