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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윤호 Nov 12. 2024

여섯 번째 여행: 최고 인기지역, 오! 하이! 오!

26) 델라웨어

2023.12.9~16, 8일간


3학년이 되면서 학교를 옮기게 됐어요.  제가 미국으로 이사 왔을 때는 집 앞의 학교가 더 이상 전학생을 받지 않아서 좀 멀리 있는 학교를 다녀야 했거든요.  첫 학교에서 친구도 사귀고, 이제는 전교생 얼굴이 익숙해졌는데….. 처음에는 “Blue hoodie”로 불리다가 학기를 마친 지금은 내 이름으로 불리는 위치까지 왔는데……. 또다시 새로운 곳에서 시작을 해야 한다니……. 기분을 무겁게 만들었지만 엄마는 선택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하셨어요. 평소와는 달리 단호한 엄마의 대답이었기 때문에 받아들이기로 했어요.


한국에서도 미국에서도 좋은 친구만 만나면 전학을 가는 것 같아 속상했지만, 한편으로는 나에게 나쁜 짓을 했던 아이들을 생각하며 아쉬워하지 않기로 결심했어요. 처음에는 나를 괴롭히면 당황스러워만 하다가 제대로 대처하지도 못했고, 종종 있는 인종비하발언도 참기만 했었거든요.  몇 년 뒤, 그중 한 명과 여름방학 캠프에서 만나게 됐어요.  여전히 내 어깨에도 못 미치는 작고 귀여운 꼬맹이의 얼굴이 어쩐지 익숙해서 계속 쳐다보다가 서로를 알아차렸지요. 그리고 그 아이가 먼저 “I don’t weird thing anymore”라고 이야기해서 함께 즐거운 여름 방학을 보냈어요. 하지만 다른 멤버들은 여전히  다른 아이들을 괴롭히면서 점심시간을 보낸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등교첫날,  눈 딱 감고, 새로운 곳에서 또 좋은 친구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만 하려고 했어요. 하지만 실상은, 될 대로 돼라. 그냥 가는 거야, 뭐. 이런 심정으로 내 운명을 받아들였어요.


Blue Hoodie 대신 세상에서 가장 쿨하다는 컬러의  검은색 옷을 신중하게 골라 입고 터벅터벅 걸어갔어요.


길에서 브라이언 아저씨네 가족도 만나고, 처음 보는 동네 아저씨는 제가 전학 왔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인사도 해주셨어요.  학교 앞에는 새 학년 환영 사인이 요란하게 있어서 엄마는 어떻게 해서든 제 사진을 남기려고 하셨지요.


처음 다닌학교의 첫 등교날 보다 훨씬 긴장해서 아무것도 신경 쓸 수 없었지만 생각보다 느낌이 괜찮았어요.  다행히 이전에 다닌 학교에서 같이 전학을 온 친구가 있어서 첫날이 외롭지는 않았거든요.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몇몇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 함께 놀기 시작했어요.


새 학교에서 만난 새 친구들은 유쾌한 말장난과 수다를 좋아했어요. 그래서 죽이 잘 맞았어요.  우리는 뛰어노는 것보다 적당한 그늘에 자리 잡고 “Stuff” 이야기하는 그룹이 됐어요.  (캘리포니아의 학교에서 그늘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것은 학교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는 뜻이에요).  그리고 그 해 우리들의 가장 큰 유행어는 ‘오하이오’였어요.  오하이오를 보여주는 밈에서 바보 같으면서 엉뚱하고 파괴적인 영상과, 배경음악으로는 욕이 끊임없이 나오는 나오는 “Down in Ohio”가 우리들을 더욱 열광하게  했어요.  점심시간마다 누군가 교장실 앞에 신청곡으로 대문짝 만하게 써넣었지만 한 번도 그 노래를 틀어 준 적은 없어요.

이번 여행은 바로 이 화재의 장소, 우리들이 가장 가고 싶어 하는 곳, 오하이오 주를 중심으로 시작됐어요. 엄마 아빠도 우리들의 유행어 덕분에 오하이오 주에 대한 기대가 높아졌어요. 종종 아빠는 제가 하는 유행어를 따라 할 때가 있었는데 너무 창피해요.  부디 아빠가 회사에서는 안 했으면 하는 바람인데…. 그러셨겠지요.?


이 여행에서 우리는 사상 최대로 많이 비행기를 탈 것이라고 했어요. 아빠는 총 8번의 비행을 하면서 이동하는 계획을 세우셨어요. 아마 마음에 드는 저렴한 항공권이 잘 구해진 것 같아요.  처음 내린 공항은 버지니아 주에 있는 로날드 레이건 워싱턴 공항이었어요.  작지만 처음 알게 된 공항을 이용하는 것이 아빠를 즐겁게 했어요. 아빠는 공항을 정말 좋아하거든요.  공항의 업무를 잘 알고, 비행기에 관련해서도 많은 것을 알고 있어요.  어릴 적부터 하늘에 날아다니는 비행기를 보면서 저 비행기를 타면 어디에 갈 수 있는지 물어보면 아빠는 그 비행기의 기종, 항공사명, 목적지를 정확하게 알려주셨어요.  그래서 종종 아빠가 비행기나 공항에 몰두하고 있을 때면 엄마는 아빠께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파일럿이 되어보라고 이야기해요.  그런데 아빠는 지금이 행복해서 그럴 필요는 없다고 해요.


덕분에 저는 비행기에 대해서 많이 듣고 활주로가 어떻게 이용되는지 배울 수 있었어요. 그리고 우리 가족은 공항에서 아빠 서비스를 통해서 항상 편하게 여행을 해요.  한 번은 엄마와 단둘이 여행을 하는데 아빠가 마치 우리와 함께 있는 것처럼 공항의 안내방송보다 더 빨리 변경된 탑승구, 이동동선 등을 메시지로 실시간 안내를 해주셨어요. 아빠가 가끔 이렇게 여행을 안내해 주는 본인에게 감사해야 한다고 농담처럼 요구하시는데,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있어요. 다만 길고 진지하게 전달하기에는 쑥스러워서  미국식으로 간단하게 표현하면 너무 짧게 끝나요.


“Thanks”







26) 델라웨어


델라웨어 주는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주에요.  First State라는 말이 자동차 번호판에 새겨져 있는데 그 어느 때보다 힘 있게 느껴졌어요.  

오래된 곳, 역사가 깊은 곳이기 때문인지 가는 길에 앤티크 가게가 많이 보였어요. 엄마는 차를 타고 가다가 갑자기 멈춰서 쇼핑하는 것을 좋아해요. 하지만 아빠는 순발력이 부족해서 엄마가 원하는 가게는 대부분 지나치지요. 저는 내리는 것이 귀찮아 드라이브 드루쇼핑이 아니면 반갑지 않고요….


이번에도 작은 시골길에 심심할 때마다 나오는 앤티크 가게를 보면서 엄마는 계속 멈추고 싶어 하셨어요.  하지만 나는 빨리 목적지에 도착하고 싶은 마음에 앤티크는 정말 비싸니까 쇼핑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엄마를 말렸어요.  엄마는 과소비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분이라 이런 저의 한마디에 쉽게 쇼핑을 단념하시는 편이에요.(엄마의 쇼핑을 따라다니기 귀찮을 때 제가 종종 쓰는 방법입니다) 아빠는 엄마가 작은 소품들을 사들이는 일에 대해 큰 반대를 하지는 않지만 이번에는 저와 마음이 통했는지 모든 상점을 지나쳐 갔어요. 시골길이라 유턴도 충분히 가능한 길이었는데도 직진만 하셨지요.


그렇게 쉬지 않고 달려서 도착한 베사니 비치는 동화책 속에서 봤던 바닷가였어요. 파도가 차르르, 열밤도 넘게 이 해변에서 지낼 수 있을 것 같았어요. 호텔 방에서 바로 이어지는 해변은 모래놀이를 좋아하는 저에게 환상의 장소였어요.  오랜만에 다른 인테리어의 호텔방에서 묵게 된 엄마와 저는 춤을 추면서 함께 감탄사 “오하이오”를  외쳤고, 창밖으로 보이는 바다 사진을 찍느라 바빴어요.


그리고 그날 밤, 아빠는 델라웨어주에는 세금이 없다고 쇼핑과, 외식에 열정을 쏟았어요.  모든 것이 완벽한 목적지였어요.

다음날 아빠는 엄마가 가고 싶은 곳을 들르기로 약속하고 출발했지만 엄마가 그토록 가고 싶어 했던 앤티크 가게는 이번에도 모두 지나치고 아이스크림 가게 앞에는 순발력 있게 멈췄어요.  엄마가 아빠에게 운동신경이 둔해 차를 멈추지 못했다고 핀잔을 주었던 것이 무색해질 만큼 아빠는 잽싸게 아이스크림 농장 앞에 주차를 하셨어요.  쌀쌀한 날씨 탓에 아이스크림 가게가 한산해 보였지만 우리가 사진을 찍는 사이 여러 대의 차가 드나들었어요. 대부분의 차에서 내린 손님들은 할머니, 할아버지였어요.  우리 할아버지도 아이스크림을 좋아하시는데……. 아마 제일 큰 어른이 되면 허락받을 필요 없이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 있어서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아이스크림을 좋아하시는 걸까요?   싱글콘의 사이즈가 어마어마하게 컸지만 모두 하나씩 들고 나오셔서 차 안에서 드셨어요. 저도 당연히 한 개의 아이스크림을 혼자 먹고 싶었지만 엄마는 우리 셋이 두 개면 충분하다고 하셨어요. 하지만 이럴 때도 저만의 방법이 있어요. 저는 아이스크림 대신 셰이크 메뉴를 시켰고 엄마와 아빠는 아이스크림 메뉴가 통일이 잘 안 되기 때문에 결국 3 스쿱의 중간사이즈 아이스크림을 시켰어요.  결론적으로 싱글 1개씩 주문한 양 보다 많은 양의 아이스크림을 3명이 먹은 셈이지요.  제가 생각해도 저는 참 똑똑해요.


나중에 할아버지가 되면 엄마의 잔소리에서 해방되어 더블스쿱 콘 하나를 혼자 마음껏 먹을 거예요.  생각해 보니 할아버지는 할머니께 매번 잔소리를 듣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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