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오하이오
정말로 자동차들이 거꾸로 갈까?
그동안 아무리 친하고, 수다를 많이 떨어도 나의 여행에는 관심 없던 친구들이 이번 여행에는 모두 큰 관심을 보이며 꼭 사진을 찍어 오라고 부탁을 했어요.
그 말도 안 되는 세상, 오하이오주를 향해 떠나는 것은 마치 닐 암스트롱이 달에 착륙하러 떠난 것에 못지않게 비장했지요. 친구들을 대표해 새로운 세상에 대표로 도전하는 임무에요.
오하이오주의 콜럼버스 공항에 도착해서 밖으로 나오는 순간, 표현하기에는 조금 부끄러운 긴장감이 밀려왔어요. 그동안 영상 속에서 본모습이 모두 가짜일 것이라는 생각이 컸지만 혹시나 진짜일 수도 있으니까요.
다행히 거꾸로 가는 차는 없었어요. 안도하는 제 모습을 보고 엄마는 웃으면서 이곳은 저를 위한 곳이니 마음껏 즐기라고 했어요. 그리고 마침내 오하이오주에 왔으니 무조건 들어야 한다며 Down in Ohio 노래를 틀어 주셨어요. 창밖으로 보이는 오하이오주의 풍경은 아주 평범했고 엄마는 시간이 흐를수록 생각보다 느낌있고 세련된 곳이라고 놀라워하셨어요.
저는 달리는 차 안에서 노래를 들으며 창밖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해요. 유튜브 동영상을 보는 기분과 비슷해요. 내심 기대했던 밈이 눈앞에 펼쳐지지 않아 아쉬운 창밖의 영상이었지만 다른 여행지보다 집중해서 스쳐 지나가는 모습을 봤어요.
콜럼버스는 확실히 개성이 있는 도시였어요. 파괴적이지 않았을 뿐이지요.
미술관 관람을 하기로 했는데 엄마 평에 의하면 “너무 진지 하지 않고 젊은이들의 감성과 도전정신이 살아있다”는 곳이었어요.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는 않아요. 예전에 피츠 버그에서 앤디워홀 미술관을 재미있게 관람한 뒤로 여행할 때마다 미술관 관람을 즐기게 되었는데 가끔씩은 지루하기도 하지만 콜럼버스의 미술관은 내가 즐기기에 딱 좋은 미술관이었어요.
벽난로가 있고 멋진 테이블과 편안한 소파가 있는 개성 넘치는 카페에서 빵도 먹었어요. 자리 잡고 앉아 엄마는 주위를 둘러보더니 모두 멋지게 옷을 입고 다니는 것 같다고 했어요. 우리 동네와는 다르다고요. 아빠와 저는 어떤 점이 다른지 발견하지 못했지만……
엄마가 정의 한 우리 동네 패션은:
1. 추우면 무조건 패딩점퍼를 입거나,
2. 사계절 옷을 한꺼번에 입거나,
3. 반팔이나 반바지를 입고 해가 나올 때까지 버티는 것이 캘리포니아 패션 스타일이에요.
(저는 세 번째입니다. 요즘 한창 학교에서 반바지 챌린지 중인데, 누가 가장 오랫동안 반바지를 입고 오는지 겨루는 것이에요. 저는 적어도 1월까지는 자신 있어요!)
다른점은 캘리포니아에서는 보기 힘든 코트를 입은 사람이 많다고 하셨어요. 저는 코트를 입어 본 적이 없어서 그게 어떤 차이인지 모르겠어요. 쿨한 스타일은 분명히 아니고, 아마 차로 따지면 클래식 자동차 같은 스타일?
그런데 빵과 미술관 심지어 패션 이라니! 오하이오주의 콜럼버스는 나보다 엄마가 더 즐기며 여행을 한 곳이 됐어요. 엄마는 미술관을 나오면서 인생을 되돌린다면 오하이오주에서 예술활동을 하면서 살고 싶다고 했어요. 그렇다면 예술활동을 하는 엄마 옆에서 아빠는 무엇을 하면 좋을까요? 엄마와 아빠는 운명이었나 봐요. 미술관 관람 후, 아빠의 주도하에 항공우주 박물관으로 향했거든요. 여행하면서 여러 곳의 항공우주 박물관을 다녀봤지만 갈 때마다 새로워요. 매번 유일하게 엄마의 체력이 약해지는 곳이기도 하고요. 늘 피곤함에 틈만 나면 주무시는 아빠가 뿅! 하고 눈이 동그랗게 변하는 곳이지요.
저는 다행히 두 곳 다 재미있어요. 이번 항공 우주박물관은 국립 박물관으로 대통령 전용기 에어포스원도 타보고 스텔스 전투기와 우주선이 실물크기로 전시되어 있는, 넓은 축구장 여러 개보다 더 큰 공간에 수백 대의 진짜 비행기들을 실제로 타 볼 수도 있는 그런 특별한 곳이었어요! 축구훈련이 박물관 감상에 도움 될 줄이야! 여행은 이렇게 새로운 깨달음을 주는 시간이라 공부가 따로 필요 없는 것 같아요. 요즘 자꾸 여행 중에도 영상대신 책을 읽으라는 잔소리에 시달리는데…. 박물관 관람을 통해 변명거리를 덤으로 하나 챙겼어요.
예측하지 못한 매력으로 꽉 찼던 오하이오주, 그리고 콜럼버스 여행은 끝까지 의외의 코스였어요. 이곳에 독일인 마을이 있다는 것이에요. 다음 비행까지 시간이 남아서 우리 가족은 독일마을에 있는 식당에 가기로 했어요. 가정집을 독일식으로 꾸며 놓은 식당이었고, 그날 우리가 첫 번째 손님이었어요. 어디선가 많이 들어 본 메뉴, 쁘레첼과 슈니첼을 주문하고 신나게 먹고 있었더니 독일사람처럼 생긴 아저씨들로 금방 꽉 채워졌어요. 내가 미국에서 사귄 첫 번째 친구의 아빠, 얀스 아저씨는 독일사람인데 매일 이런 음식을 먹으면서 지냈을까요? 아침이라 슈니첼이 잘 넘어가지는 않았거든요. 제가 듣기로는 얀스 아저씨는 아이스크림을 제일 좋아한다고 했는데……. 그래서인지 아침을 다 먹고 나왔더니 어젯밤 먹었던 제니스 아이스크림이 생각났어요. 하지만 이번에는 시간이 부족해 바로 공항으로 향했어요.
오하이오주 임무는 이렇게 마무리 됐어요. 그리고 이번여행의 네 번째 공항에서 친구들을 위해 오하이오주 로고가 새겨진 손목 밴드를 선물로 샀어요. 그리고 아빠는 행복해하는 엄마를 보며 즐거워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