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위스콘신주! 이쯤 되니 여행이 정말 즐겁지만 장소가 헷갈리기 시작해서 도시의 특징을 하나씩 기억해 두려고 했어요. 그런 면에서 위스콘신주에 있는 밀워키는 특색 있는 것을 연결하여 기억하기에 좋은 도시였어요.
밤에 도착해 시내로 진입하자 밀워키 공구회사의 사인이 크게 빛나고 있었거든요. 밀워키라는 공구회사가 아주 유명한데 바로 이곳이 그 회사의 홈시티예요. 차를 타고 조금 더 달리니 할리데이비슨 간판이 보였어요. 이곳은 할리데이비슨의 고장이기도 하고요. 미국 아저씨들이 사랑하는 브랜드가 모여있는 곳이에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아빠 하고는 아주 거리가 먼 품목들이지요. 미국의 주택에 사는 동안 아빠는 그 어떤 공구도 구입하지 않으셨거든요. 이사 온 후, 농구골대를 설치하기 위해 3일 동안 4가지의 드라이버를 구입한 것 빼고는 말이에요.
도착한 호텔에서 TV를 보면서 쉬는데 끊임없이 밀워키 공구 광고가 나왔어요. 엄마와 저는 공구의 기능에 매료되어 갖고 싶었지요. 쓱쓱 잘리는 톱부터 시작해서 우리 집을 새롭게 탄생시킬 아이템들이 가득했어요. 밀워키 톱만 있다면 마당의 나무들을 잘라서 땔감으로 쓸 수 있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어요. 요즘은 뒷마당에서 불 때는 것이 제 취미거든요. 엄마는 오래된 가구를 리폼하고 싶어 하셨고요. 아빠는 엄마가 산다는 것이 있으면 한국에 다시 돌아가서라도 구해오는데 이번에는 단호하게 거절하셨어요. 엄마와 저는 더 이상 조르지 않고 TV를 켜 놓은 채로 잠을 청했어요. 저는 아빠 하고는 달리 밀워키 공구를 좋아하니까 미국스타일 아저씨가 될까요?
밀워키에서 아침을 맞이 하니 세상이 다른 느낌이었어요. 크림시티라는 별명처럼 건물들의 색이 한 톤 밝고 따뜻했거든요. 그 위에 꾸며놓은 크리스마스 장식을 보고 엄마는 밀워키라는 도시에 금세 매료되었어요. 엄마가 감동한 포인트는 이번에도 나에게는 크게 와닿지 않았지만……예를 들면 우리 동네는 주로 불빛으로 장식하는데 이곳의 집들은 생나무로 리스나 가랜드로 만들어 빨간 리본을 달아 장식해 놓은 점이 좋다고 하셨어요. 한 블록에 사진 5장씩은 찍은것 같아요. 사실 저도 이곳이 꽤 마음에 들긴 했어요. 그런 건물 안에 있던 한식당이 굉장히 이색적이었거든요. 여행을 하면 어느 곳을 가도 한식당을 한 번씩은 들르는데 그럴 때마다 한국의 시골 식당에 온 느낌이었어요. 하지만 밀워키에서 갔던 한식당은 마침내 내 스타일! 내가 감동하는 포인트가 됐어요. 음식도 약간 미국 맛이 섞인 한국맛, 분위기는 블랙톤의 모던한 인테리어였거든요. 게다가 아이스크림가게에서는 이 세상의 모든 달콤한 것들을 한 곳에 담아 줬어요.
밀워키에서 아빠가 좋아했던 곳은 할리데이비슨도, 밀워키 공구도 아닌 바로 밀러 맥주 공장이었어요. 요즘 제가 한참 재밌게 보는 드라마 “영 쉘던”에서의 아빠 조지만큼은 아니지만 맥주를 굉장히 즐기는 아빠는 밀러 공장이 있다는 소식에 달려갔어요. 의도치 않게 우리 가족만의 프라이빗 투어를 받았고 저는 맥주 냄새로 두통이 왔어요. 하지만 아빠는 지금은 네가 프라임을 마실 때와 같은 마음이라면서 조금만 참아 달라고 부탁하시고 딱 한잔의 맥주를 아주 시원하게 마셨어요. 밀워키는 물이 좋고, 날씨도 좋은데, 이런 곳에 독일인들이 모여 살면서 맥주를 만들기 시작한 것이 유명해졌다고 해요. 저장과 유통 기술이 발달하기 전까지는 캘리포니아 사람들은 밀러 맥주를 맛있게 즐길 수 없었대요. 지금은 어느 곳에서나 똑같은 맛을 즐길 수 있다고 했는데, 그럼에도 엄마와 아빠는 유난스럽게 공장에서 마시는 맥주 맛이 훨씬 좋다 했어요. 다행히 안주로 받은 쁘레첼이 맛있어서 두통은 금세 나았지만 주위를 둘러보니 어린이는 저 혼자였어요. 미국은 한국보다 술에 대한 법이 엄격하거든요. 옆집 누나가 한국에서는 18세부터 술을 마실 수 있다고 알려주니 부러워 한 적이 있어요. 하지만 20세부터 면허증을 딸 수 있다는 말을 듣고 그냥 미국에 살겠다고 했어요. 어느 곳이나 마음에 쏙 드는 법은 없는 것 같아요. 사실 저는 미국 법이 더 마음에 들어요. 술을 마시는 것보다는 운전하는 날을 훨씬 더 많이 기다리고 있거든요.
이렇게 밀워키에서 각자 좋아하는 포인트를 찾아 그 어느 때 보다 알차게 시간을 보냈어요. 파머스 마켓에서는 지금 까지 중 가장 맛있는 랍스터 샌드위치와 바비큐 립도 먹었어요. 사실 어느 곳을 가도 만족할 수 있는 도시였어요.
마지막 코스로 포만감을 즐기면서 길을 따라 내려가다 보니 미시간 호 앞에 자리 잡고 있는 아주 멋진 미술관이 나왔어요. 독특하면서도 모던함이 조화롭게 디자인된 건물 모습이 딱 제가 설계하고 싶은 모양과 비슷한 느낌이었어요. 미술관 앞에 있는 LOVE 조형물은 뉴욕에서 보던 것과 색상은 조금 달랐지만 같은 작품이었어요. 엄마는 늘 이 글씨 앞을 지나면 젊은 시절사진을 들춰 보시고 다시 사진을 찍고 싶어 하셨는데 복잡한 뉴욕에서는 번번이 지나쳐 왔어요. 이번에는 아무도 없고 여유로운 이곳에서 마음껏 사진을 찍으셨지요. 아빠는 따뜻한 벤치에 앉아 낮잠을 즐기기 직전이었어요.
길 끝에 있던 미술관은 모든 상황을 평화롭게 만들어 주는 곳이었고 다른 기억으로 간직할 뻔한 밀워키의 기억을 한 곳으로 모아주었어요. 덕분에 위스콘신주의 밀워키는 절대 다른 곳과 헷갈리지 않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