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매릴랜드:
우리가 로드트립을 하면서 가능한 빼놓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웰컴사인을 찍는 일이에요. 대부분 아빠가 운전하는 동안 차 안에서 엄마가 사진을 찍어요. 웰컴사인 안에는 그 주의 특색이 잘 드러나 있는데 엄마는 메릴랜드의 웰컴사인을 가장 좋아하셨어요.
꽃과 이름이 너무 잘 어울리는 웰컴사인만 봐도 기분이 좋아지는 곳이라고 느껴진대요.
나의 기억은 웰컴사인보다 끝없이 보이는 다리가 물속으로 빠져 들 것만 같았던 The Chesapeake Bay Bridge를 건너는 시간이었는데…... 금문교보다 더 명물이 돼야 할 것 같은 다리였어요.
엄마가 나의 고소공포증을 걱정하셨지만 차를 세우거나 밖을 나가면 더 무서울 것 같았고, 중요한 것은 그곳에서 차를 세울 수 없다는 사실이었어요. 다리 위를 달리는 차의 모습들은 마치 바다 위의 하늘을 날다가 착륙하는 모습 같았어요.
이번 여행에서는 한식을 먹을 기회가 없어서인지 아빠가 많이 예민해지셨어요. 그래서 늘 대안으로 찾는 쌀국숫집을 갔어요. 제가 이 메뉴에 반대를 했다가는 큰 화가 닥칠 것이라는 것을 감지했지요.
하지만 쌀국수는 정말 맛이 없었어요. 쌀국수가 제일 맛있는 지역은 캘리포니아 같아요. 여행을 다니면서 음식에 대한 정보가 쌓이게 됐는데 저는 개인적으로 공항맛집을 기억해 두었다가 가는 것을 좋아해요. 그럴때 마다 아빠는 제가 어릴 때부터 한국의 휴게소를 좋아하던 모습이 생각난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요. 하지만 누구보다 저와 함께 공항 맛집 공유에 열을 올리며 가장 활발히 교류하는 사람은 바로 우리 아빠입니다.
28) 웨스트 버지니아
웨스트 버지니아에 도착해 보니 갑자기 추워진 날씨가 느껴졌어요. 오랜만에 느껴보는 차가운 공기가 반가웠어요. 차에서 내려 김이 서려있는 창문에 낙서를 하느라 주차장에서 뭉그적 거렸어요. 하지만 추위에 유난히 약한 엄마가 후다닥 호텔로비로 피하고 싶어는 바람에 서둘러 마무리를 하면서 한 가지 생각에 확신했어요.
윽, 분명 엄마와 아빠는 뜨끈한 음식을 찾을 것이에요.
그리고 빙고!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메릴랜드에서 기대에 미치지 못한 쌀국수를 먹은 터라, 이 지역에서 뜨끈한 국물은 컵라면이 제일 믿을만한 대안이라고 결론을 내렸어요.
그 지역에서 처음 보는 이름의 마트에 가는 것을 좋아하는 엄마는 이곳 마틴스버그에서는 Weis가 많이 있으니 가보자고 했어요. 외식을 하고 싶은 마음에 한국 컵라면이 없는 곳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따라나섰지요. 놀랍게도 우리는 그 마트에서 처음 보는 김치 컵라면을 샀고 아빠는 맥주와 함께 드신다고 칩 한 봉지, 저는 새로운 맛은 아니지만 프라임을 샀어요. 산호세에는 중국, 일본, 한국 마트가 다양하게 있고 미국마트에도 대부분 라면과 아시안푸드 코너가 있어서 컵라면을 살 수 있는 것이 특별히 어렵지는 않지만 여행하면서 모든 주가 그런 것은 아니라고 알게 됐거든요.
웨스트 버지니아주의 마트에도 한국의 코너가 당당하게 있는 모습을 보니 반가웠어요. 하지만 김치컵라면을 먹기는 싫었어요. 불닭이면 모르겠지만……. 다행히 아빠도 김치 컵라면을 싫어하셔서 우리는 일식집으로 향했고 남은 여행을 위해 컵라면은 아껴두기로 했지요.
웨스트 버지니아주에서 우리는 쉬어가는 일정으로 특별한 활동을 계획하지는 않았어요. 마트에 가고, 주유를 하고, 드라이브를 하면서 집들을 구경하는 일상적인 것을 하기로 했어요.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한국에 있는 친구가 생각났어요. 지난여름 우리 집에 놀러 와서 함께 여름을 보냈는데 친구의 엄마, “이모”가 학생 때 웨스트 버지니아 주에서 교환학생을 한 이야기를 들려주셨거든요.
교환학생은 한국과 미국의 학생이 학교를 바꿔서 다니는 제도라고 하는데 정말 재미있을 것 같아요. 나중에 내가 한국으로 돌아갔을 때, 미국의 친구가 교환학생이 되어서 우리 학교에 오면 얼마나 좋을까요?
미국 친구가 한국에 온다면 내가 좋아하는 분식집과 친구들을 소개해주고 싶어요. 내가 얼마나 높은 층에서 사는지도 보여주고 싶고, 슬립오버파티를 하려면 우리는 모두 덩치가 크니까 침대 대신 거실바닥에서 자는 것도 체험시켜 줄 거예요. 방바닥이 뜨끈한 것을 알아차리면 깜짝놀라겠지요? 학교 점심시간에는 나의 윙크로 급식실 선생님께 맛있는 반찬을 한번 더 받게 해 주고(얼마 전 나의 가장 친한 친구가 카페테리아 봉사를 하면서 맛있는 음식을 나에게 슬쩍 하나씩 더 챙겨 주다가 여자아이들에게 발각되어 해고당했다), 우리 엄마도 미국에서 보다 더 능숙하게 친구들을 도와줄 수 있을 거예요.
이모의 교환학생 생활 중에서 재미있던 기억은 미국 학교에서 노를 젓는 배를 타면서 보낸 시간이었대요. 한국과는 다르게 느껴졌던 햇빛, 잔잔한 물, 그 위에서 평화롭게 노를 저어가면서 보내는 시간이 아직까지 미국의 낭만으로 남아 있어 이번 여행때도 그런 시간을 꼭 갖고 싶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우리 동네에 있는 공원에 가서 카누를 탈 수 있게 알려드렸어요. 운동을 싫어하는 저는 집에서 쉬겠다고 따라나서지 않았었는데 안타깝게 그날 바람이 너무 세차게 불어 친구네 가족은 구조 요청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해요. 친구는 동생과 함께 노를 정말 열심히 저었다고 했지만 어쩔 수 없었나 봐요. 모터보트가 출동해서 끌려왔대요.
이모는 학생때와는 정 반대되는 미국 서부의 낭만을 간직하게 되셨지요.
구조요청 없이 이곳 웨스트 버지니아주의 어느 학교에서 이모가 노를 젓고 다녔다고 생각하니 지나치는 호수들이 친근하게 보였어요. 친구가 타임머신을 타고 학생 엄마와 함께 이곳에서 배를 탔다고 해도 우리 동네에서 처럼 똑같이 이모의 구령에 맞춰 열심히 노를 젓느라 애를 먹는 모습이 그려져 혼자 웃음이 나왔어요.
다음에는 친구와 함께 노를 저어 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