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초등학교 4학년, 춤으로 나를 표현해 보다.
나는 음치이다.
나는 박치는 아니다.
학교에서 극기훈련 일정이 정해져 선생님 편에 전달이 되는 날,
친구들은 몹시도 분주했다.
2박 3일 중 마지막 밤을 위한 시간,
장기자랑을 준비하려는 아이들은 혼자 할 계획을 세우기도, 친구들을 모으기도 하며
각자의 준비 시간들을 보내기 바빴다.
학급에서 늘 조용하였던 나는 한 번쯤 장기자랑을 나가고 싶어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준비했더랬다.
혼자 나가는 친구들 대부분은 노래를 부르거나 악기를 연주하려고 하였다.
나는 춤을 추기로 결정하였다.
무슨 노래를 준비했었는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는다. 댄스곡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집에 있던 조그마한 카세트 플레이어와 함께 테이프에 내가 추려는 노래를 정성 들여 담았다.
따로 춤연습을 할 공간도 없었다.
학교 수업을 다 마치고 친구들은 다들 하교를 하는 시간에 나는 학교 건물 뒷문 옆 작은 공간으로 향했다.
그런데 나와 같은 생각을 한 친구들이 여러 명이었다.
노래연습을 하는 친구들은 없고 모두 춤연습뿐이었다.
아마도 노래연습을 하는 친구들은 각자의 집에서 하기로 한 모양이다.
각 반에서 한, 두 팀 씩들은 그 공간을 이용해 춤연습을 하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나같이 들고 온 카세트 플레이어를 트니 시끄럽게 음악들이 퍼져 나왔다.
여기저기 다양한 노래들이 한꺼번에 나오니, 귀가 시끄럽다고 요동을 치고 정작 내가 준비해 온 노래는 잘 들리지도 않고 어디 공간 한쪽에 파묻혀 버렸었다.
연습 첫날은 나의 춤연습보다 아이들을 관찰하는데 모든 촉각을 동원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느 반에 누가 춤을 잘 추는지,
또 어떤 노래에 어떤 동작으로 춤을 만들었는지,
여럿이 팀을 이룬 친구들은 조잘조잘 토론까지 하니 혼자 나가기로 한 나는 걱정이 앞섰더랬다.
연습 첫날 허둥지둥 시간을 그냥 흘려보낸 탓에
다음날부터는 수업종료 종이 울리기 바쁘게 빠른 걸음으로 연습공간에 도착했었다.
다른 친구들이 도착하기 전에 햇빛이 잘 들고 괜찮은 공간에 책가방을 두며 나의 연습자리임을 알렸다.
카세트 플레이어를 틀고 몸을 마구 흔들어 보았다.
내가 할 수 있는 동작들을 찾아나가자니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어느샌가 내 주변으로 눈을 돌리니 꽉 찬 인원들로 연습들이 한창이었다.
누군가 모르는 어른들이 보면 어린이 춤대회라도 있는 날로 오해할 것처럼
모두 춤연습에 진심이었던 기억이다.
그렇게 며칠에 거쳐 춤연습을 하고 극기훈련 마지막 밤이 되었다.
극기훈련장 대강당에 모든 친구들이 모였고 선생님들과 이틀동안 함께 했던 조교들도 자리를 잡았다.
나는 장기자랑에 참여하는 대기실 공간에서 다른 친구들과 순서를 기다렸었다.
청심원이라도 챙겨 올 걸 장기자랑에 참여하겠다고 했던 나 자신에게 괜히 후회의 말들을 늘어놓았다.
드디어 나의 순서다.
강당의 불이 다시금 껴지고 스포트라이트가 켜졌다.
다행히 같은 반 친구들은 소리를 지르며 반겨주었다.
음악 첫 소절이 흘러나오고 시작은 좋았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더랬다.
중간정도 음악이 흘러나올 때쯤 잘 외워두었던 동작들이 갑자기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흩어져 버렸다.
순간 움찔했지만 마지막은 막춤이 되어버렸다.
음악이 끝나고 그동안 연습했던 시간이 무색하게도 너무도 큰 창피함이 왔더랬다.
자리에 돌아온 나는 나 다음으로 참여하는 다른 친구들의 무대를 지켜볼 수 없었다.
그런 나의 모습에 반 친구들은 그래도 잘했다며 위로를 해주었더랬다.
실패한 무대라 생각했지만 그 실패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다음 해에도 또 그다음 해에도 극기훈련에서 친구들의 추천으로 장기자랑에 참여할 수 있었다.
혼자가 아닌 친구들과 함께 팀을 이루어 장기자랑 무대를 만들었더랬다.
나중에 나중에 친구들에게 물어보았었다. 왜 나와 같이 춤을 추겠다고 했는지.
친구들이 그랬다. 그냥 막춤이 재미있다 생각해서라고.
나의 첫 장기자랑 무대는, 큰 실패의 무대가 아닌 작은 실수의 무대였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