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이가 당원병이 의심된다’라는 말을 들은 것은 금요일 저녁, 대학병원 응급실에서였다. 정확한 진단을 위해 ‘유전자 검사’를 받아야 하는데 응급실에서 바로 해 줄 수는 없고, 다음 주 월요일 낮에 외래로 다시 방문하라고 했다. 대학병원 업무시스템상 그렇다는 걸 머리로는 알지만, 마음으로는 원망스러웠다. 하필 그 시간에 근무 당번이라 나에게 재수 없는 소식을 전할 수밖에 없던 그 의사가 원망스러운 건지, 모태신앙으로 지금까지 굳게 믿어왔던 신이 원망스러운 건지, 아이에게 이런 운명을 건넨 내 몸뚱이가 원망스러운 건지 헷갈렸다. 누군가의 멱살을 잡고 원망을 퍼붓고 싶은데 그 대상이 분명하지 않아서 답답했다.
(2)
월요일 아침, 대학병원 외래에서 담당 교수를 만났다. ‘응급실에서 있던 일을 전해 들었다, 당원병이 의심되긴 하나 아직 정확히 진단받은 게 아니므로 지금으로선 딱히 해줄 말이 없다, 일단 유전자 검사를 하고 3주 뒤 검사 결과가 나오면 다시 얘기하자.’ 차갑고 형식적인 이야기가 오갔다. 오갔다기보단 일방적으로 들었다.
집에 돌아와서도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지난 주말이 지옥이었던 것처럼, 검사 결과까지 3주간의 지옥도 예상됐다. 밤새 잠을 잔 건지 아닌 건지, 졸린 건지 아닌 건지, 배가 고픈 건지 아닌 건지, 내가 지금 울고 있는 건지 아닌 건지, 모든 판단이 흐렸다. 특히 남편은 “어차피 4세를 넘기지 못한다면서 남은 3년을 지옥처럼 살 바에야 지금 다 같이 죽자”라고 말했다가 “치료하지 말고 공기 좋은 시골에 가서 세 식구 행복하게 살다 가자”라고 말했다가 베란다의 방충망까지 활짝 열어둔 채 풀린 눈동자로 허공을 한참 응시하기도 했다. 엄마는 강하다던데, 이 상황에서 강한 마음이 생기지 않는 내가 미웠다.
각종 SNS를 샅샅이 뒤져 당원병 환아의 부모가 올린 글을 찾아냈다. 이미 기간이 한참 지난 게시물이었지만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메시지를 남겼다. 몇 시간 후에 답장이 왔고 당신 자녀의 주치의를 소개해줬다. 곧바로 그 의사와 연락을 시도했다. ‘S 병원 희귀질환센터’와 연결이 됐고, 해당 의사의 진료를 받으려면 열흘 정도 남았다고 했다. 그 날짜까지만 잘 버텨보기로 마음을 먹던 찰나였다. 아이의 검사 결과를 전해 들은 의사가 열흘도 길다며 바로 다음 날 우리 아이를 보고 싶다고 했다. 진료 날짜가 당겨진 것에 감사해야 할 일인가, 당겨질 만큼 심각한 상황임을 원망해야 하는가, 판단이 서지 않았다.
(3)
S 병원 의사는 지금까지 거쳐왔던 의사 중 제일 친절했다. 당원병의 정의부터 원인, 증상, 관리 방법까지 두 시간 가까이 설명해주었다.
일반적으로 식사를 하면 혈당이 올라가고 인슐린이 분비되면서 당원으로 축적된다. 이때 인슐린이 제대로 분비되지 못하는 게 당뇨병이다. 그래서 당뇨병 환자들은 대부분 혈당이 매우 높다.
반대로, 당원병은 당원으로 축적되거나 당원에서 혈당을 꺼내 쓰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하는 유전질환이다. 그래서 당류가 있는 음식을 섭취하면 안 된다. 필수 영양소를 아주 섭취하지 않으면 살아가는 데 문제가 생기니, 섭취하더라도 몸에 축적되지 않고 바로 사용할 만큼만 계산해서 조금씩 자주 섭취해야 한다. 그래서 늘 혈당이 낮다. 몸도 저혈당에 적응이 되어 일반인이 증상을 느낄 정도의 저혈당 수치여도 당원병 환자들은 아무 증상도 느끼지 못한다. 그러다가 이어지는 저혈당 쇼크를 조심해야 한다. 몸에서 에너지를 억지로 만들 수는 있는데 그 과정에서 젖산, 요산, 중성지방, 콜레스테롤이 높아지면서 각종 합병증을 유발한다. 발달 지연 및 성장 지연, 신장 투석 또는 이식, 간혹 또는 간암, 심장이 두꺼워지며 돌연사할 수 있다.
인터넷에서 봤던 정보 중 ‘4세를 넘기지 못한다’라는 말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 예후에 대해 끈질기게 질문했다. 국내 환자 중 약 90퍼센트가 10세 이하이고, 나머지 10퍼센트는 10대, 20대, 30대에 고루 분포되어 있다. (40세 이상의 데이터는 이날 언급되지 않아 잘 모르겠다.) 성인 환우가 적은 첫 번째 이유는, 성인이 되기 전에 사망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유는, 장기이식을 받았기 때문이다. 보통 간이식을 먼저 떠올리는데 간이식을 한다고 완치되는 건 아니다. 다른 장기에 합병증이 발생할 수 있는데 그럴 때마다 간, 신장, 심장 등 모든 장기를 이식할 수는 없다. 또한 한 번 이식에 성공했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10여 년마다 재이식하는 예도 있다. 따라서 장기이식은 최악의 상황(간암 등)에만 권한다고 한다.
보인자인 부부 사이에서 태어나는 유전병이라 예방 방법은 없다. 임신 중에도 해볼 만한 검사 방법이 없다. 아이가 태어난 후 본인의 혈액으로 유전자 검사를 해야만 알 수 있다. 현재까지 개발된 치료 약물이나 수술 방법은 없다. 오직 철저한 식이요법으로 혈당 관리를 할 수밖에 없다.
당원병 안에서도 0형부터 약 15형까지, 유형이 무척 많다. 유형마다 섭취할 수 있는 음식의 종류는 조금씩 다르지만, 공통점은 ‘조리되지 않은 옥수수전분을 찬물에 타 먹는 것’이다. 옥수수전분은 복합 탄수화물이다. 체내에서 천천히 분해되는 특징이 있어서 몇 시간 정도는 혈당을 유지할 수 있다.
당원병 환자는 옥수수전분을 밥보다 더 중요하게 필수로 섭취해야 한다. 하지만 국내에선 판매되지 않는다. (아마 수요가 적어 공급도 없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해외 배송을 이용하여 구매해야 한다. 진료 직후 바로 주문해도 내 손에 들리기까지 시간이 걸리므로, 의사는 자신이 갖고 있던 옥수수전분 몇 통을 우리에게 건넸다. 태어나 처음 들어보는 치료 방법이고, 처음 만져보는 옥수수전분 가루였다. 당황스러웠지만 연신 고개를 숙이며 감사 인사를 표했다.
(4)
아이가 처음 처방받은 음식의 양은 한 끼에 쌀 5g이었다. 커피 숟가락으로 한 숟가락이다. 이렇게 조금 먹어야 하는 아이인 줄도 모르고 한 끼에 이유식을 200g씩 먹였다. 이유식 먹은 지 한 시간이 지나서 또 배고파하면 한국인은 밥심이라며 찐 단호박이나 찐 고구마를 으깨 우유에 말아주었다. 분유도 일반 분유가 아니라 당분이 적은 특수 분유를 먹어야 했는데 그것도 모르고 당류가 가득한 분유를 하루에 1,000mL 넘게 먹이고 있었다. 먹으면 안 되는 것들만 모조리 먹였다. 그렇게 일 년 동안 먹은 것들이 간에 쌓여서 정상 크기의 두 배만큼 커지고, 간 수치는 1900까지 높아진 것이었다. 내 손으로 직접 아이를 망가뜨렸다는 생각에 자신에게 참을 수 없는 분노가 향했다. 그 후로도 한참 동안 나를 혐오했다.
삼시세끼, 간식, 특수 분유, 옥수수전분의 식이 시간표가 정해졌다. 음식을 먹일 때마다 아이의 발뒤꿈치를 바늘로 찔러 혈당과 케톤 수치를 확인하고 처방된 양의 식사를 먹이는 방법이었다. 그렇게 하루에 총 12번 식이조절을 했다. 낮에는 밥을 조금밖에 먹지 못해 배고파서 우는 아이를 달래느라 힘들었고, 밤에는 두 시간마다 일어나 전분물을 먹여야 하는 것이 피곤했다. 아이는 잘 자고 있는데 깨운다고 울고, 바늘로 발뒤꿈치를 찌른다고 울고, 억지로 입안에 전분물을 먹는다고 울었다. 혓바닥으로 젖꼭지를 밀어내면 새하얀 전분물이 턱을 타고 흘러내렸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용량을 먹지 않으면 저혈당에 빠지므로 어떻게든 먹여야 했다. 아침이 되면 아이의 옷과 베개에는 새하얀 전분물 자국이, 이불에는 발뒤꿈치에서 묻어나온 새빨간 피가 묻어있었다. 그 자국들은 지난 밤의 실랑이를 증명했다.
(5)
그렇게 3주가 지나고 아이는 당원병 확진을 받았다. 동시에 우리 부부는 만성 수면 부족의 길로 들어섰다. 아니, 아이가 태어난 후부터 계속 새벽 저혈당으로 분유를 찾았으니 이미 만성 수면 부족의 경력자였던 걸까. 수면 부족의 삶이 지속되면 안 될 거라고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러다가 올 것이 왔다. 어느 날 아침 출근 시간,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쏟아지는 졸음으로 인해 사고가 났다는 것이었다. ‘이런 상황에 남편까지?’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