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윤지 Nov 13. 2024

간 수치 1900, 의사도 모르는 병

(1)     

돌쯤, 영유아 검진을 위해 병원에 갔다. 정부에서 시행하는 형식적인 과정으로 여겼다. 의사는 진료를 마치고 내게 물었다.   

   

“더 궁금한 점이 있으신가요?”     

 

병원에 온 김에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긴 있었다.     


“아이가 밥을 잘 먹는 편인데 먹어도 너무 먹어요.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우고도 한 시간 후에 또 배고프다고 보채요. 돌인데도 아직 새벽 수유를 끊지 못하고 새벽 세 시마다 분유를 200mL씩 먹고 자요. 그렇다고 몸이 전체적으로 통통한 게 아니라 팔다리는 가늘고 유독 배만 볼록하게 튀어나왔어요. 이렇게 많이 먹어도 괜찮은 건지 배 좀 봐주세요.”     


의사는 배에 청진기를 대보기도 하고,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보기도 했다.      


“특별한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정 궁금하시면 엑스레이가 있는 병원에서 제대로 진료받아보세요. 저희는 기계가 없어서.”     


‘그럼 그렇지.’     


나중에 큰 병원에 갈 일이 생기면 겸사겸사 확인하면 되겠다고 생각하며 집에 돌아와 아이와 낮잠을 청했다. 잘 자고 있는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J 소아청소년과입니다. P 아이 보호자님 되시죠?” 

“네, 맞아요.”

“원장님께서 보호자님과 통화하길 원하십니다. 바꿔드릴게요.”     


본능적으로 온몸에 긴장이 바짝 들어갔다. 의사가 직접 보호자에게 할 말이 있다니.      


“오전에 아이가 다녀간 후 머릿속에서 계속 떠나질 않아요. 배가 너무 볼록한 게 뭔가 찝찝해요. 당장 엑스레이를 찍어보고 싶지만 작은 병원이라 시설을 갖추지 못한 게 아쉽네요. 지금 소견서 써드릴 테니까 큰 병원 가서 엑스레이 꼭 찍으세요.”     


요즘 시대에 보기 드문 따뜻한 소아과 의사라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 네네.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은 금요일 오후니까 큰 병원에 곧바로 예약하기엔 어려울 것 같고요, 다음 주에 가볼게요.”     


그다음 이어지는 말은 망치가 되어 내 머리를 내리쳤다.     


“보호자님, 의사가 지금 바로 찍어보자고 하면 이유가 있는 거예요. 응급실에 가서라도 오늘 꼭 찍어보세요. 지금 소견서 가지러 오시고요. 오시는 동안에 바로 진료가 가능한 곳이 있는지 알아봐 드릴게요.”  


   

(2)     

소견서를 챙겨 아이와 함께 가까운 2차 병원으로 갔다. 그곳에서 만난 여의사 역시 아이의 배를 요리조리 만지더니 고개를 갸우뚱했다. 병원 특유의 차갑고 불쾌한 냄새를 뚫고 검사실을 순회한 뒤, 다시 외래 진료실에 앉았다.     


“이런 경우를 처음 봐서요, 딱히 해드릴 말이 없네요. 소견서 써드릴 테니까 더 큰 병원으로 가서 정밀검사를 받으세요.”     


불과 몇 시간 전에, 형식적이라고 여기는 검진을 위해 집 근처 병원을 방문했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2차 병원으로, 그리고 대학병원까지. 이게 반나절 만에 이루어져도 되는 일인지 이해되지 않은 채 택시를 타고 큰 병원으로 옮겨갔다.      


며칠 전, 아이가 많은 사람의 박수를 받으며 ‘건강’하게 자랐음을 축하받던 돌잔치 장면이 스쳤다. 그날이 마치 아이가 ‘건강’을 누리는 마지막 순간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불길함이 엄습했다.      



(3)     

세 번째로 옮겨간 대학병원 응급실에서는 몇 가지 검사를 추가로 처방했다. 대기 시간이 두 시간을 넘어 세 시간이 되어도 의사는 우리 자리에 오지 않았다.      


‘아, 무언가 잘못되어가고 있다.’      


“간 쪽이 안 좋은 건 이전 병원에서 설명 들으셨죠? 교수님이 정해지면 설명하겠습니다.”     


마치 어려운 환자 담당하기를 서로 미루는 일종의 ‘폭탄 돌리기’처럼 느껴졌다. 아이는 울다 지쳐 잠이 들고 남편과 나도 피곤함에 절어있을 때쯤, 우리의 회진 차례가 왔다.      


“우리 병원에서 진행한 혈액 검사 결과도 특이하긴 해요. 간 수치 정상 범위는 0~30인데, 아이는 1900으로 나왔어요. 다른 수치 들도 정상 범위인 게 거의 없어요. 이런 경우 ‘당원병’이라는 질병을 의심하는데 저도 실제로는 처음 봐요.”     


마지막까지 간신히 붙잡고 있던 정신 줄이 ‘툭’ 끊겼다. 대학병원 의사가 한다는 말이 이런 환자를 처음 본다니.      


“다음 주에 유전자 검사를 해보셔야 정확하게 알 수 있어요. 예약 시간 안내해 드릴 테니 꼭 오셔야 합니다. 꼭.”     


조금 전 까지만 해도 너무 피곤해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했다. 이제는 이 재수 없는 이야기로부터 멀리 도망치기 위해 서둘러 빠져나왔다.      



(4)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남편과 나는 서로 아무런 말이 없었다. 차 안을 가득 메운 어둠 속에서 서로의 숨소리도 들키지 않으려 애썼다. 집에 도착하니 이미 열 두 시가 넘었다. 잠든 아이를 침대에 눕혔다. 거실에 모인 남편과 나 사이에는 무거운 공기만 맴돌았다. 초록 검색창에 ‘당원병’을 검색했다.     


‘당원병’은 선천적으로 혈당을 만드는 효소에 문제가 있어 스스로 혈당을 조절하지 못해 저혈당이 쉽게 발생하는 유전성 희귀 난치질환이며 10만 명당 1명꼴로 나타난다고 했다. 곧바로 이어지는 부연 설명이 너무 잔인했다.      


‘생후 1년 이내 발병한다. 간이 크고 배가 나온다. 폐, 심장, 근육에도 영향을 준다. 성장지연과 발달 지연이 생긴다. 심하면 경련이나 의식장애도 온다. 현재까지 치료 약과 수술 방법이 없다. 그저 살아있는 동안에 식이요법으로 혈당을 관리 해야 한다. 저혈당 쇼크를 조심해야 한다. 그리고 보통 4세가 되기 전에 사망한다.’      


아무것도 믿어지지 않았고 믿고 싶지 않았다.      


남편과 눈이 마주쳤다. 말하지 않아도 각자 같은 내용을 보고 있었던 것이리라. 누가 말하기도 전에 둘이 동시에 눈물이 터졌다. 짐승처럼 꺼이꺼이 소리를 질렀다. 미친 사람처럼 기어 다녔다. 주먹으로 바닥을 내리쳤다. 머리를 바닥에 연신 박았다. 남편은 손과 발이 안으로 말렸다. 나도 손과 발이 저렸다. 그렇게 한참을 함께 울다 보니 어느새 아이도 울기 시작했다. 새벽 세 시였다. 그 날밤에도 아이는 어김없이 잠에서 깨어 분유 200mL를 단숨에 먹어 치웠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태어나서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마다 울면서 깼던 이유는 질병과 관련된 ‘새벽 저혈당’이었다. 새벽 수유 습관을 끊어보겠다고 분유를 달라고 우는 아이를 굶기던 날이 스치며 엄청난 죄책감에 숨이 막혔다.)      


남편과 나는 잠든 아이를 한참 동안 내려다보았다. ‘통통한 양 볼, 볼록한 배, 가느다란 팔과 다리. 눈사람 같기도 하고 개구리 같기도 한 모습.’ 인터넷에서 봤던 당원병 환아의 특징적인 모습이었다. 우리 아이 위에 그 모습이 겹쳐 보이며 나는 끝내 잠들지 못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