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코로나 시대에 결혼한 부부다. 3월 14일, 달콤한 날짜에 부부가 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지인들에게 청첩장까지 모두 전한 상태였다. ‘코로나’라는 낯선 바이러스가 등장했지만, 국내 확진자는 약 30명 정도로 해외에 다녀온 소수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확진자는 약 1천 명 정도로 급증했고 정부에서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시켰다. 결혼, 항공, 여행 등 모든 업계가 어수선했다. 다들 처음 겪는 일이라 적절한 대안을 내지 못했다. 결혼식을 3주 앞두고 기대했던 모든 것들이 너무 쉽게 부서지는 것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결혼에 대한 행복은 느껴보지도 못한 채 날아갔고 덤으로 수백만 원도 함께 날렸다.
이 과정을 통해 한 가지 얻은 게 있다.
‘카르페 디엠.’
현재에 충실 하라는 의미다. 미래를 위해 현재 누릴 수 있는 것을 절제하는 게 옳은 줄 알았다. 돈, 시간, 추억 모두 나중으로 미루는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 누리는 것이 더욱 현명한 방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 말은, 머지않아 또 다른 사건과 함께 내 삶의 가장 중앙에 자리하게 됐다.
마음고생에 대한 위로처럼 첫째 아이가 빨리 찾아왔다. 아이는 건강하게 자랐다. 주는 대로 맛있게 잘 먹어서 예쁘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하지만 잘 먹어도 너무 잘 먹었다. ‘태어날 때부터 뱃구레가 큰 체질인가?’라고 생각했다. 아이의 살은 다 키로 간다는 어른들의 말씀대로 잘 먹는 것도 복이라고 생각하며 이유식을 더 열심히 만들었다. 뱃구레가 큰 아이니까 한 끼 식사를 넉넉하게 먹였다. 그래도 한 시간 정도 지나면 지나치게 배고파하며 간식을 찾았다. 결국 아기의 체중은 또래 평균을 지나쳤다. 급기야 키는 작고 체중은 많이 나가는 불균형한 상태가 됐다.
계속 이대로 먹여도 되는지 걱정되어 근처 소아청소년과 세 군데를 찾았다. ‘안 먹는 것 보단 잘 먹는 게 낫다, 잘 먹고 잘 싸면 건강한 것이다, 아직 움직임이 적어서 잠시 체중이 많이 나가는 것처럼 보여지지만 돌이 지나고 걷기 시작하면 살이 키로 갈 것이다.’ 모든 의사가 같은 답변을 주니 안심됐다. 아기가 배고파하면 ‘한국인은 밥심’이라며 더욱 잘 먹이려고 노력했다.
잘 먹어서 기특했지만 힘든 점도 있었다. 밤에 잠들기 전에 분유를 충분히 먹고 재워도 매일 새벽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울부짖으며 잠에서 깼다. 어떠한 방법으로도 달래지지 않았다. 분유를 먹어야만 진정이 됐다. 밤중에 분유를 먹이는 것이 여러 가지 이유로 좋지 않다고 하여 끊어보려 했지만, 매번 실패했다. ‘돌이 지나면 괜찮겠지’라는 근거 없는 막연한 위로를 스스로 건넸다.
돌쯤, 영유아 검진을 위해 병원에 갔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줄곧 다니던 집 근처 병원이었다. 의사는 생각보다 꼼꼼하게 진료했다. 그리고 내게 물었다.
“더 궁금한 점이 있으신가요?”
“아이의 배가 또래보다 유독 볼록한 것 같은데 배 좀 봐주세요.”
다년간의 경험상 금방 좋아질 거라는 답변을 기대하며 가볍게 던진 질문이었다.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이, 몇 시간 후에 칼이 되어 내 심장을 쑤시게 될 줄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