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을 다해서 자유를 만끽하다.
살면서 몇 번의 일탈을 꿈꿨는가? 꿈만 꿨을까, 아니면 행동으로 옮겼을까?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전자보단 후자 쪽에 속한 사람이었다. 착실히 행동으로 옮겼던 나의 일탈이 어느 정도 크기였는지는 나만 아는 것이겠지만 아주 흥미로웠다는 정도로만 말해두자.
어릴 적 나는 그렇게 엄하지도 보수적이지도 않은 지극히 평범한 부모님 아래에서 자랐다. 오히려 겉으로 보기엔 상당히 개방적이다 싶을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그 속엔 지혜로운 엄마의 육아방식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녀는 늘 항상 마음속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안전한 울타리를 만들어놓고 그 안에서 만큼은 내가 자유로이 뛰어놀 수 있도록 해주셨다. 문제는 나였지. 그 자유를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만끽했다. 마치 한 발짝 남겨두고 절대 그 울타리 바깥으로만 나가지 않으면 된다는 듯.
20대 초반의 어느 날, 친구들과 신나게 놀다 새벽 아주 늦은 시간에 귀가한 적이 있었다. 내가 몰랐던 사실 한 가지는 하필 그날 아빠의 출근이 상당히 이른 시간이었다는 것이었다. 모두가 자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 나는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아파트 1층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몇 분 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나는 귀신을 본 듯 두 손으로 내 입부터 틀어막았다. 그곳엔 핸드폰을 보고 있는 익숙한 얼굴이 서 있었다. 잽싸게 나는 계단 쪽으로 몸을 숨겼다. 혼자서만 빛의 속도로 도망갔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지. 창피했지만 그렇게 마무리되는 줄 알았다. 그 일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이후 2% 부족한 나는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게 된다. 그날도 어김없이 늦은 귀가를 하는 중이었고 이번엔 가족들 몰래 방으로 들어갈 나름 방대한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아파트 1층 엘리베이터 앞에 도착. 주말이었고 출근할 사람도 없으니 안심하고 있었다. 문이 열리는 순간 나의 허술하기 짝이 없는 계획이 산산조각 나는 소리가 들렸다. 이번에는 엄마였다. 분리수거하러 가는 중이라 무거운 짐들을 끌어낸다고 뒤돌아 있는 상태였다. 고로 그녀 뒤에 내가 떡하니 서있는 그런 모습. 계단을 향해 뛰면서도 이 투샷이 얼마나 웃기고 어이없었는지 모른다. 안 들켜서 다행이라는 바보 같은 생각과 함께.
언제나 나는 엄마가 정해둔 울타리가 존재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작은 일탈에도 스스로 엄청난 죄책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누가 혼낸 적도 말린 적도 없는데 말이다. 일탈이란 게 마음 한 구석 숨쉬기 위한 구멍을 만들어 두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누구든지 하나쯤은 품고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나는 그녀가 허락해 준 일탈로 인해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힘을 배웠다. 이것이야 말로 엄마가 보이지 않는 안전한 울타리를 만들어 둔 이유가 아닐까.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지금의 나는 바라는 것이 있다. 우리 아이들도 내가 자라온 방식 그대로를 배워가며 자랄 수 있기를, 선택의 자유를 맘껏 누리되 그 안에서 스스로를 지키는 방법을 배우길 말이다. 대신 나처럼 너무 열정적으로 그 자유를 만끽하진 말고. 내가 자라온 방식 그대로 아이들에게도 잘 물려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아이들이 성인이 된 후 지금의 나처럼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일탈의 에피소드가 마음 한 구석에 머무를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겠다. 단 소소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