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 시작하여 겨울에 끝나다.
좋지 않은 컨디션으로 저녁이 다되어서야 글을 쓰려 노트북을 켰다. 그 순간 온몸 가득 서서히 스며드는 차가운 겨울바람에 기분이 산뜻해진다. 드디어 불어온 겨울바람이 너무나 반가운 10월의 끝. 저녁의 바깥이 두꺼운 겉옷에도 쌀쌀하다 말하는 신랑의 얼굴엔 미소가 띤다. 누구라도 반가운 겨울이 천천히 다가오는 중이었다.
올해가 이제 겨우 두 달도 채 남지 않은 지금, 이제야 스며드는 겨울에 올해는 여름이 참으로 길었다 싶다. 화사한 빛깔과 특유의 따스함을 느낄 새도 없이 봄은 지나갔고 가을은 애초에 있지도 않았던 듯 아쉬움만 깊어간다. 11월이 다돼서야 우리 물강아지들의 집에도 히터가 하나씩 들어서게 되고 본격적인 겨울 준비에 나선다. 물고기들도 감기에 걸리기에 조심해야 한단 사실 잊지 말기!
겨울이 다가오는 건 길거리의 반가운 붕어빵을 발견하는 순간으로 알 수 있다. 올해는 유독 겨울이 늦게 스며들어서일까, 날이 아직 따뜻한데도 붕어빵이 보이기 시작했다. 차가운 공기 속에 뜨거운 붕어빵을 호호 불어 먹어야 제 맛인데 따뜻한 날씨에 뜨거운 붕어빵은 뭔가 잘못 짝지어진 짝꿍 같은 느낌이었다. 물론 맛은 최고지만 말이다.
1년 중 최고의 힐링은 단연코 가을. 그러나 사계절 중 가을만 기다리는 나에게 올해는 너무도 가혹했다. 봄, 여름, 겨울 인가 싶을 정도로 단풍은 어디 있는 거지? 보지도 못한 단풍이 어느샌가 다 떨어져 바닥에 굴러다니니 이보다 슬플 수 있냐고. 사실 단풍 보단 벚꽃을 좋아했었는데 왜 그렇게 엄마가 단풍놀이를 열정적으로 다니시는지 알 것 같기도 하다. 나도 나이가 들었다는 거겠지. 더 슬퍼지게.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있던 1월이 지나 현재의 10월이 오기까지 서서히 빛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겉으로 보기엔 아무것도 한 것 없이 책만 읽다가 1년이 지난 듯 하지만, 난 누구보다 최선을 다해 나 자신과 싸웠다. 더 이상 땅 속으로 파고들지 않으려 안간힘을 써서 벗어났고, 더 나은 생활을 위해 스스로를 지키려 노력했다. 그래서 지금도 골골대는 몸이지만 최고의 기분으로 글을 쓰고 있지.
시간이 약이라는 말은 여전히 믿지 않는다. 하지만 모든 일은 각자의 속도로 언젠가는 지나가게 될 것이란 건 믿고 싶어졌다. 30년 넘게 살아온 인생을 통틀어 가장 힘든 한 해였음에도 가장 평온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지금 이니까. 올해의 벚꽃이 어떻게 얼마나 예뻤었는지 기억조차 나질 않는다. 하지만 2024년도의 겨울 공기는 시간이 흘러도 내 안에 꽤 오랜 시간 머무를 것이다. 피부에 닿는 이 차가운 바람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말이다. 모든 건 지나간다. 매섭게 차가운 겨울이 지나야 벚꽃이 만개하는 봄이 오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