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치님, 공은 언제 칠 수 있나요..?"

스매시를 꿈꾸며 갔다가 '악수'하는 법만 배우고 온 날

by 윤슬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레슨 대기 한 달은 기본"이라던 사무장님의 말이 과장이 아니었음을 증명하듯, 긴 기다림 끝에 내 이름이 코치님의 명단에 올랐다.

그 한 달 동안 나는 이미지 트레이닝으로 이미 국가대표였다. 유튜브 알고리즘이 이끄는 대로 이용대 선수의 수비 영상을 보고, 안세영 선수의 스텝을 눈으로 쫓았다.

레슨만 시작하면 코치님이 나의 숨겨진 잠재력을 알아보고, 곧장 멋진 스매시 기술을 전수해 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부푼 가슴을 안고 코트 안으로 들어섰다. 나름대로 깨끗하게 닦아온 실내 운동화가 조명 아래서 반짝였다.


"안녕하십니까!"


우렁찬 인사와 함께 자신 있게 라켓을 고쳐 잡았다. 하지만 코치님의 시선은 내 눈이 아닌, 바닥을 향해 있었다.


​"회원님, 이거 배구화네요?"


​"네? 그냥 유명하다는 실내운동화 샀는데.."


​"네, 실내화는 맞는데 이건 배구 할 때 신는 거예요. 배드민턴화랑은 쿠션이나 고무부분이 잡아주는 게 좀 달라서, 나중에는 바꾸셔야 해요. 발목 다칠 수도 있고요."


​첫 마디부터 지적이라니. 나름 초심인 티를 덜 내보고자 집에 있는 가장 좋은 운동화를 신고 온 건데, 시작부터 엇박자가 난 기분이었다.

배구화면 어떻고 농구화면 어떠랴, 안 미끄러지면 그만 아닌가 싶어 입이 댓 발 나왔지만, "일단은 그냥 신으세요"라는 말에 억지로 고개를 끄덕였다.


​신발은 그렇다 치자. 진짜는 이제부터니까. 나는 당장이라도 날아오는 셔틀콕을 강하게 때려낼 준비를 하며 코치님이 공 박스를 가져오길 기다렸다. 하지만 코치님의 손에는 라켓 한 자루만 들려 있을 뿐이었다.


​"자, 라켓 잡아보세요."


​코치님은 셔틀콕을 던져주기는커녕 내 오른손을 덥석 잡았다. 그리고는 내 손가락을 하나하나 펴서 다시 쥐어주기 시작했다.


​"그립이 돌아갔어요. 이렇게, 악수하듯이. 엄지는 여기 넓은 면에 받치고, 검지는 갈고리처럼..."


불편했다.


내가 잡던 방식(흡사 파리채를 쥐던 그 편안함)이 좋은데, 코치님이 잡아준 모양새는 영 어색했다. 마치 잘 모르는 사람과 억지로 손을 잡고 있는 기분이랄까.


​"자, 이제 손목을 돌려보세요. 안쪽으로, 바깥쪽으로. 팔꿈치는 고정하고요."


​나는 코트 한복판에 서서 허공에 대고 손목만 까딱거리는 사람이 되었다. 1분, 5분, 10분... 시간이 흘러도 코치님은 셔틀콕을 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옆 코트에서는 다른 회원들이 "팡! 팡!" 대포 같은 스매시 소리를 내며 땀을 흘리고 있는데, 나는 마치 고장 난 인형처럼 손목만 비틀고 있었다.


​"코치님, 공은 언제 쳐볼 수 있나요..?"


​참다못해 소심하게 물어보았다. 돌아온 대답은 단호했다.


​"지금 공 치면 평생 나쁜 버릇 들어요. 이 그립이랑 손목 회전이 배드민턴의 8할입니다. 이게 자연스러워질 때까지는 공 안 칠 거예요."


​답답함이 명치끝까지 차올랐다. 머리로는 이해가 가면서도 몸은 거부했다. 내가 원한 건 저런 시원한 타구음이었지, 해부학 시간 같은 손목 관절 수업이 아니었다.

겨우 10분 남짓한 레슨 시간은 셔틀콕 깃털 하나 구경하지 못한 채, "그립 풀지 마세요", "손목 더 유연하게", "어깨 힘 빼세요"라는 잔소리와 나의 어색한 헛손질로만 채워졌다.


​"자, 오늘은 여기까지. 거울 보면서 손목 연습 많이 해오세요."


​레슨이 끝났다. 땀은 한 방울도 안 났는데, 머릿속은 복잡해서 쥐가 날 지경이었다. 배구화를 신고 와서 핀잔을 듣고, 라켓 한번 시원하게 휘둘러보지도 못한 채 허공만 가르다 끝난 첫 레슨.
​체육관을 나오며 빈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코치님이 잡아주신 대로 그립을 쥐어본다. 여전히 어색하고 불편하다. 기술을 배우고 싶다는 열정은 굴뚝같은데, 사소한 잡기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현실이 막막하기만 하다.


셔틀콕을 치러 가서 공은 구경도 못 하고 온 날.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주머니에 손을 넣고 괜히 손목만 까딱거려 본다. 화려한 기술은커녕, 나는 아직 배드민턴이라는 세계의 현관문 손잡이조차 제대로 돌리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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