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드민턴 코트 밖, 보이지 않는 '클럽의 얼굴'이라는 무게
배드민턴은 혼자서 할 수 없는 운동이다.
특히 동호인 대회는 대부분 복식 경기로 치러지기에 마음 맞는 '파트너'를 찾는 것이 급선무다.
하지만 우리 클럽에는 나와 같은 나이 그룹, 같은 급수의 파트너가 단 한 명도 없었다. 결국 나는 대회를 위해 다른 클럽의 언니와 손을 잡기로 했고, 호흡을 맞춰보기 위해 언니네 클럽에 '게스트'로 방문하게 되었다.
처음 가보는 다른 클럽의 체육관. 낯선 공기 속에 어색하게 서 있던 나는 우리 클럽에서 게스트를 맞이하던 풍경을 떠올렸다.
사실 우리 클럽은 게스트가 와도 유별나게 굴지 않았다. 조용히 와서 게임을 치고 가면 그만이었다. 나는 그게 이 바닥의 '쿨한' 방식인 줄 알았다.
운동복 차림의 동년배로 보이는 분에게 다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안녕하세요, 혹시 게스트비는 어디로 내면 될까요?"
안내받은 계좌로 입금을 마치자마자, 나는 숙제를 끝낸 기분으로 코트에 들어섰다. 언니와 셔틀콕을 주고받으며 땀을 흘렸고, 낯선 환경에서도 무사히 게임을 즐겼다는 만족감을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사건은 다음 날, 우리 클럽 월례회에서 터졌다. 왁자지껄한 분위기 속에 마이크를 잡은 회장님의 훈화 말씀이 예사롭지 않았다.
"여러분, 다른 클럽에 놀러 가서는 본인이 어느 클럽 소속인지 정확히 밝히셔야 합니다. 어른들께 일일이 인사드리고 경기에 임해주세요. 게스트로 나가는 순간, 여러분은 개인의 몸이 아니라 우리 클럽의 얼굴이 되는 겁니다!"
그 순간, 체육관 전체가 나를 향해 조명을 비추는 것 같았다. '이거 내 이야기구나.' 뒤통수가 화끈거렸다.
나는 그저 운동하러 간 것이었고, 정당하게 비용(게스트비)을 지불했으니 할 도리를 다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배드민턴의 세계는 그보다 훨씬 끈적하고 엄격한 예법의 세계였다.
그곳에서 나는 그저 '배드민턴 치는 사람'이 아니라, 우리 클럽을 대표하는 외교관이어야 했던 것이다. 입장료만 낸다고 끝나는 영화관이 아니라, 동네 어른들이 모여 있는 사랑방에 들어가는 마음가짐이 필요했다는 사실을 나는 몰랐다.
"A 클럽에서 온 누구입니다"라는 자기소개와 정중한 눈인사가 라켓을 휘두르는 법보다 먼저였어야 했다.
'입금 완료' 메시지 한 줄로 내 할 도리를 다했다고 믿었던 나의 당당함이 순식간에 민망함으로 바뀌었다. 배드민턴은 셔틀콕만 네트 너머로 잘 넘기면 되는 줄 알았는데, 사람과 사람 사이의 보이지 않는 선을 넘는 법은 훨씬 더 정교하고 까다로웠다.
배드민턴의 세계는 참 어렵다. 라켓을 잡는 그립법도 배워야 하고, 서브 라인 지키는 법도 배워야 하지만, 무엇보다 내가 속한 공동체의 이름을 등에 업고 걷는 법부터 다시 배워야 할 것 같다. 이제는 다른 클럽에 가기 전, 라켓 가방을 챙기며 스스로 질문을 던지게 된다.
'오늘 나는 우리 클럽의 얼굴로 당당하게 인사할 준비가 되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