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절의 기술과 3개월 만에 걸려온 민망한 전화
배드민턴 대회는 일종의 '소개팅'이다. 마음 맞는 파트너를 찾는 과정은 설레기도 하지만, 때로는 냉정한 거절의 쓴잔을 마셔야 하는 비즈니스 현장 같기도 하다.
나보다 구력이 1년 가까이 앞선 언니와 파트너를 맺기 위해 타 클럽 게스트 방문까지 자처했을 때, 나의 마음은 사뭇 진지했다.
하지만 코트 위에서 마주한 현실은 차가웠다. 이제 갓 한 달이 된 나의 구력은 언니에게 '불안 요소'였을 것이다. 함께 합을 맞춰보는 내내 언니의 표정은 탐탁지 않아 보였고, 셔틀콕은 박자를 놓친 악보처럼 코트 위를 겉돌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 역시 재미가 없었다. 곁에서 지켜보던 친구는 "네가 훨씬 더 잘 치는 것 같은데?"라며 나를 달랬지만, 구력이라는 계급장 앞에서는 그 위로조차 무력했다.
결국, 언니에게서 정중한 거절의 메시지가 왔다.
"대회 날이 마침 근무날이기도 하고, 그날이 남편 생일이라 도저히 안 될 것 같아. 다음에 기회 되면 꼭 같이하자!"
그럴 수 있지. 직장도 가정도 배드민턴보다 소중한 법이니까. 나는 언니의 '완벽한 핑계'를 믿었고, 아쉬움을 뒤로한 채 대회를 포기했다.
드디어 대회 당일. 비록 경기에 출전하지는 못했지만, 우리 클럽 사람들을 응원하기 위해 체육관을 찾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는 믿기 힘든 광경을 목격했다.
분명 근무 중이거나 남편의 생일상을 차리고 있어야 할 언니가, 화려한 유니폼을 차려입고 다른 파트너와 함께 코트 위에 서 있는 것이 아닌가.
"하하, 남편 생일은 맞긴 하나."
나라는 파트너가 얼마나 모자랐으면 저런 빤히 보이는 거짓말까지 동원했을까 싶어 마음이 복잡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날이 남편 생일인 것은 맞았다. 다만, 언니는 남편 생일의 소중함보다 '승률 높은 파트너와의 출전'을 택했을 뿐이다.
나에게 했던 거절은 반은 진실이고 반은 핑계였던 셈이다. "남편 생일이라 안 된다"는 말 뒤에는 "너랑 나가기엔 내 남편 생일 포기할 만큼의 가치가 없다"는 냉정한 계산이 깔려 있었음을 깨달았다.
실소조차 나오지 않는 상황. 나라는 파트너가 얼마나 모자랐으면 저런 빤히 보이는 선택을 했을까 싶어 마음이 복잡했다. 셔틀콕처럼 내 마음을 때리는 서운함과 자괴감 속에서, 배드민턴의 세계는 단순히 공을 주고받는 곳이 아니라 실력이라는 잣대로 사람을 선택하고 배제하는 냉혹한 정글임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렇게 나는 언니의 기억 속에서 잊힌 존재가 된 줄 알았다. 그런데 사람 일은 정말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법인가 보다.
3개월 쯤이 지난 어느 날, 내 휴대폰 화면에 그 언니의 이름이 떴다.
"슬씨, 잘 지내요? 저희 이번 대회에 파트너로 같이 나갈 수 있을까요?"
순간 내 눈을 의심했다. 3개월 전 그 민망한 목격담은 이미 잊었는지, 아니면 그사이 나의 실력이 일취월장했다는 소문이라도 들었는지 언니의 제안은 당당하고도 매끄러웠다.
그 언니에게 나는 3개월 전에는 '남편 생일에 밀리는 카드'였지만, 지금은 '다시 맞춰보고 싶은 카드'가 된 모양이었다.
복잡했던 마음이 묘하게 차분해졌다. 서운함도, 자괴감도 사라지고 대신 배드민턴 판의 생리를 이해해버린 초연함이 찾아왔다. 어제의 외면이 오늘의 환영으로 바뀌는 곳. 파트너 선택의 기준은 인격이 아니라 결국 '승리의 가능성'이었던 것이다.
나는 그 전화를 받으며 생각했다.
이번엔 내가 선택할 차례라고. 이 비즈니스 관계를 수락할지, 아니면 나 역시 '남편 생일'이라는 근사한 핑계를 돌려줄지 말이다.
배드민턴은 참 어렵다. 네트 너머의 적보다 옆자리 파트너의 마음을 읽는 것이 훨씬 더 고난도 기술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