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드민턴 부부들의 평화 유지를 위한 각자도생법
배드민턴 클럽에 나가다 보면 가장 흔하게, 그러면서도 가장 흥미롭게 구경하게 되는 것이 바로 '부부 회원'들이다. 그런데 이 부부들을 가만히 관찰하다 보면, 그들의 구력만큼이나 선명하게 갈리는 연차별 풍경이 무척이나 흥미롭다.
먼저 코트에 들어서는 모습부터 다르다. 이제 막 운동을 시작한 젊은 부부들은 보는 이들의 눈길을 사로잡을 만큼 달콤하다. 남편은 아내의 무거운 라켓 가방을 대신 메고, 아내는 남편의 옷매무새를 다듬어주며 들어온다. 코트 위에서도 그들은 늘 한 쌍이다. 나란히 서서 다정하게 몸을 풀고, 실수로 콕을 놓쳐도 "아유, 아까웠어!"라며 격려 섞인 난타를 주고받는다. 그들에게 배드민턴은 사랑을 확인하는 또 다른 데이트 코스처럼 보인다.
하지만 시선을 돌려 장성한 아이를 둔, 소위 '베테랑 부부' 선배님들을 보면 풍경은 180도 달라진다. 그들은 각자의 가방을 각자의 어깨에 짊어지고 비즈니스 관계처럼 무심하게 입장한다.
체육관에 파트너 없는 이가 단 한 명이라도 있다면, 굳이 부부가 같이 몸을 풀거나 게임을 섞는 법이 없다. 남편은 저쪽 코트에서, 아내는 이쪽 코트에서 각자의 파트너와 땀을 흘린다.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어느 날 한 언니에게 슬쩍 물어보았다. "언니, 형님이랑 같이 게임 안 하세요? 같이 하면 든든할 것 같은데." 돌아온 대답은 명쾌하다 못해 처절했다.
"원만한 부부 관계를 유지하려고 각자 치는 거야. 같이 치면 이혼 서류 도장 찍을 일밖에 없거든."
언니의 말에 귀를 기울여보니 이유가 있었다. 보통 남편들이 구력이 높고 급수가 위인 경우가 많은데, 코트 위에만 서면 그 '급수'가 '계급'으로 변한다는 것이다. 평소엔 다정한 남편일지 몰라도, 셔틀콕이 날아다니는 찰나의 순간에는 가차 없는 호랑이 선생님이 된다.
"미리 준비하고 있어야지!"
"그걸 놓으면 어떡해? 멀리 보내라니까!"
옆에서 지켜보면 틀린 말은 하나도 없다. 하지만 맞는 말도 코트 위에서는 비수가 되어 꽂힌다.
형님들은 '훈수'라 부르지만, 언니들에게 그것은 '잔소리'이자 '서운함의 퇴적층'이 된다. 맞는 말을 해도 서운한 것이 부부 사이인데, 남들 다 보는 코트 위에서 지적을 당하고 나면 집에 가는 차 안의 공기는 에어컨을 틀지 않아도 영하권으로 떨어진다.
결국 그들이 찾은 지혜가 바로 '따로 또 같이'다. 같은 취미를 공유하되, 코트 위에서는 철저히 타인이 되는 것. 서로의 플레이에 간섭하지 않고 각자의 스트레스를 푸는 것이야말로, 배드민턴이라는 격렬한 운동 속에서 가정을 지켜내는 그들만의 평화 유지법이었던 셈이다.
배드민턴 코트는 참 정직한 작은 세상이다. 셔틀콕의 궤적만큼이나 부부의 세월도 숨길 수 없이 드러난다. 다정하게 손을 맞잡고 들어오던 젊은 부부들도 언젠가는 각자의 가방을 메고 각자의 코트로 흩어지게 될까?
서로의 부족함을 지적하기보다, 각자의 영역을 존중하며 멀찍이 떨어져 땀을 흘리는 선배님들의 뒷모습을 보며 깨닫는다. 때로는 적당한 거리두기가 가장 깊은 사랑의 표현일 수도 있다는 것을.
오늘도 코트 위에는 수많은 부부의 열정과, 그보다 더 뜨거운 '침묵의 평화'가 공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