덧셈을 몰라서가 아니라, 살아남느라 바빠서입니다
배드민턴 코트 위에는 헌법보다 무서운 보이지 않는 룰이 하나 있다.
바로 초심자가 점수를 외친다는 것.
그리하여, 점수 계산과 복창은 초심자중의 초심자인 나의 몫이다. 이 잔인한 규칙은 나 같은 배린이에게 스매시를 받아내는 일보다 더 가혹한 형벌로 다가온다.
랠리가 끝나고 셔틀콕을 주우러 가는 그 짧은 순간, 등 뒤에서 파트너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몇 대 몇 이지?"
순간 내 머릿속은 하얗게 센 백지가 된다.
방금 우리가 점수를 땄는지 잃었는지조차 까마득하다. 나는 허공을 응시하며 "어... 12 대 8인가요?"라며 더듬거리지만, 돌아오는 건 건너편의 날카로운 정정이다.
"15 대 9예요. 우리가 15."
이건 내 지능의 문제가 아니다.
전시 상황에서의 생존 본능 문제다.
날아오는 셔틀콕은 포탄이고, 파트너의 눈빛은 엄한 지휘관의 명령이다. 이 아수라장 속에서 내 뇌는 오로지 생존 하나만을 위해 돌아가고 있다.
호랑이에게 쫓기는 사람에게 구구단을 외자고 하면 외울 수 있을까? 셔틀콕이 바닥에 떨어지는 순간, '살았다' 혹은 '죽었다'라는 감정이 뇌를 장악하기에 숫자 따위가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코미디 같은 실수도 일상이다. 분명 우리가 이겨서 내가 계속 서브를 넣어야 하는 상황인데도, 점수를 잊은 채 당당하게 상대방에게 셔틀콕을 넘겨준 적도 다반사다.
"우리 서브에요!"라는 파트너의 외침에 "아, 맞다!" 하며 뻘쭘하게 공을 다시 받아올 때의 그 민망함이란.
하지만 진짜 정점은 따로 있다. 서브권이 바뀐 줄 알고 상대가 돌려준 셔틀콕을, 나는 날카로운 서브가 날아온 줄 알고 온 힘을 다해 휘둘러 '스매시'로 응수해 버린 것이다.
"슬님, 공 넘겨드린 거잖아요..."
상대편의 어이없는 웃음과 우리 팀 파트너의 깊은 한숨이 코트를 메운다. 나는 분명 '방어 기제'가 작동한 것뿐인데, 졸지에 예의도 모르고 점수도 모르는 '공격적인 배린이'가 되어버린다.
점수 하나 모르는 죄로 게임의 흐름을 툭툭 끊어먹을 때마다, 내 라켓은 점점 더 무거워진다.
이쯤 되면 점수 계산은 일종의 심리적 여유의 척도가 된다. 상대의 빈틈을 노리며 다음 공격을 구상할 여유가 있는 자만이 점수를 또박또박 외칠 권력을 쥐는 법이다.
나는 여전히 날아오는 공을 건드리는 것조차 벅차서, 누구에게 1점을 더해 줄 것인지 생각할 겨를이 없다.
그저 전광판이라도 있었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셔틀콕을 주울 때마다 옆 코트의 스코어를 훔쳐 들으며 우리 점수를 추측해보는 비굴한 노력만 더해갈 뿐이다.
반면, 고수 선배님들은 미스터리하다. 온갖 농담을 다 하면서도 점수는 귀신같이 기억한다. 심지어 내가 틀리게 말하면 "어허, 점수 조작하면 안돼!"라며 작은 호통까지 치신다.
그분들에게 배드민턴은 여유로운 '산책'이지만, 나에게는 맹수와 마주한 '밀림'이기에 뇌를 쓰는 영역 자체가 다른 걸까.
오늘도 나는 엉뚱한 점수를 외치고 민망한 웃음을 짓는다. 파트너가 한숨 대신 나지막히 점수를 알려준다.
"괜찮아, 점수는 내가 셀게. 자기는 넘기기만 해."
그 말이 얼마나 든든하고 고마운지. 나는 속으로 다짐한다. 언젠가 나도 이 전쟁터가 익숙해져서, 여유롭게 농담하며 정확하게 점수를 외치는 '개념 찬 막내'가 되기를.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지금 내 머릿속엔 오직 하나뿐이다.
'제발 서브만이라도 네트를 넘어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