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호하게 그어지는 선 위에서 배우는 생존의 기술
배드민턴 코트 위에서 가장 짧고도 먼 거리를 꼽으라면, 단연 서브 라인까지의 거리일 것이다.
라켓 그립을 고쳐 잡으며 비장하게 코트에 들어섰지만, 내 손을 떠난 셔틀콕은 야속하게도 그 짧은 선조차 넘지 못한 채 툭,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분명 머릿속으로는 수십 번도 더 넘겼던 그 하얀 선이 실전에서는 왜 이토록 아득한 절벽처럼 느껴지는지 모를 일이었다.
게임이 시작되면 코트는 더 이상 내가 알던 친목의 장소가 아니었다. 클럽의 선배님들은 결코 셔틀콕을 살살 받아주지 않았다.
초심자라는 딱지를 이마에 붙이고 서 있는 나를 배려해줄 법도 하건만, 그들의 라켓은 자비가 없었다. 내가 간신히 넘긴 셔틀콕은 어김없이 날카로운 공격이 되어 돌아왔고, 상대 팀의 점수판은 시계 초침보다 빠르게 올라갔다.
특히 서브를 넣을 때의 정적은 공포에 가까웠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겨우 콕을 밀어 넣으면, 기다렸다는 듯 선배님들의 단호한 판정이 날아왔다.
"아웃입니다."
라인 근처에 아슬아슬하게 떨어진 것도 아니었다. 셔틀콕은 선배님의 무심한 목소리와 함께 바닥으로 떨어졌다.
"약간 모자라요."
짧게 던져지는 그 한마디는 비수처럼 꽂혔다. 그분들은 굳이 라켓을 휘두르지도 않았다. 그저 셔틀콕이 바닥에 닿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며, 그 짧은 문장으로 나의 미숙함을 확인시켜 줄 뿐이었다.
미안함은 고스란히 곁에 선 파트너의 몫이었다. 점수가 벌어질수록 옆에서 들려오는 파트너의 한숨 섞인 격려는 점점 힘을 잃어갔고, 힐끗 훔쳐본 그의 얼굴은 갈수록 어두워졌다.
"죄송합니다"라는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 할 때마다, 셔틀콕을 쥔 손끝은 더욱 차갑게 식어갔다.
마음 한구석에서는 못내 서운함이 고개를 들었다. '나 정말 처음인데, 조금만 더 받아주실 수도 있잖아.'라는 어린아이 같은 응석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또 다른 마음이 나를 꾸짖었다. "아웃"이라는 냉정한 선언과 "모자라"는 지적을 피해 가기 위해 애쓰는 과정에서만 내가 성장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었다.
셔틀콕을 주워주지도 않고 무심하게 가리키는 그 손가락 끝이, 어쩌면 "어서 이 세계의 기준에 맞추라"는 선배들만의 투박한 가르침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서운함은 묘한 오기로 바뀌어 갔다.
그 '선'이라는 것이 참으로 오묘했다. 서브 라인을 간신히 넘기려 조금이라도 콕을 높게 띄우면 어김없이 스매시가 날아왔고, 네트에 최대한 붙여 낮게 보내려 욕심을 내다보면 셔틀콕은 네트 줄에 걸려 넘어가지 않았다.
"아웃"이거나 "모자람". 그 극단적인 두 단어 사이의 아주 좁고 예민한 틈새를 찾는 일, 그것이 내가 마주한 첫 번째 과제였다.
땀에 젖은 앞머리를 쓸어올리며 다시 서브 라인 앞에 선다. 선배들의 눈빛은 여전히 날카롭고, 파트너의 기대 섞인 시선은 내 등에 꽂혀 있다. 배드민턴은 결국 이 선을 넘느냐 마느냐의 싸움이 아니라, 차가운 판정 앞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다시 라켓을 들어 올릴 수 있느냐의 싸움이라는 것을 깨달아간다.
호락호락하지 않은 시작이다. 하지만 "아웃"이라고 말해주는 선배들이 있기에, 나의 "모자람"을 짚어주는 이들이 있기에 내가 흘리는 이 땀방울이 진짜임을 느낀다. 오늘도 나는 서브 라인 너머의 냉정한 세계를 향해, 조금 더 단단해진 마음으로 셔틀콕을 던져 올린다.
61번째 멤버의 아침은 그렇게 무수한 '실패의 선'을 넘으며 깊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