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 라켓에 깃든 온기, "처음엔 다 그래요"
누군가에게는 가벼운 취미의 시작일지 모르지만, 아이 둘을 키우는 엄마에게 새로운 무언가를 시작한다는 건 일종의 '결단'에 가깝다. 나를 위한 시간도, 나를 위한 비용도 모두 가족이라는 우선순위 뒤로 밀려나기 마련이니까.
처음부터 수십만 원을 호가하는 새 라켓을 장만하는 건 내게 과분한 사치처럼 느껴졌다. 결국 나는 중고 거래 플랫폼을 뒤져 손때 묻은 라켓 두 자루를 준비했다. 이것이 나의 첫 번째 장비이자,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는 최소한의 티켓이었다.
재미있는 건 나의 외형이었다. 일 년 전, 크게 다쳐 수술까지 받아야 했던 무릎 때문에 나는 남들이 보기엔 꽤나 '기깔나는' 보호대를 착용하고 있었다. 여기에 배드민턴을 쳤던 지인 언니가 선물해준 큼지막한 전문 가방을 메고, 집에 있던 깨끗한 실내용 운동화까지 신고 나타나니 사람들의 시선이 묘하게 달라졌다.
훗날 들은 이야기지만, 회원들은 내가 체육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 '어디서 운동 좀 하다 온 고수가 아닐까'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 기대가 무너지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장비는 국가대표급이었을지 몰라도, 코트 위에 선 나는 그저 갈 길 잃은 어린 양에 불과했다.
정식 회원으로 등록하기 전날 밤, 나는 마치 수험생처럼 유튜브를 뒤졌다. 복식 서비스 라인, 점수 계산법, 로테이션의 기초... 머릿속으로 수천 번 셔틀콕을 주고받으며 시뮬레이션을 돌렸지만, 막상 실전의 공기는 화면 속 영상보다 훨씬 빠르고 날카로웠다.
이론은 실전의 당혹감을 이기지 못했다. 분명 왼발이 나가야 한다고 배웠는데 몸은 엉거주춤 뒤로 물러났고, 셔틀콕은 매번 라켓의 정중앙이 아닌 허공을 가르기 일쑤였다.
화려한 가방과 전문가용 보호대가 무색해질 만큼 나의 움직임은 투박하고 어설펐다. 겉모습만 보고 "한 게임 하실까요?"라며 다가왔던 선배님들의 눈빛에 당혹감이 서리는 걸 보았을 때, 나는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나의 '초보 탈출기' 중 가장 압권은 그립 사건이었다. 남들이 하듯 직접 그립을 감아보고 싶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에 휩싸였던 나는, 새로 산 오버그립의 겉비닐조차 떼지 않은 채 라켓 손잡이에 칭칭 감아버렸다.
미끄러운 비닐 위로 손이 겉도는 줄도 모르고 낑낑대고 있는 내 모습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웠을까. 보다 못한 한 회원분이 다가와 조용히 웃으며 말씀하셨다.
"이건 비닐을 벗겨야 하는 거예요. 제가 다시 감아드릴게요."
능숙한 솜씨로 그립을 새로 감아주시는 그분의 손길을 보며 나는 깊은 부끄러움과 동시에 뭉클한 감사함을 느꼈다. 비닐도 떼지 못한 초보의 실수를 타박하기보다, "처음엔 다 그래요. 그래도 라켓 잡는 폼이 좋으시네!"라며 건네주신 한마디의 칭찬. 그 사소한 격려가 무안함으로 가득 찼던 나의 마음을 금세 환하게 밝혔다.
칭찬은 고래만 춤추게 하는 것이 아니다. 셔틀콕 하나 제대로 맞추지 못해 위축되었던 한 엄마의 마음도 춤추게 한다. 비록 내 몸은 여전히 삐걱거리고, 룰은 머릿속에서 뒤엉켜버리지만, 따뜻한 환대와 격려가 있는 이 코트 위라면 조금 더 버벅거려도 괜찮겠다는 용기가 생겼다.
중고 라켓을 꽉 쥐어본다. 비닐을 벗겨내고 새로 감긴 그립의 감촉이 쫀득하게 손바닥에 감겼다.
그래, 완벽하지 않아도 좋다. 비록 겉모습만 고수일지언정, 오늘 나는 이 코트 위에서 가장 열심히 휘두르는 초심자가 되기로 마음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