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드민턴, 쉽게 칠 수 있는 거 아니었나요?

초심자라는 이름의 이방인이 마주한 견고한 성벽

by 윤슬

배드민턴. 이름만으로도 가벼운 운동이었다.


학창 시절 체육 시간, 혹은 선선한 바람이 부는 저녁 집 앞 공원에서 가족들과 주고받던 하얀 셔틀콕의 궤적. 나에게 배드민턴은 그저 언제든 가볍게 꺼내 들 수 있는 '놀이'의 영역에 머물러 있었다. 하지만 그 놀이를 '스포츠'로 격상시키기로 마음먹은 순간, 세상은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나를 맞이했다.


​시작은 정보 탐색이었다. 나름대로 인프라가 갖춰진 '시'에 살고 있다고 자부했건만, 배드민턴 동호회의 문턱은 생각보다 높고 은밀했다. 검색창에 '동네 배드민턴'을 쳐봐도 나오는 건 낡은 정보들뿐. 결국 나는 동네 맘카페의 게시글을 샅샅이 뒤지고, 당근마켓의 '동네 생활' 탭을 눌러보며 마치 보물찾기를 하듯 클럽의 흔적을 쫓았다.


​겨우 찾아낸 클럽하나. 몇번의 퇴고를 거쳐 조심스레 채팅을 보냈다.


"처음 시작해보려 하는데, 혹시 내일 새벽에 운동 가봐도 될까요?"


짧은 문장이었지만 전송 버튼을 누르기까지 수십 번을 망설였다. 잠시 후 돌아온 "네, 오세요."라는 짧은 승낙. 그제야 나는 안도하며 구석에 박혀 있던 운동복을 꺼내고 물통을 챙겼다. 그것이 거대한 성벽의 문지기를 통과한 양 가슴이 설레기 시작했다.


​다음 날 새벽, 짙은 어둠을 뚫고 도착한 체육관은 이미 열기로 가득했다. 밖은 아직 고요한데, 문 안쪽은 전혀 다른 시공간 같았다. 삑삑 소리를 내며 코트를 누비는 신발 소리와 공기를 찢는 듯한 타구음. 긴장한 눈빛으로 주변을 살피던 내게 다가온 이는 예상했던 따뜻한 환영의 인사가 아니었다.


​"게스트비 칠천원이고요, 여기 계좌로 보내주세요."


​총무님은 코트를 가리키며 "치세요" 한 마디를 건낸채 이내 본인의 게임을 위해 코트로 뛰어 들어갔다. 덩그러니 남겨진 나는 낯선 이방인이 된 기분으로 벤치 끝에 걸터앉았다. 다들 각자의 파트너와 호흡을 맞추느라 여념이 없었고, 나는 그 견고한 그들만의 리그 속에서 어떻게 고개를 내밀어야 할지 몰라 한참을 서성였다.


겨우 초심자 그룹에 섞여 라켓을 잡았을 때, 나는 깨달았다. 내가 알던 배드민턴은 이곳에 없다는 것을.


코트 위에 서는 순간부터 모든 것이 '룰'이었고 '예절'이었다. 게임 시작 전 상대와 파트너에게 건네는 목례, 복식 코트의 미로 같은 라인들, 점수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서브 위치, 그리고 서브를 넣을 때 라켓의 높이까지.


​"라켓 헤드가 허리보다 높으면 안 돼요!", "지금은 대각선에서 받으셔야죠!"


​친절과 지적 그 어딘가에 걸쳐진 조언들이 셔틀콕처럼 내 머리 위로 쏟아졌다. 머리로는 이해해도 몸은 자꾸만 학창 시절 치던 그 '엉성한 폼'을 소환해냈다. 셔틀콕은 야속하게도 라켓의 프레임을 맞고 엉뚱한 곳으로 튀었고, 나는 그때마다 "죄송합니다" 연신 외치며 허리를 숙여 공을 주워야 했다.


​고작 한 시간 남짓한 시간이었지만, 체육관을 나서는 길에 다리는 천근만근 무거워졌다. 단순히 체력의 문제는 아니었다. 내가 알던 세상을 부정당하고 새로운 질서를 배워야 한다는 압박감, 그리고 저 화려한 랠리 속에 내가 섞일 수 있을까 하는 막막함이 발끝을 무겁게 짓눌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차가운 새벽 공기를 마시며 스스로에게 물었다. '과연 내가 이걸 계속할 수 있을까?' 배드민턴은 결코 가벼운 공놀이가 아니었다. 그것은 아주 정교하게 설계된, 예의와 기술의 집약체였다. 시작조차 버거웠던 나의 첫날은 그렇게 물음표만을 남긴 채 저물어가고 있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