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지는 충분하지만 자리가 없는, 어느 초심자의 눈치 작전
세상에 배드민턴을 사랑하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았던가.
밖에서 보던 체육관은 그저 동네의 한산한 공공시설 중 하나였을 뿐인데, 그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나는 전혀 다른 밀도의 세상을 마주했다.
누구나 원하면 칠 수 있는 운동인 줄 알았건만, 내가 사는 도시의 배드민턴 클럽들은 저마다 '정원'이라는 보이지 않는 성벽을 높게 쌓아두고 있었다.
"지금은 인원이 꽉 차서 바로 가입은 어려울 수도 있어요."
사무장님의 그 말은 예상치 못한 복병이었다. 클럽 홍보물에 붙어 있던 '신입 회원 대환영'이라는 문구는 그저 상시적인 인사치레였던 것일까.
당황스러운 마음에 주변 초심자 그룹에게 슬쩍 상황을 물었다. 그러자 돌아온 대답은 더 가관이었다.
"저는 가입 승인 나기까지 3개월 대기하고 들어왔어요."
3개월이라니. 셔틀콕 한 번 제대로 맞춰보기도 전에 계절이 바뀔 판이었다.
하지만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었다. 아이 둘을 겨우 떼어놓고, 수술한 무릎에 보호대까지 감고 나온 이 귀한 새벽 시간을 대기 번호표만 쥐고 날릴 수는 없었으니까. 나는 작전을 바꿨다. 일단 '게스트'라는 신분으로 매일 얼굴을 비추기로 한 것이다. 가입은 안 됐지만, 마치 이미 식구라도 된 양 능청을 떨어야 했다.
"안녕하세요! 저 오늘도 게스트로 왔습니다."
속으로는 '언제까지 이방인 취급을 받아야 하나' 싶어 씁쓸했지만, 겉으로는 누구보다 밝게 웃으며 게스트비를 입금했다. 눈치보며 빈 코트에 들어가고, 선배님들의 경기를 열렬히 응원하며 3일을 보냈다.
진심이 닿은 것인지, 아니면 나의 끈질긴 성실함에 두 손 두 발을 다 든 것인지, 마침내 사무장님이 조용히 다가와 말씀하셨다.
"내일부터는 정식 회원으로 나오세요. 가입 안내해 드릴게요."
그토록 기다리던 소식이었다. 드디어 나도 이 견고한 성 안의 일원이 되었다는 안도감이 밀려왔다. 곧바로 초대된 단체 채팅방. 그곳의 인원수는 '61명'을 가리키고 있었다. 원래 정원이 60명이라던 클럽의 약속을 나를 위해 살짝 허물어준 셈이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다음 날 가입 신청서를 쓰러 간 자리에서 예상치 못한 대화가 귓가를 스쳤다.
"어머, 그럼 우리 클럽 이제 61명이에요?"
한 회원님이 악의 없이 던진 질문이었다. 그 옆에 있던 총무님 역시 별생각 없이 "그러게요, 진짜 많아졌네요."라고 대꾸했다. 비수처럼 날아와 꽂히는 말은 아니었지만, 61번째 멤버인 나의 가슴에는 묘한 눈칫밥으로 다가왔다.
'내가 괜히 정원을 깨고 들어와서 이 평화를 깨트린 건 아닐까' 하는 소심한 걱정이 고개를 들었다.
나는 다시 한번 너스레라는 무기를 꺼내 들었다. 어색함을 감추기 위해 평소보다 더 큰 목소리로, 하지만 최대한 겸손한 각도로 허리를 숙였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민망함을 열정으로 덮어버리려는 초심자의 처절한 생존 본능이었다.
회원이 되었으니 이제 체계적으로 운동을 배울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다.
"저, 레슨도 받고 싶은데요."
나의 당찬 포부에 돌아온 대답은 다시 한번 나를 멈춰 세웠다. "레슨도 대기자가 많아서 한 달은 기다리셔야 해요."
돈을 내겠다는데도, 가르침을 받겠다는데도 '기다림'이 필수인 세계. 배드민턴은 결코 호락호락하게 자신을 내어주지 않았다. 코트는 이미 열기로 터져 나갈 듯했고, 레슨 코트 앞에는 나보다 앞서 줄을 선 이들의 갈망이 줄지어 있었다.
무엇 하나 쉽게 되는 게 없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 까다로운 문턱이 배드민턴이라는 운동을 더욱 매력적으로 보이게 했다. 얼마나 대단한 세계길래 이토록 많은 사람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걸까.
레슨 대기 명단에 이름을 올리며, 나는 다시 한번 라켓 그립을 고쳐 쥐었다.
61번째 멤버의 일상은 이제 막, 눈치와 열정 사이 그 어딘가에서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