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나를 나답게 만드는 분명한 움직임, 형세

by NINA

띵띵 띠디딩~

5시 알람에 맞춰 눈을 뜬다.

고개를 옆으로 돌려서 창밖을 한 번 보고

으어어. 하며 일어나 곧장 방문을 연다.

뒤돌아보면 안 된다.

그 순간 잡히니까.

지독하게 포근한 침대라는 녀석이다.


미리 열어둔 거실 창문 너머로 새소리가 들려온다.

예전에는 곧장 음악을 틀곤 했는데

요즘은 저 아이들의 지저귐이 너무 좋아서

그대로 누리기로 했다.

같이 맞이하는 이 아침이 생각보다 꽤 괜찮다.


전기포트에 물을 붓고 딸깍. 전원을 켠다.


작은 원두통에서 한 스푼 꺼내

까만 그라인더에 넣고 돌린다.

드르륵, 드르륵.


집 안 가득 퍼지는 고소한 원두향.


나는 금세 행복해져서 숨을 깊게 들이마신다.


아, 이거지.


갓 내린 따뜻한 커피 한잔을 들고 책상에 앉아

글을 쓰기도 하고 책을 읽기도 하고

어젯밤 못다 한 생각을 이어가기도 한다.


그렇게 밤새 흐트러진 내 마음이

조금씩 제자리를 찾아간다.


이 시간, 내가 제일 좋아하는 아침이다.




우리는 어쩌면
하루를 버텨내기 위해


자기만의 형세를 세우며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겐 그게
출근 전 조용히 마시는 커피 한 잔일 수 있고,


누군가에겐
출근길 지하철에서 이어폰을 꽂고 듣는 익숙한 음악일 수 있다.


또 다른 누군가는
잠들기 전 꼭 켜는 무드등,
혹은 아이를 재우고 혼자 조용히 앉아 있는 10분의 여백일 수도 있다.


그 작은 일상이 흔들릴 때

우리는 쉽게 지치고
사소한 말에 예민해지고
무언가 ‘틀어졌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건 단순한 기분이 아니라
내 안의 흐름, 즉 형세가 어긋난 것이기 때문이다.


삶은 늘 전장이다.
그 전장에서 승리하는 사람은
싸우기 전에 이미 자신을 정돈해 둔 사람,

자신의 형세를 만든 사람이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나를 나답게 만드는 분명한 움직임.


그것을 이어나가는 사람이다.


물론, 아침을 아무리 나답게 채워도

하루에 얄짤없이 져버리고

너덜너덜해진 날이 이어질 때가 있다.

그럴 때면 한없이 늘어져있다가

운동화 안에 발을 구겨 넣곤 했다.


어떤 날은 가볍게,

어떤 날은 땀이 비 오듯 쏟아지도록 달렸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하얀 운동화를 신고

땅과 하이파이브하는 것처럼 한발 한발 부딪히며 나아갔다.


호흡이 점점 가빠울수록

쓸데없는 고민들이 하나 둘 떨어져 나가며

마음의 결이 또렷해졌다.


그렇게 나는 나를 정돈하곤 했다.


나를 나답게 만들어주는 움직임.

흔들리지 않게 해주는 나만의 작은 의식이다.


문득 궁금해진다.

다른 사람들의 형세는 어떨지.

우리는 모두 어떻게 스스로를 나답게 지키고 있을지.


전쟁을 잘하는 자의 승리는
지혜롭다는 명성도 없고,
용감했다는 공로도 없다.
그런 까닭에 그의 승리는 틀림이 없다.
그는 반드시 이기도록 조치해 놓았기 때문에,
이미 패배한 자에게 승리를 거두는 것이다.
손자병법(형세 편)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