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장님, 우리 애들 커피 좀 사주세요.
일이 너무 많아서 애들이 기운이 없어요
제가 사주는 것보다 더 윗사람이 사주면 힘이 날 거 같아요.”
팀원들이 지쳐 있는 걸 느껴서
격려라도 받고 힘냈으면 하는 마음에 과장님께 말을 건넸다.
그런데 과장님의 표정이 굳어졌다.
"야. 너 걔들한테 잘해주지 마."
무슨 일이 있나 싶어, 웃으며 되물었다.
"왜요, 왜요~?"
“아 몰라~ 그냥 잘해주지 마.”
그 어떤 설명도 없었지만 나는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아마... 내 이야기를 좀 했나 보다.
머, 그럴 수도 있지.'
그렇게 웃어넘겼다.
그 때 나는 그게 시작일 줄 몰랐다.
며칠 뒤,
혼자 정신없이 일하고 있는 방에 과장님이 찾아왔다.
"바쁘냐?"
돌아앉아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야. 너 검사실 옮겨야겠다."
갑작스러웠지만
옮길 수 있지 싶어서
"어디로요?"
라고 대답했다.
과장은 생각해 보겠다며 나가다가
나한테 한마디 한다.
“애들이... 힘들어서 너랑 일 못하겠다고 팀장 찾아갔다더라.”
순간,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뭔가를 말해야 할 것 같았지만 아무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일하는 부서에 새로운 장비를 들이기로 했고
내가 그 일을 맡아 진행하게 됐다.
기존에 진행하지 않던 검사였기 때문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처음부터 세세하게 만들어야 했다.
장비를 어떤 방향으로 넣을지
기구장은 어디에 짤지
응급상황에 대비한 장소를 어디로 이을지
세면대랑 기계실 위치 출입문 위치
장비 에어컨 위치 등등에 해당하는
검사실 설계에서부터
검사 처방
필요한 약물
전산동의서
검사소모품
접수
수납
전산동의서 등등
온갖 전산 프로세스을 구축 해야 했고
사용해보지 못한 장비와 검사에 대한 교육을
타 부서에 가서 몇 주간 실습생처럼 배우고 왔다.
그렇게 몇 달의 준비가 되어가며
같이 일할 직원들이 채용됐다.
앞으로 함께 할 그 어린 친구들을 마주했을 때
어찌나 반갑고 예뻤는지.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미소가 지어진다.
우리는 서툴렀지만
서로를 응원하며 검사실을 꾸려나갔다.
그렇게 일 년 정도 지나니
모두 어느 정도 업무에 익숙해졌다.
하지만 설렘이, 서툼이
익숙함으로 변하면
권태기가 찾아오듯
맘에 안 드는 것이 눈에 띄기 시작한다.
우리 팀 역시 그랬다.
쉴 새 없이 몰려드는 환자, 업무에 지쳐
"아 나 좀 도와주지."
서로를 응원하던 마음이
원망하는 마음으로 바뀌었다.
일에 푹 빠져있던 나는
우리 팀에 금이 가고 있었다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알고 있었지만
괜찮을 거야.
라며 눈을 감았는지도 모르겠다.
지치고 흔들리는 후배들의 마음에
타검사실 선배직원들의 부추김이 시작됐다.
부정적인 말들이 흘려들어갔다.
"너희 걔랑 일하니까 힘들지?
그거 이게 잘못돼서 그런 거야.
그러니까 가서 걔랑 못하겠다고 해~
참지 말고."
결국 후배들은 몇 번이나 팀장을 찾아갔다고 한다.
“니나샘이랑 일하면 너무 힘들어요.
긴장돼서 아무 말도 못 하겠어요.
함께 일하고 싶지 않아요.”
나는 내가 설계한 검사실을 나오게 되었다.
평생 있을 곳은 아니었지만,
마음을 다해 꾸려온 그 공간에서
그렇게 조용히 물러나야 한다는 사실이
마음을 참 많이 아프게 했다.
하지만 전혀 티를 낼 수 없었다.
함께 한 후배들을 팀원들을
더 불편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때 내가 그들에게 느낀 감정은
배신감이 아닌 안타까움이었다.
나는 왜 그들을 더 단단하게 세워주지 못했을까.
그렇게 쉽게 흔들린 그 연약함을
왜 더 깊이 이해하지 못했을까.
나는 신념을, 마음을.
따뜻하게, 조심스럽게 건네는 데 서툴렀다.
우리가 하는 검사.
사람의 혈관에 약을 넣는 일,
실수하면 되돌릴 수 없는 일이기에
나도 모르게 마음이 날카로워졌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그저 내 안의 마음이었다.
나의 마음이 입 밖으로 나오면
상대의 마음에 닿는다.
그것이 찌르는 칼이 될지.
따뜻하게 데우는 우유 한 잔이 될지
그건 모두 말하는 나의 태도에 달려있었다.
내가 조금 더 온화했다면
우리는 조금 더 오래
서로의 온기를 느끼며
함께 걸을 수 있지 않았을까.
안타까운 마음과 아픈 마음을 부여잡고 짐을 쌌다.
사람의 마음은 칼보다 쉽게 부러진다.
언젠가 다시 이곳에서
아니 이 사람들과 함께 팀을 꾸리게 된다면
그때는 내가 더 품어줘야지. 다짐했다.
연약한 우리의 마음이
서로의 온기에 스며들어
더 단단한 존재가 될 수 있게 말이다.
“고마웠어요.”
나는 웃으며 인사하고
조용히 그 방을 나왔다.
마음 한쪽에 오래 남을 무언가를 꼭 안은 채로.
아군의 정돈됨으로
적군의 혼란함을 기다리며
아군의 정숙함으로
적군의 소란함을 기다린다.
이것이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다.
손자병법(군쟁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