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규리는 뭐 되고 싶다 하더노~”
엄마는 새언니와 마주 앉아 하나뿐인 손녀의 교육을 걱정하고 있었다.
조카와 부둥켜안고 장난을 치던 나는,
시어머니의 질문에 새언니가 당황할까 싶어 슬쩍 말을 보탰다.
“으이구~ 지가 알아서 살 길 찾아간다~ 괜한 걱정 마라.”
그리고 고개를 돌려 조카를 꼭 안고 사랑을 속삭였다.
“이쁜 내 새끼~ 규리 사랑해애~”
“나도~ 고모 사랑해애~”
엄마의 마음도, 할머니의 마음도 모른 채
닮은 두 여자는 그렇게 철없이 놀고 있었다.
그때 엄마가 새언니에게 조용히 말하는 게 들려왔다.
“니나 고등학교 갈 때…
내가 좀 알았으면 미리 연습시켰을 건데,
그거 준비 안 해서 지가 원하는 데 못 갔다 아이가.
엄마가 애 원하는 거 있음, 미리 준비시켜 줘야 된데이.”
순간, 가슴이 먹먹해졌다.
엄마가 그 일을 아직도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구나.
나는 그때 과학고에 가고 싶었다.
시험 날, 학교 정문 앞에서
1년 먼저 입학한 선배가 스케치북을 흔들며 나를 응원했다.
“시험 잘 봐, 니나야!”
“네^^”
자신 있게 시험장에 들어갔지만,
예상 밖의 시험방식에 당황해 버렸다.
"세 문제 중 하나를 골라 풀이하고,
조금 뒤에 그것을 직접 설명하세요."
설명?
말로?
연필로 답을 쓰는 시험이 아니라고?
머릿속이 하얘졌다.
발표를 유난히 어려워하던 나는 당황해 발을 동동 굴렀다.
문제 푸는 시간이 끝나고 내 순서가 되어 면접실에 들어갔다.
여러 명의 면접관 앞에서 홀로 앉아 문제를 설명해야 했다.
당황한 나를 향해 면접관들이 미소를 지어줬지만,
나는 무슨 말을 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돌아오는 차 안,
고개를 푹 숙이고 조용히 울었던 기억만 또렷하다.
엄마는 그 일이 못내 마음에 걸렸나 보다.
몇십 년이 지난 지금
며느리에게는 그런 후회를 물려주고 싶지 않아서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는 걸 보면.
"아이고~그거 다 내가 못해서 그런 건데
머 그런 쓸데없는 말을 하노~"
하며 웃으며 넘기려 했지만
내 안의 나는 엄마의 아픔에 걸려 자꾸 넘어졌다.
엄마는 그때, 그걸 몰라서 미안했을 것이다.
그냥 “잘해라” 하고 등을 떠밀기보다
어떤 상황이 닥칠지,
그때 나는 얼마나 당황할 수 있는지를
미리 조금이라도 알려줬어야 했다는 마음.
단지 응원만으로는 부족했음을,
미처 챙기지 못한 그 준비들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아 있었던 거다.
병원에서 수많은 후배들을 가르치며
나도 끌어준다는 것에 대해 조금씩 배워갔다.
처음엔 나도 많은 실수를 했다.
완벽주의적인 성향으로
일의 순서를 정해두고,
하나라도 어기면 일일이 멈춰 세웠다.
그렇게 하면 그들의 실수만 도드라져 보였다.
어느 날
내가 염려했던 부분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잘 넘기는 후배들을 보며 깨달았다.
아… 내 방식만이 답이 아니었구나.
나는 그동안 나의 무기를
그들의 손에 억지로 쥐어주려 했던 거다.
그들에게는
이미 자기 손에 맞는 무기가 있었는데.
그 무기가
내 것보다 무거웠을까,
혹은 너무 가벼워서 불안했을까.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엄마처럼 마냥 밀어주는 것도
나처럼 마냥 잡아당기고 멈춰 세우는 것도
답이 아니었다.
끌어주는 사람이 해야 할 일은
전장을 미리 그려 보여주는 것.
이 일이 닥칠 거예요,
그다음에는 이런 일이 올 수 있어요,
그렇게 흐름을 보여주면
준비할 지점은 스스로 찾아진다.
그리고 그들이 가진 무기를
꺼내 쥘 수 있게 기다려주는 것.
진짜 끌어준다는 건
바로 그런 것이었다.
엄마의 후회,
나의 실수,
그 작은 흔들림들이 쌓였다.
그리고 그 덕에 나는 조금 더 탄탄해졌다.
“오사(五事)를 비교하고 계산하라.”
손자병법
전쟁의 유리함과 불리함을 가르는 건
진형, 시기, 리더의 기질, 규율, 천시와 지리.
그 수많은 요소들을 짚고 대비하는 것.
그게 승리의 조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