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밤 응급실.
오늘은 좀 조용히 넘어가려나 하는 순간.
드렁큰 환자가 접수된다.
술 마신 사람이라는 뜻이다.
호명을 하자
중년 남성이 인상을 찌푸린 채 들어왔다.
싸움을 했는지 얼굴과 손에 핏자국이 있다.
골절이 의심돼 조심스럽게 자세를 만든다.
살짝만 움직여도 통증이 심한 듯, 표정이 일그러진다.
그리고 곧
욕설이 쏟아진다.
"씨 X 년이 니가 먼데.."
끝없이 이어지는 거친 말투가 검사실을 가득 채웠다.
흥분한 몸짓에 상처가 벌어지고,
피가 솟아 올라 장비와 옷, 내 팔까지 붉게 물들었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손이 떨렸다.
하지만 해야 할 일을 멈출 수 없었다.
스스로를 다독이며 검사를 끝냈다.
다행히 뼈에는 이상이 없었다.
"휴.."
조용히 안도의 한숨이 새어 나왔다.
시간이 흘렀다.
바쁘고 정신없는 틈 사이
그 사람의 얼굴이 희미해질 무렵
검사실 문을 조심스레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자, 그가 조용히 서 있었다.
처치를 마친 얼굴은 말끔했고
표정은 한결 잠잠해보였다.
"저..
아까는 죄송했습니다."
짧은 한마디.
그 말이 내 가슴을 툭, 건드렸다.
조금 전까지의 욕설, 분노, 피, 긴장감.
그 모든 것을 껴안고 있던 마음에
갑자기 무언가 스며들었다.
울컥 치밀어 오른 감정을 꾹 눌렀다.
눈물이 맺혔지만,
다시 찾아와 준 고마움에 그저 미소 지었다.
"괜찮아요~"
그는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돌아섰다.
그 뒷모습을 오래도록 바라봤다.
그래.
여긴 병원이다.
아픈 몸만이 아니라
뒤엉킨 감정과 상처
말하지 못하는 마음까지 함께 오는 곳이다.
나는 아직도 부족하고
때때로 흔들린다.
그래도
그런 마음들을 받아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억센 말 뒤에 숨어있던
그 사람의 '죄송합니다'를
나는 아직까지 잊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