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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밤들이 쌓여서 나를 나누기로 결심했다.

by NINA

새벽 2시.

수술 스케줄이 잡혔다.


1시쯤 병원에 도착해 장비를 끌고 수술실로 향했다.

늦은 밤, 조용한 복도를 따라 걷는다.

수술실 앞 대기실에는 웅크린 채 기다리는 보호자들이 있다.

그들을 지나 직원용 탈의실에 들어간다.

머리카락이 보이지 않게 수술모를 쓰고,

마스크를 단단히 고정하고,

신발 위로 멸균 커버를 씌운다.


수술방으로 들어선다.

수술대 위, 열린 복부 너머로 장기가 훤히 드러나 있다.

간이식 수술이다.


우리가 맡은 일은,

이식된 간의 혈관이 잘 연결됐는지 초음파로 확인하는 것.

선생님이 혈관 위에 프로브를 댄다.

나는 장비를 조작하며 모니터를 본다.


모두가 숨을 죽인 채 화면을 응시한다.

잠깐의 정적.

이윽고 정상적인 파형이 그려진다.

혈관이 잘 연결됐다.


이내 수술실 분위기가 조금 풀어진다.


간이식 수술은 늘 새벽에 진행됐다.

처음엔 이상하게 생각했다.

왜 이렇게 늦은 시간일까?


“카데바가 늦게 나와서 그래.”

같이 일하던 선생님이 말했다.


그땐 몰랐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알게 되었다.

하루라도 더,

단 몇 시간이라도 더 함께하고 싶은

가족들의 간절함이 담긴 시간이라는 걸.


카데바.

장기 기증자를 의미한다.

대부분 뇌사자들이다.


이식 수술을 받은 환자들은 중환자실에서 다시 만나곤 했다.

수술 경과를 관찰하기 위해

우리는 주기적으로 그곳을 방문해서 검사를 했다.


그들은 처음엔 의식 없이 누워 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면 천천히 눈을 뜨고

내 시선을 마주하기 시작한다.

그러다 또 며칠이 지나면

스스로 상체를 일으켜 앉는다.


그 순간을 마주할 때면

나는 말없이 그들을 바라보다가

어느새 마음속으로 "감사합니다"라고 중얼거리고 있었다.


물론 모두가 그렇게 회복되진 않는다.

끝내 일반 병실로 가지 못하고

빈 침대만 남긴 채 떠나는 이들도 있다.

그 곁을 지날 때면,

괜히 장비를 오래 닦으며 마음을 다잡아야 했던 날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되뇐다.

살아 있다는 건, 정말 기적 같은 일이라는 걸.


수술실 앞 대기실에 앉아 있던 보호자들의 마음이 떠오른다.

나 역시 엄마의 수술을 기다리며

두 손을 모았던 적이 있다.

“잘 돌아오게 해주세요.”

짧고 단순한 기도가 얼마나 간절한 마음인지,

이제는 안다.


그런 밤들이 쌓이며,

나도 내 마음을 조금씩 들여다보게 되었다.

살아 있는 동안은 환자를 돕고,

내가 떠난 후에는 누군가에게 삶을 나눠줄 수 있기를.


장기기증 신청서를 썼다.

누군가의 마지막이

또 다른 누군가의 시작이 되는 장면을

이토록 가까이서 지켜봤기 때문이다.


나는 병원에서 수많은 마음을 만난다.

살고 싶은 마음.

놓고 싶지 않은 마음.

그 마음을 끝내 보내야 하는 가족들의 눈빛.

그리고 다시 숨을 쉬기 시작하는 생명.


그 모든 순간들이

내 안의 무언가를 조금씩 흔들고, 움직이고,

다시 자리 잡게 만들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어디선가 또 다른 심장이,

다시 뛰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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