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조용한 차 안에서 신호등을 바라보다
창문을 두드리는 빗방울 소리에
문득 오래전 그날이 떠올랐다.
한없이 부끄럽고
아직도 손이 오그라드는 기억 하나.
그때의 실수를 씹고 또 씹다 참지 못하고
"니나야! 니나야아!!"
라고 소리 질렀다.
왜 그랬어. 못난 짓 그만해.라는 뜻의 외침.
그건 나만의 회초리였다.
나는 가끔 이렇게 나에게 회초리를 든다.
돌이킬 수 없는 예전의 그날들을 떠올리며 말이다.
인턴을 갓 벗어났을 때니까 25살? 정도였던 거 같다.
안 그래도 작은 몸집에 앳된 얼굴을 가졌던 나는
환자들의 신뢰를 받고 싶어서 꽤나 애를 썼다.
실습생들을 교육하고 있는데
나를 학생취급하는 환자들을 만나면
그렇게 자존심이 상했다.
그런 일을 겪고 나면
목소리를 더 낮게,
표정을 더 굳게
'나는 선생님이다. 학생이 아니다.'
그 마음 하나로 온몸에 힘을 잔뜩 주고 다녔었다.
호칭에도 민감했다.
당시 우리처럼 의료면허를 딴 직원들은 서로 선생님이라고 불렀고
원무과, 접수처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은 -씨라고 불렀다.
(요즘 그렇지 않다. 10여 년 전, 한참 꼰~~~~~대 시절의 병원분위기였다.
지금은 모든 직원을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그때 나는 호칭을 법이라도 되는 양 꼭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선생님이니까 선생님이라고 불러야 해.
그렇지 않으면 예의가 없는 거야!
내가 불편한 티를 내는 게 당연해! "
어느 날 같이 손을 맞추는 레지던트 선생님을 엘리베이터에서 만났다.
나는 인턴 후배와, 그 샘도 다른 샘과 함께 있었다.
그는 친해지고 싶은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니나씨는 어디 가세요?”
보통 이런 질문을 받으면,
“아 저는요~” 하며 웃으며 답했을 텐데.
그때의 나는 고슴도치처럼 잔뜩 날을 세우며
기가 찬다는 말투로
그 샘 얼굴조차 보지 않은 채 말했다.
“하, 저 ~~ 씨라는 말 처음 들어요!”라고.
순간 차가워진 엘리베이터 공기.
아무도 말을 잇지 않았다.
그리고 땡! 하고 열리는 엘리베이터 문.
인사도 없이 모두 각자의 길을 걸어 나갔다.
그 후 당연히 그 샘과는 전혀 친해지지 못했다.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부끄럽다.
그 선생님은 그 엘리베이터 안에서
동료직원들 앞에서
얼마나 민망했을까.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나를 얼마나 이상하게 봤을까.
가진 것이 없을수록 사람은 더 힘을 주게 되는 거 같다.
"어흥! 나한테 오지 마!!"
혹은
"어때? 나 좀 근사해 보이지?"
이런 식이다.
하지만 진짜 강한 사람은
굳이 그렇게 -척하며 꾸미지 않는다.
누구보다 위에 있으려 들지도 않는다.
너무 내세울 게 없었던 나는
바람 불면 휙 날아가는 그 면허증 하나를 내세우며
온갖 못난 짓을 다했었다.
시간이 한참 지나
이런 환자도 보고, 저런 환자도 보고
이런 사고도 치고, 저런 보살핌도 받아보고 나니
조금씩 알게 되었다.
좀 못해 보여도 괜찮았다.
못하는 게 당연한 나이였다.
그리고 그런 나를 품어주라고
나보다 앞서 걸어준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데 나는 왜 혼자 그렇게 힘을 잔뜩 주고 있었을까.
지금의 나는
그때보다 아주 조금은 여유로워졌다.
사실 어제도, 오늘도 나를 보고 이렇게 부르는 환자들을 만났다.
"언니!"
"아가씨!"
이제는 그러려니 한다.
호칭이 나를 흔들 이유는 없었다.
나를 부르는 이름이 무엇이 되었건
나의 본질이 바뀌지 않으니까.
사실 호칭보다 중요한 것은
나에게 어떤 마음으로 말을 건네느냐였다.
그리고
그 말을 꺼내는데 혹시 용기가 필요했는지
그것까지 헤아릴 수 있으면 좋겠다.
만약에 내가 다시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 샘을 다시 마주한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그날, 참 미안했어요.
먼저 다가와 주셔서 고마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