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부신 햇살이 쏟아졌다.
한낮의 열기가 온몸을 찔러댔다.
도저히 이겨낼 수 없을 것 같은 더위 속에서
나도 뿡이도 슬며시 온몸에 힘을 빼버렸다.
그렇게 우리는 뜨거운 공기 속을 천천히 걸었다.
잠깐 머무는 나무 그늘이 너무도 고마운 날씨였다.
벌써 12살이 넘어가는 노령견 뿡이.
더위에 혀를 늘어뜨린 채 헥헥거리면서도
입꼬리를 잔뜩 올리고 살랑살랑 걷는다.
어쩜 저리 신이 났을까.
저 아이의 모습이 오늘따라 오래 마음에 남는다.
며칠 째 몸이 좋지 않았다.
열도 나고, 기운도 없어 산책도 미뤄뒀다.
진료를 보고 약을 먹고 나니 조금 나아진 것 같았다.
간만에 정신이 들어 방 안을 둘러보던 내 시선이 뿡이에게 멈췄다.
뭔가.. 이상했다.
왼쪽 앞다리를 앞으로 쭉 뻗은 채
몸을 비틀거리며 움직이고 있었다.
마치 마비된 것처럼.
한 걸음 한 걸음이 삐걱거렸다.
타닥. 타닥.
숨이 턱 막혔다.
"뿡아!"
뿡이가 고개를 들다.
흐릿해진 눈동자로 나를 바라본다.
'엄마..'
덜컥 겁이 났다.
곧장 뿡이를 품에 안았다.
가슴 가까이에 꼭 껴안았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곳이 제일 따뜻할 것 같았다.
"괜찮아, 괜찮아.."
떨리는 두 손으로 굳은 다리를 쉬지 않고 주물렀다.
그 와중에도 뿡이는 내 얼굴을 핥았다.
놀란 나를 달래려는 듯이.
얼마나 지났을까
굳은 다리가 조금씩 구부러지기 시작했다.
희미했던 눈빛도 다시 생기를 찾았다.
바닥에 조심스레 내려놓으니
네 발로 중심을 잡고 한걸음, 한걸음을 내딛는다.
조금 비틀거리다가 이내 힘이 들어간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몸이 아프다며 날씨가 덥다며
산책을 미뤘던 내가 미안해졌다.
뿡이가 걸을 수 있을 때
나는 함께 걸어야 했다.
단 한 걸음이라도 더.
산책끈을 집어 들었다.
뿡이는 그 소리에 반가워 깡충깡충 뛰어오른다.
"어어, 안돼! 지금은 뛰지 마.."
다시 품에 안아 가슴끈을 채어준다.
그렇게 나선 산책길.
앞서 걷는 뿡이의 발걸음 하나하나가
내 마음에 콩콩 박힌다.
나는 조용히 불러본다.
"뿡아~~"
뒤돌아보던 뿡이가 총총총 내게 달려온다.
나는 쪼그려 앉아
뿡이의 머리와 등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더 만져달라는 듯
작은 몸이 내쪽으로 기대어온다.
뿡아..
너의 따뜻한 몸이
내 무릎사이로 파고들 때마다
내 마음도 말랑말랑 해지는 거 너는 모르지.
나는 뿡이의 작은 몸에 얼굴을 파묻은 채
쉴 새 없이 뽀뽀를 퍼부었다.
이렇게 신나게 뛰는데
혹시라도 언젠가 다시 걷지 못하게 되면 어떡하지.
내가 이 아이에게 무얼 해줄 수 있을까.
그 작은 콩알 같은 눈망울을
무얼로 더 기쁘게 해 줄 수 있을까.
...
그래.
지금만 생각하자.
오늘 너가 걸을 수 있을 때
단 한 걸음이라도 더 같이 걷자.
우리가 누릴 수 있는 행복을
이런저런 핑계로 미루지 말자.
내일은 분명, 오늘과는 다를 테니까.
지금 이 순간
나와 함께 걷고, 나를 보고 웃고,
내 옆에서 드르렁 코 고는 너에게
나는 그저, 마냥 고마워.
P.S. 그날 뿡이는...
아마 옆으로 자다 다리가 저렸던 것 같다.
하하. 참 다행이지 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