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사
병원 인턴 시절,
나는 매일 이동식 촬영장비를 끌고 병동을 돌았다.
8층 소아병동.
그곳에서 만난 한 아이가 아직도 마음에 남아 있다.
노란색 소아용 환자복을 입고,
햇빛보다 더 하얗고 투명한 얼굴을 하고 있던 아이.
어떤 날은 장난을 치며 환하게 웃고 있었고,
또 어떤 날은 침대에 누워 조용히 창밖을 바라보곤 했다.
아이의 표정은 날마다 달랐지만,
내가 촬영 장비를 끌고 들어가면 늘
“찍는다~”는 내 말에 맞춰
이~ 하며 웃어주던 아이였다.
내가 찍는 것도 사진이라고,
그 아이는 말없이 알아줬던 것 같다.
그렇게 웃는 얼굴을 만들어주었다.
그러다 어느 날, 아이는 멸균병동로 옮겨졌다.
상태가 나빠졌다는 뜻이었다.
나는 온몸을 가리는 멸균가운을 입고,
의료용 두건과 마스크로 얼굴을 가렸다.
그렇게 두 눈만 내놓은 채
조심스럽게 그 아이의 방으로 들어갔다.
아이는 힘없이 누워 있었다.
내가 다가가자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그리고 내 눈을 또렷하게 바라보았다.
말하지 않아도 나를 알아봤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찍을게~”라는 내 말에,
아이는 입술을 천천히 움직였다.
작고 힘없는 목소리로, 그래도 웃으려 애를 쓰며.
"김치..."
그 순간
그 마음이 너무 고마워 눈물이 고였지만
마스크 안에서 꾹 삼켰다.
나는 그 아이의 이름을 지금도 기억한다.
김민재B.
같은 이름의 아이가 먼저 등록되어 있었기에
그렇게 이름 뒤에 알파벳 하나가 붙었다.
나는 그 이니셜까지 유독 마음에 남는다.
거의 일 년 가까이
나는 그 아이의 웃는 얼굴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때로는 퇴원을 하기도 했고,
또 때로는 응급실로 다시 돌아오기도 했다.
그러다 결국,
그 아이는 떠났다.
이 세상 너머 어딘가로.
내가 근무하지 않던 시간이었기 때문에
나중에서야 그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날 이후,
나는 그 병동을 다시 올라가는 것이 많이 힘들었다.
아이의 새하얀 얼굴과
김치~ 하며 웃던 그 미소가 자꾸만 떠올랐다.
벌써 20년이 지났네..
민재야
너 그거 아니.
너가 나눠진 미소는
내 안에 여전히 빛나고 있어.
민재야.
나는 그날의 너를 지금도 기억해.
민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