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를 만나면 모두의 '엄마' 얘기가 빠지지 않는다. 나의 스토리는 다들 알기 있기에, 친구들은 내게 요즘 어떤지를 묻는다. 그 질문에는 내 마음 상태와 연로하신 엄마의 안부가 모두 담겨있다. 그렇다고 특별히 새로운 소식이 있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묵은 얘기들을 꺼내 놓지만 친구들은 함께 울어주고 공감해 준다.
K-장녀 같은 이미지 때문인지 내가 막내라고 하면 사람들은 깜짝 놀라곤 한다. 어리광을 부릴 새도 없이 일찍 어른이 되었다. 주변의 친구들은 대부분 장녀라 그 무게감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인지 언니 얘기를 하면 다들 언니 입장에서 말해주곤 한다. 하는 게 없어 보여도 장녀로서의 무게감이 있었을 거라며, 더불어 엄마에 대해서도 객관적인 시선을 주려 애쓴다.
'너희 엄마가 널 사랑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까지 하지 않으셨을 거야'
'우리 엄마와 비하면 너희 엄마는 정말 훌륭하셔.'
'네가 조금 마음을 내어봐'
그 말들이 나를 위한 것임을 잘 안다. 고맙기도 하지만, 언니의 입장 말고 오롯이 내 마음이 이해받길 바랄 때는 서운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언니는 장녀의 무게가 너무도 커서 '무능력'을 택했고, 그걸 지켜볼 수 없었던 내가 느껴야 하는 책임감을 말하고 싶었다.
나는 엄마의 단호함을 참 많이도 닮았다. 그러나 나의 단호함은 망설임을 포장하는 방패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기에 엄마도 그러지 않았을까 싶어지는 경우도 있다.
엄마를 오롯이 이해할 수는 없지만 나의 상처가 조금 아물면 지금보다 더 많은 이해를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며 오늘도 나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